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 넥스트 도어

# 어떻게 지내요? What are you going through.

by 바라미

죽음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근육과 살이 녹아내린 자리, 탄성을 잃고 검버섯 핀 주름지고 얇은 살가죽이 두개골 형상을 따라 늘어져 표정을 담을 수 없는 얼굴. 그곳에 죽음이 서리면 그 주변은 온통 무채색이 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암으로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뵀던 할아버지, 결혼한 뒤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알콜중독으로 일찍 떠난 외삼촌, 그리고 올 1월 치매로 돌아가신 아빠의 얼굴이 그랬다.


종군 기자로 전장을 누볐던 마사는 자궁경부암 3기로 새면역 요법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죽음의 경계에서 서성인다. 중견 작가 잉그리드는 책사인회에서 죽음을 더 잘 이해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작품을 썼다고 밝힌다. 그런 그녀가 오래전 친구, 마사의 암투병 소식을 우연히 듣고 병원을 찾는다. 젊은 날 잡지사에서 함께 근무하며 치열한 삶을 살았던 그들은 추억을 소환하며 격조했던 시간을 메운다. 그러나 기대를 걸었던 치료법이 실패로 돌아가자 마사는 '암이 나를 집어삼키기 전에 내가 나를 먼저 없애겠다'며 그녀만의 방법으로 삶에 대응하기 시작한다. 마사는 건강을 위해 애썼던 지난 날로 인해, 튼튼한 심장과 몸으로 죽을 때까지 고통을 견디고 시달리게 될 거라며 비관한다. 그리고 고통에 압도되는 자신이 두렵다고 털어 놓는다. 그녀는 잉그리드에게 안락사 약을 구했다며, 마지막 순간, 옆 방에 있어달라고 부탁한다. 잉그리드는 그녀를 이해하며 마사의 편이 되겠다고 약속한다.


사람은 어떻게 죽어야 할까.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장승리의 시 '말'을 인용하며 '정확한 죽음'이란 '그 누구에게도 잘못을 빌 필요가 없는 죽음, 그렇게 회한도 미련도 없이 죽는 일'이라고 했다. 시인이 불가능한 선물 같았다던 '정확한 죽음'을 마사는 자신의 방식대로 알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말기 암환자가 고통을 견디는 것을 영웅화하는 것에 반기를 들고, 진부하고 상투적인 위로의 말을 소음이라고 규정한다. 더이상 '고통에 대한 고통'에 사로잡히지 않기로 작정한 마사는 죽음을 향한 질서정연한 평온함을 위해 자연보호구역에 접한 주택을 마지막 모험의 장소로 정한다. 살아서 익숙했던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서로 화해할 수 없다는 사실과 화해하며, 서로 용서할 수 없었던 유일한 혈육인 딸에게도 연락하지 않는다.


언젠가 영화 '소풍'의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나문희 선생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남편의 병간호를 하면서 미워하는 마음 없이 순수하게 사랑을 할 때 피어나는 '백만 송이 장미'를 피워봤다고 했다.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잉그리드는 '온스라(onsra)'라는 인도 북동부의 언어로 특정한 형태의 사랑을 설명한다.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보는 경험을 사랑에 빠질 때의 강렬함에 비유하여, 너무나 압도적인 사랑이라 이후에 결코 다른 사랑을 할 수 없음을 뜻한다고. 잉그리드는 마사와 집주인이 소장한 영화 '내일에게 길을 내주다'를 보며 함께 웃고 울고, 책을 읽어주고,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인용 벤치에 같은 자세로 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팔짱을 끼거나 손을 꼭 잡고 금빛으로 물드는 축복같은 하늘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긴다. 그런 시간 속에서 서로에 대한 강렬한 친밀함과 유대감이 자라나고, 어떤 식으로든 혼자 남아야 할 상대에게 예상치 못하게 마음이 쓰인다. 독서와 음악을 거부하고 현격하게 말 수가 줄어들며 자신의 마지막에 집중하는 마사 곁을 잉그리드는 조용히 지킨다.


