#사나운 이야기 #전하지 못한 말 #남겨진 슬픔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몬스터의 말처럼 아주 사납다.
요절한 시본 도우드의 구상을 소설로 완성한 패트릭 네스는 작가들의 말에서 원작자, 시본이 좋아할 만한 작품을 쓰기 위해 애썼다면서 이야기의 바통을 독자에게 넘기며 말했다.
"문제를 일으켜라."
처음 영화를 봤을 때의 강렬함. 그 후 책을 읽고 여운을 주체하지 못해 독서동아리에서 학생들과 윤독을 했다. 그러고도 이 이야기는 여전히 황량한 사막에 이는 먼지바람처럼, 내 마음에 가라앉았다가 다시 일곤 했다.
13살 코너는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한 엄마랑 둘이서 산다. 누가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고, 아침을 차려먹고, 쓰레기통을 내놓고, 빨래를 한 후 학교에 간다. 병세가 악화된 엄마는 새로운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하고 코너는 사이가 좋지 않은 외할머니 댁에 맡겨진다. 엄마와 이혼한 후 미국에서 새 가정을 꾸리고 딸을 키우는 아빠가 영국으로 소환된 후 코너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러나 엄마는 이번에도 차도가 있을 거라며 그를 안심시키고, 코너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코너에겐 비밀이 있다. 그가 그 비밀스러운 악몽을 꾸기 시작한 즈음, 몬스터가 찾아온다. 사나운 몬스터는 코너 집 주방에서 보이는 언덕의 교회당 묘지 한가운데 서 있는 주목이다. 주목은 12시 7분이 되면 거대한 괴물이 되어 2층 코너 방에 와서 '널 데리러 왔다.'고 소년을 위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주목은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세 개의 이야기 속으로 코너를 데리고 가며, 네 번째 이야기는 코너가 하게 될 거라고 예언한다.
엄마와 코너를 도우러 온 할머니는 코너에게 '그 일' 이후 코너가 자신의 집에서 살게 될 거라며, '그 일'에 대해 엄마와 이야기를 하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엄마는 곧 좋아질 거라며 코너를 안심시킨다. 할머니는 '그 일' 이후에도 코너에게 집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지만, 코너는 할머니를 적대시한다. 그때 몬스터는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는 사나운 짐승이고, 그걸 풀어놓으면 어떤 파괴를 불러올지 모른다면서.
아주 오랜 옛날, 왕국의 평화를 위해 전쟁에 나간 왕은 네 아들의 죽음을 대가로 치르고 승리한다. 슬픔에 빠진 왕비를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이 차례로 죽자, 어린 왕손을 돌보던 왕은 이웃 왕국의 젊고 아름다운 공주와 재혼을 한다. 왕손은 자라 청년이 되고, 2년 후 열여덟 살이 되면 왕위를 물려받는다. 갑자기 왕이 세상을 등지자, 새 왕비가 왕에게 독을 먹였다는 소문이 퍼진다. 그러나 마녀라고 소문난 새 왕비는 나라를 잘 다스렸고, 왕자는 농민의 여식과 사랑에 빠진다. 섭정에 만족을 느낀 젊은 왕비는 왕손과의 결혼을 도모하고, 이를 알게 된 왕자는 사랑하는 여인과 도망을 간다. 젊은이들은 새벽녘 도달한 거대한 주목 아래서 사랑을 나누고 잠이 든다. 그러나 잠들지 않은 왕손은 자신의 손으로 농부의 딸을 칼로 찔러 죽이고, 그들을 쫓아온 마을 사람들에게 새 왕비가 자기 신부를 살해했다고 말한다. 새 왕비가 산 채로 화형 되려던 찰나, 이야기의 전말을 알고 있는 주목은 새 왕비를 구해 먼 곳으로 보낸다. 그 후 왕손은 백성들에게 사랑받는 왕이 되어, 장수하며 평화롭게 나라를 다스린다.
왕손이 벌을 받지 않아 분개한 코너에게 몬스터는
"항상 좋은 사람은 없다, 항상 나쁜 사람도 없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지."라면서
끔찍한 이야기라고, 속임수라고 말하는 코너에게
"진실이지. 진실은 속임수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백성들은 자기들에게 걸맞은 왕을 갖게 되고, 농부의 딸은 억울하게 죽고, 때로는 마녀도 구원을 받지. 사실 그럴 때가 많아. 알면 놀랄 거다."라고 대답한다.
왕비를 외할머니라고 여겼던 코너,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 평화의 군주가 된 왕손을 용서할 수 없다.
코너는 단짝 릴리가 허락도 없이 엄마의 암투병 사실을 몇 친구들에게 말한 후 학교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된다. 선생님들은 숙제를 하지 않는 코너를 벌하지 않고, 친구들도 코너를 아픈 사람처럼 대하며 멀어진다. 그러나 코너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악몽'을 꾸기 시작한 이후 해리는 코너에게 비밀스러운 표식이 새겨진 것처럼 호시탐탐 그를 노리고, 이유 없이 때린다. 코너는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고, 오히려 해리 일당에게 맞는 순간을 기다린다.
