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야쿠시마 신혼여행 07_가고시마_레드라이너 버스

2006.6.1

by 조운

여행기간 : 2006.05.29 - 06.02
작성일 : 2006.07.07
동행 : 같이 살아 주시는 여자분
여행컨셉 : 신혼여행을 빙자한 백패킹 + 렌트카 여행




야쿠시마를 떠나다


7시 배를 타기위해서 일찍 일어났다.
히다카상은 우리를 태워주기 위해서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 렌트한 마치는 다시 회사에서 가지러 오기 때문에 어제 주유소에서 기름만 채워두었다. 아리무라 아주머니의 배웅을 받으면서 그렇게 패션관을 떠났다. 가는 길에 야쿠시마에서는 논농사가 없냐고 물었더니 둘러서 벼가 자라고 있는 들길을 따라 가주셨다. 그렇게 많이 하고 있지는 않단다.

이제 안보항은 골목 하나까지 다 알 정도로 자주 왔던 곳이 되었다. 그래봐야 정말 작은 항구마을이지만.

마침 전국체전이라도 있는지 야쿠시마의 추리닝차림의 학생들과 부모인 듯한 어른들이 포구에 잔뜩 나와있었다. 그들로 인해 우리가 탈 톱피가 만원이었다.
아쉽게 아저씨와 작별을 하고 배에 올랐다.

가고시마까지 바로 가는 배는 아니었다. 가는 중간중간 여러 섬들을 들러서 사람들을 태우고 가고시마로 향했다.

점점 멀어져 가는 야쿠시마와 작별~




날씨는 제법 좋은 편이었다. 아직 하루도 햇볕이 쨍쨍한 날은 없었지만 흐린 가운데 공기가 맑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주었다. 바야는 이제 지쳤는지 앉으면 잤다. 3시간 가까이 걸려서 드디어 가고시마로 돌아왔다. 갑자기 높은 건물들과 스모그같은 시가지의 뿌연 기운이 완전히 다른 세상, 내가 살아가는 세계로 다시 돌아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아쉬운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가고시마항과 썬로얄호텔


가고시마항


끼니를 계산해서 전부 싸들고 갔는데 우리가 해 먹은 밥이 몇 번 되지 않아서 짐의 무게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었다. 피곤하기도 하거니와 짐이 무거워서라도 빨리 호텔부터 가야했다. 사람들에게 항구에서 바로 호텔이 보였다. 조금만 걸으면 될 것 같아서 무작정 걸어갔다.
그런데... 우리가 가야할 ‘썬로얄호텔’이 아니라 그냥 ‘썬호텔’ 이었다. 진작에 길 좀 물어보라던 바야의 입이 쭉 나온 지 제법지나서야 사람들에게 길을 묻기 시작했다. 버스를 탔는데 거기는 벌써 가고시마시에서 가장 번화한 ‘텐몬칸’이라는 곳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찾아간 호텔은 신기하게도 부산에서 하룻밤 머물렀던 코모도호텔처럼 약간 부채꼴로 휘어진 모양이었다.

호텔직원들은 우리가 외국인임을 알자마자 영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영어가 되느냐면, 또 그것은 아니기에 의사소통은 그나마 나은 일어로 대충..
대충..
대충 짐을 풀고나니 점심때가 다 되어버렸다. 우리 방은 바다 건너 사쿠라지마 화산이 보이는 씨뷰로 꽤 고층이었다.

야쿠시마에서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탈 많던 버너를 호텔방에서 켜놓고 햇반을 데워서 밥을 먹었다.
(범법으로 점철된 신혼여행 부부공갈단^^)
후식으로 히다카상이 주신 파인애플과 단깡까지.






가고시마 _레드라이너 버스


가고시마 관광을 위해서 호텔에서 준 지도며 자료들과 우리가 들고 있던 자료들을 쭉 읽어보았더니 공영 시티뷰 버스가 있고 사립으로 운영하는 레드라이너라는 버스관광도 있더라. 물론 호텔에서는 자전거를 빌려주기도 했는데, 지친 바야를 보면서 자전거는 바로 포기하고...
시티뷰 버스는 아침에 출발하니 어차피 안되고, 우리는 레드라이너 버스를 타기위해서 가고시마 역까지 다시 버스를 타고 나갔다.