아빠는 어떻게 죽고 싶었을까? 시골의 가난한 농부의 6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난 아빠는 두 분의 큰아빠들 뒤를 이어 죽음의 강을 넘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공감능력이 없었던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을 세 여자의 사랑을 잃었다. 84세가 되던 1월, 결국 졸혼으로 혼자가 되고, 아집과 편집증 속에서 외롭게 말년을 보내야 했다. 그 외로움 속에서 치매는 조금씩 정신을 갉아먹고, 아빠는 망상 속에서 쇠약해져 갔다. 그렇게 완강하던 아빠가 백기를 들고, 치매 검사를 하겠다며 병원에 가고 싶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빠를 요양원에 모셨다. 대전에 사는 나는 아빠의 주 보호자가 됐고, 병원에 들락거리며 야위는 아빠를 지켜봐야 했다. 묶인 자국이 있는 그의 손을 쓸고, 끝없이 되풀이 되는 말을 받아주고, 대화의 마지막엔 신발을 신겨서 집에 데려가라는 아빠를 놓고 도망치듯 집에 돌아오면, 집 문밖에서 앉아 기다리는 아빠를 꿈속에서 만났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평생 그를 향했던 분노, 원망과 미움이 조금씩 다른 형태로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도록 나문희 선생님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영화에서는 책에서 남겨둔 마사의 죽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친구가 장을 보러 간 사이, 유서를 남기고, 볕이 잘 드는 벤치에 누워 자신이 계획하고 준비한 마지막을 맞는다. 잘 어울리는 샛노란 정장을 차려입고, 멋짐을 유지한 채로, 그녀에게 유일하게 즐거움을 주었던 새소리를 들으면서. 고독하게, 평온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친구 곁을 지킨 잉그리드는 용감하게 남겨진 일들을 처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친구를 보낸 슬픔과 아픔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책에서 잉그리드는 마사 아파트 맞은 편 공원에 앉아 부고를 통해 알게 된 기억 속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공원에서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치우는 이웃에게 축복이 있기를, 다람쥐와 새에게 먹이를 주는 여자에게 축복이 있기를, 다람쥐와 새에게도 축복이 있기를, 애도하는 자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빈다.


잉그리드의 전애인은 저명한 언론인으로 대학교 강연에서 인간의 지독한 이기심과 비도덕성으로 인해 지구는 멸망할 거라고 말한다. 미래는 없다고, 다 끝났다고. 너무 늦었다고. 그럼에도 유일하게 막 태어난 갓난아기와, 동물에 죄책감을 느끼는 그는, 우리 자신을 구원할 마지막 기회는 우리가 인류와 생물과 지구에 지금까지 저질러온 파괴적인 해악에 대해 어떻게 용서를 구하고, 어떻게 보상을 할지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최선을 다해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어떻게 작별 인사를 할지 배워야 한다고. 잉그리드는 84살 이웃 할머니를 돌본 경험을 통해 시몬 베유의 말을 인용하여 "어떻게 지내요?" 라고 묻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 그 말은,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덧붙인다.


지구의 종말과 마사를 위시한 인간의 죽음 앞에 선 우리. 잉그리드는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모든 인간 경험을 통틀어 가장 고독한 경험으로 우리를 결속하기보다는 떼어놓는다면서 죽어가는 사람을 '타자화되다'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타자화되는 그 사람을 지켜본 사람은 안다. 그 시간이 역설적으로우리를 어떻게 연결하는지. 그가 겪었던 그 고독의 시간이 결국 내게로 올 것임을 우리는 똑똑히 본다. 세상의 언어로는 그 무엇도 위로할 수 없는 그 순간, 눈을 감는 사람과 그것을 보는 사람은 절연되며 이어진다. 친구의 죽음을 목전에 둔 잉그리드의 세상과 애도를 향한 축복의 말을 나는 진심으로 이해한다. 지난했던 아빠와의 마지막을 맞이하던 순간, 그를 향한 나의 말은 끝없이 반복되던 짧은 기도문 하나!


미워하지 않고 순수한 사랑을 통해 피워낸 나문희 선생님의 '백만 송이 장미', 세상과 애도를 향한 잉그리드의 '축복의 말'과 인간의 마음을 초월한 '기도문'. 종말과 죽음 앞에 선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힌트가 아닐까? 어떻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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