엄마가 병원에 다시 입원하고, 코너는 거처를 외할머니댁으로 옮긴다. 미국에 사는 아빠가 코너를 만나러 돌아오지만, 어린 이복동생이 살고 있는 미국의 집은 좁아서 코너의 방이 없단다. 그날, 외할머니 집에 찾아온 몬스터는 '이기심 때문에 벌을 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산업화가 시작되던 150년 전, 약제사는 약초와 나무껍질, 열매와 잎을 달인 약물로 치료를 한다. 목사관 마당에 있는 주목은 열매, 껍질 등을 잘 섞어 쓰면 거의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기에 약제사는 그 주목을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목사는 그의 청을 거절하고, 신도들이 미신에서 벗어나도록 설교를 해서 약제사의 사업은 점점 어려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의 두 딸이 전염병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서자, 목사는 약제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빌면서 주목을 가져가도 된다고, 당신을 칭찬하는 설교를 하겠다고 한다.
"당신이 믿는 것을 모두 포기할 수 있소?"라며 놀라 묻는 약제사에게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자,
"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소."라며 거절한다. 그날 밤, 목사의 두 딸이 세상을 떠나고 몬스터는 목사관을 부숴버린다. 약제사가 아니고 목사를 벌한 것에 놀라는 코너에게 몬스터는
"치료의 절반은 믿음이고, 치료 약에 대한 믿음, 앞으로 올 미래에 대한 믿음이다. 그런데 믿음에 기대어 사는 사람이 역경을 맞닥뜨리자마자, 믿음이 가장 절실히 필요할 때 그걸 저버렸다. 목사의 믿음은 이기적이고 비겁했다. 그래서 딸들이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라고 말한다.
파괴적인 광기에 휩싸여 몬스터와 함께 목사관을 부수는 코너. 목이 쉴 때까지 소리를 지르고, 지쳐 쓰러질 지경이 될 때까지 난동을 부린다. 제대로 된 파괴가 끝났을 때, 외할머니의 거실은 쑥대밭이 되어 있다. 뒤늦게 이를 본 할머니는 눈물이 얼룩진 얼굴로 신음소리를 토하며, 온전한 장식장을 잡아당겨 바닥에 쓰러뜨린다. 빛이 스며 나오는 방문 아래로 외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엄마는 그동안의 치료가 효과가 없었다며 이번엔 주목으로 만든 약을 시도할 거라고, 이 약이 자신을 구원할 것을 믿는다고 한다. 아빠는 미국에 있는 딸이 아프다면서 생사를 오가는 엄마와 그 옆의 코너를 두고 일주일 동안 미국에 다녀온다고 한다.
학교 점심시간, 벌을 받을 만반의 준비를 한 코너를 빤히 바라보던 해리는 이젠 코너가 안 보인다며 돌아선다. 학교 식당의 커다란 디지털시계가 12시 7분을 가리키는 순간 나타난 몬스터는 세 번째, '보이지 않는 사람'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코너는 몬스터를 뒤에 업고 가공할 만한 힘으로 해리를 때려눕힌다. 그런 코너에게 해리는 '엄마 때문에 모두들 불쌍하게 생각하는 아이. 자기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고고한 척 다니는 아이.'라는 독설을 날린다. 코너는 주먹을 세게 쥐고, 해리가 자신을 보게 하려고 앞으로 달려든다. 해리를 처참하게 만든 후, 교칙에 따르면 즉각 퇴학이라는 교장 선생님의 말에 안도감을 느끼지만, 해리가 오랫동안 코너를 괴롭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교장 선생님은 더 이상 벌을 주지 않는다. 이제 코너는 더 이상 안 보이지 않았지만, 전보다 더 친구들에게서 멀어졌다.
수업 중에 불려 나온 코너. 주목 성분의 약이 효과가 없었다는 엄마. 병이 너무 빨리 진행되고, 폐렴까지 시작되어서 이제는 다른 치료법이 없다며 미안하다고 한다. 화가 많이 난 코너에게 필요한 만큼 화를 내도 된다고, 뭔가를 부숴야 한다면 부디 제대로 속 시원히 부수라면서,
"그리고 만약에 언젠가, 이때를 돌아보고 화를 냈던 것에 대해 후회가 들더라도, 그래도 괜찮다는 걸, 엄마가 알았다는 걸, 네가 아무 말하지 않더라도, 엄마는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다 안다."고 혼자 남겨질 어린 아들을 위로한다.
화가 난 코너는, 집 뒤 교회 묘지에 서 있는 주목을 찾아간다. 주목 성분의 약이 엄마를 살리지 못하자 실망과 분노에 사로잡힌 코너에게 몬스터는 자신을 부른 것은 코너이며, 자신은 코너를 낫게 하러 왔다고 말한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울던 코너는 몬스터가 그렇게 기다렸던 말을 내뱉는다.