레드라이너버스는 전체가 빨간색이라 눈에 잘 띄었다. 우리 말고는 거진 중년, 혹은 노년의 부부들이었지만 그 수는 몇 명되지 않았다. 안내를 맡아서 마이크를 잡은 아줌마는 나이가 좀 있어 뵈지만 귀엽게 말을 하는 분. 다만 대부분 못 알아듣는 말을 쉴 새 없이 계속 떠들었다. 경청하지 않는 우리들이 눈에 띄니까 처음에는 신경쓰는 눈치더니 나중에는 포기하고 아예 데리고 다니지도 않았다.^^

가고시마가 한 눈에 보이는 시로야마 전망대를 시작으로 목적지에 닿으면 잠시 시간을 주고 몇 시까지 다시 차로 모여서 출발하는 식이었다. 메이지시대를 연 공신 한 사람을 추모하는 역사물들이 태반이었지만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시로야마전망대에서는 가고시마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버스는 다시 항구로 갔다. 활화산인 사쿠라지마까지는 페리에 버스를 통째로 싣고 간다.

배에서는, 계속해서 버스에서 우리 앞자리에 탔던 중년의 커플과 나란히 선두의 벤치에 앉게 되었다. 우리가 한국인이고 신혼여행 중이라고 하니 먹던 모찌를 나눠주었다. 몇 마디 한국어를 알고 있다고, 해 보는 여자분은 유창한 영어로 몇 마디 더 물어보았다. 도쿄에서 왔다는데 지식인층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고 말투에서 다소 오만함이나 도도함이 풍겨서 길게 대화를 진행하지는 않았다. 가지고 왔던 단깡을 몇 개 드렸다.



사쿠라지마


배를 탄 시간은 15분 정도로,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완전히 맑은 날씨가 아니라서 멀리서 거대한 화산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사쿠라지마의 유노하라 전망대 위에서 겨우 활화산을 볼 수 있었다. 온도때문인지 지질때문인지 산은 민둥산이었다. 화산 폭발이 일어난 지 10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말이다.

이 화산이 불과 사흘 뒤에 다시 폭발할 거라고는 거기 있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겠지. 구름인지 화산의 연기인지가 정상에 조금 피어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이것보려고 페리까지 타고 수선을 떨었던 것인가하고 조금 실망스럽기까지 했으니... 아무래도 날씨의 운빨^^


이소정원


다시 페리를 타고 돌아왔다.
기대했던 곳은 ‘이소정원’이라는 곳이었다. 가고시마시의 끝자락에 있는데 말하자면 지방 다이묘 중의 한 사람이 짓고 관리한, 자신의 궁이었다.

일본식 정원은 인공미를 극대화 한 것이 특징인데 전에 교토의 금각사에 갔을 때, 자연미를 살린 공간과 확연하게 구분되도록, 가능한 공간을 인공적으로 꾸민 것에 인상이 깊어서 내심 궁금했었다. 이소정원은 규모가 대단했다.

다른 곳과 달리 구경할 시간을 50분이나 주었다.
정원 곳곳에서 꾸미고 관리한 정성이 엿보였다. 흔히들 일본 정원의 미감을 '인공미'라고 부르던데. 보고 있으면 누군가의 "고생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가 비록 정원 꾸미는 일을 즐겼을지언정.

우리의 정원은 자유로운 맛이 있다. 보기에 따라 이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이때 뒤에서 고생한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지거나 하진 않는다. 조형적인 맛이 감상자의 미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고, 멋진 풍광을 만들어 낸다 하더라도 인공적 요소와 자연적 요소의 우위를 구분하기가 애매하고 대부분 우연히 구성되는 맛이 오히려 더 큰 재미를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거기에 반해 일본의 정원은 "단단하게 조직화된" 느낌이 있다. 창작자가 치밀하게 계산한 황금분할의 미감이 감상자가 완전하게 느낄 수 있도록 모든 식물, 돌, 물의 흐름들이 꽉 짜여져 있다. 참 아름답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계산대로 자라지 않는 나무들은 잘라내어야 할 대상이 되고 돌맹이 하나라도 그 자리가 아니면 안되는... 일본인들 특유의 미감이 아닐까 생각했다.
"조직화되었을 때의 아름다움", 비단 정원의 경우만 아니라 일본 문화의 특징같은 것이리라. 다소 전체주의적인 느낌이 있어서 그런 것에 거부감이 좀 있는 나에게는 많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바야도 야쿠시마의 대자연을 경험한 터라 그런 인공미에는 크게 매료되지 못하는 듯 했다. 특이하게 고양이 모양 인형들만 파는 가게가 있길래 거기서 제법 시간을 보냈다. 다양한 재료들로 만든 각양각색의 고양이들이 가게 전체에 박물관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일본인들은 고양이를 무척 좋아한다고 하니 이런 가게도 있구나 생각했다.
거기서 너무 정신을 판 나머지 버스를 놓칠 뻔 했다. 지긋하게 나이드신 다른 분들이 허겁지겁 뛰어오는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늦게 와서는 한다는 소리가,
“어디 근처의 전차역에 내려주실 수 있을까요. 다시 가고시마역으로 가지 않고 전차로 관광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였으니 표정들이 더 그렇게 변하는 듯 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야쿠시마 신혼여행 06_야쿠시마 최고의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