"날 도와줘."
그리고 그들은 네 번째 이야기, 코너의 악몽 속으로 들어간다.
절벽 가장자리에 서 있는 엄마. 갑자기 땅이 갈라지며 깊은 곳에서 '진짜 몬스터'가 나타난다. 구름과 재와 시커먼 불꽃으로 이루어진, 진짜 근육과 진짜 힘을 가지고 진짜 붉은 눈으로 코너를 노려보며 엄마를 산 채로 먹으려 하는 괴물. 코너는 몸을 날려 벼랑 가장자리에서 버티며 온 힘을 다해 엄마의 손을 잡고 몬스터에게 붙잡힌 엄마가 끌려가지 않게 막으려 한다. 하지만 맞잡은 손은 미끄러지고 엄마는 저 깊은 심연으로 떨어진다. 여전히 악몽의 공포로 덜덜 떠는 코너에게 진실을 말하라며 다그치는 주목 몬스터. 말하면 죽을 거라며 거부하던 코너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며 울부짖는다.
"엄마가 죽을 거라는 걸 알고도 견딜 수가 없었어! 그저 끝나길 바랐어! 다 끝나길 바랐다고!"
소리치며 꿈속에서 엄마의 손을 놓고 엄마가 떨어지기를 바랐다는 진실을 털어놓는다.
아주 오래전부터 엄마가 병에 질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엄마의 쾌유를 간절히 바랐던 날들. 반복되는 희망과 절망 속에서 기다림과 외로움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어린 소년. 그래서 엄마를 잃는 일일지라도 이 일이 이젠 끝나기를 꿈속에서 바랐던 코너. 그는 악몽 속에서 엄마의 손을 놓아버린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그리고 엄마의 죽음이 모두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때, 몬스터는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저 끝없는 고통과 그 고통으로 인한 소외감이 끝나기를 바랐던 '지극히 인간적인 바람'일뿐이라고 소년을 위로한다. 진심이고, 진심이 아니기도 했던 소년의 마음, 엄마가 떠나길 바랐고 동시에 엄마를 간절히 구하고 싶었던 마음. 그 진실을 말함으로써 코너는 치유된다.
이것은 사나운 이야기다. 젊은 여왕은 좋은 마녀이면서 또 나쁜 마녀이고, 왕손은 살인자이자 구원자다. 약제사처럼 성질이 고약하면서도 생각이 바를 수도 있고, 목사처럼 생각이 잘못되었으면서도 어떤 면으로는 선할 수도 있다. 또 코너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이게 되었을 때 더 외로워질 수도 있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사납다. 이 이야기는 내 안에서 문제를 일으켰고, 나는 길을 잃었다.
혹한의 밤, 리모컨이 고장 났다고 당장 오라며 전화를 끊은 아빠집의 리모컨은 멀쩡했다. 지방세가 나왔다며 졸혼한 엄마의 생활비를 깎기 위해 고지서를 우리 집에 놓고 가려는 아빠와 몸싸움을 하던 밤, 나의 장미 묵주팔찌는 끊어졌고, 아파트 계단 위로 묵주 알은 산산이 흩어졌다. 언니와 교대로 2주에 한 번씩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놓는 일도,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아빠를 보는 일도 지쳐갔다. 점점 상태가 위독해져 가는 아빠를 찾아가는 것도 버거웠고, 그렇게 느끼는 내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끝나지 않을까 봐 두려웠던 그 시간은 모두 지나갔다.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자기 안의 모순을 감당할 길 없어 벌 받기를 간절히 원하던 코너에게 몬스터는 그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이라고 한다. 어떻게 하면 이 나쁜 생각들을 없앨 수 있냐는 소년의 간절한 물음에, 생각은 생각일 뿐이라고, 나쁜 것이 아니라고, 행동이 아니었다고, 진실을 말하면 된다며 코너를 되살린다. 병약한 엄마가 엄마와 자신을 지킬 수 없는 현실에서, 괜찮아질 거라는 엄마의 말을 믿지 못한 소년은 세계를 지탱하는 땅이 갈라지고 엄마가 죽는 꿈을, 자신이 엄마의 손을 놓는 꿈을 반복적으로 꾼다.
이제야 알겠다. 내가 빠져나오지 못했던 죽음의 이야기들은, 사실은 그 이면의 삶에 대한 것이었고, 살아서 남겨진 이들에 대한 이야기였음을. 나를 울리는 것은 자기모순을 견딜 수 없어 괴로워하는 남은 이들의 죄책감과 속죄라는 것을. 다시 겨울, 나는 몬스터가 되어 내 안의 어린 코너를 들여다본다. 호출을 받고 떨리는 손으로 운전하며 간 병원에서, 온열기를 아무리 들이대도 여전히 차가운 아빠 발을 만지면서도, 사람이 떠날 때 가장 끝까지 청각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끝내 전하지 못한 말. 그 말을 규리가 아빠 귀에 대고 하는 소리를, 울며 들었다.
"할아버지,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