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6.1~2
여행기간 : 2006.05.29 - 06.02
작성일 : 2006.07.07
동행 : 같이 살아 주시는 여자분
여행컨셉 : 신혼여행을 빙자한 백패킹 + 렌트카 여행
안내를 맡은 분께서는 운전기사와 몇 마디를 하더니 그렇게 하도록 해 주었다. 우리가 내린 곳이 정확하게 어딘지는 모르지만 전차의 종점임에는 분명했다. 세워진 전차들 중에서 덴몬칸으로 가는 것을 탔다.
전차는 도시 교통수단 중에서 최고
전차는 도시교통의 왕자라는 게 지론이다.
단점이라면 좀 느리다는 것이지만, 생각하기 따라 단점이 아닐 수도 있고, 그게 단점이라해도 장점이 훨씬 많다.
일단 버스에 비해서 공해가 적다.
건설비용도 지하철에 비하면 새발의 피. 택시나 자가용에 비해도 비용이 너무 저렴하다. 그 유지 비용은 더욱 저렴해서 다른 어떤 것도 감히 미치지 못할텐데.
조금 크게 만들어서 자전거를 실을 수 있도록 디자인 한다면 도시전체를 대기오염으로부터 해방시킬 수도 있을 것이고... 느리기때문에 사고의 위험이 낮다. 실제 독일의 어떤 도시에서는 시내에서 차량을 억제하고 전차로 대체하면서 아동의 자동차 사고율을 현저하게 줄인 사례도 있다.
그 옛날에 쓰던 전차를 아직 없애지 않고 남겨둔 가고시마 사람들의 현명한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이용객도 여전히 많았다. 오랜 세월 발달한 도시이기에 전차는 주요도로를 모두 운행했기 때문이다.
지하철 건설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 그 빚을 공단의 수익으로 해결하라는 주문에 결국 위험을 감수하고 인력을 감축하려는 발상을 해대는 우리의 현실로 봤을 때, 차라리 거기에 비해 표도 나지 않을 비용으로 전차를 도입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특히 웅장한 규모의 산, 바다, 낙동강을 두루 품고 있는 부산이라면...
부산대에서 전차를 타고 서면 사거리를 지나 남포동으로, 아니면 영도나 산복도로를 이어주는 산복 트램 같은... 멋지지 않았을까? 도시의 주요 교통수단이면서 그 자체로 큰 관광자원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버스는 체증으로 답답하고, 노선이 복잡해서 외국인들이 자유여행으로 와서 이용하기는 힘들다. 지하철은 정말 지하만 보고 다니니...
이런 생각이 지하철에 근무하는 선배, 후배들이 당장 직장을 잃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긴 해도 프랑스나 독일에서 도시 외곽에 거대한 무료 주차장을 마련하고 차량의 도시 진입 자체를 억제하면서 느린 전차와 자전거로 유도해서 성공한 사례를 보고 있자면 마냥 부럽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전거까지 실을 수 있는 그 유명한 언덕 전차도 그렇고.
어쨌든 사념에 빠져서 그만 내릴 곳을 놓치고 말았던 우리는 한참을 걸어서야 겨우 덴몬칸에 도착했다.
한 시간도 넘게 거기가 거기 같은 도시를 헤매고 다녔다.
덴몬칸은 말하자면 부산의 서면이나 남포동같은 곳인데, 건물과 건물 사이에 아치형 지붕을 만들어서 날씨와 관계없이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지붕 길이가 100미터까지 되는 곳도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유명한 곳. (이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케이드'가 낯선 시설이었다)
지칠대로 지치고 배도 고픈 우리들은 일단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가고시마의 유명한 음식을 먹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워낙 여행을 준비없이 오는 게 버릇이 된 지라 모든 것을 맡기라고 했던 나조차 무얼 먹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제법 준비를 한 편인데...
나랑 같이 여행갔던 이들은 알 것이다. 내가 얼마나 알거지로, 몸뚱아리 하나 믿고 무작정 떠나는 무모한 스타일인지.
선택한 메뉴는 라면. 라면은 일본인들이 즐기는 음식인데 사골을 우려내어서 해 먹어야 하는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개발한 것이 인스턴트 라면이란다. 우리나라에는 그 인스턴트라면이 들어와서 그것이 라면의 전부로 알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가게마다 자신의 맛을 꾸준히 연구하고 지키는 제법 맛 좋은 라면집들이 있다. 그래서 길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가씨한테 가장 맛있는 라면집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는 좀 머뭇거리더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본인도 외국인이 말을 거니 당황하고...
결국 따라오라는 말만 알아들었다.^^
한참을 갔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빨리 갔다와야 하는 건지, 아니면 우리에게 빨리 알려주어야 할 것 같아서 인지 거의 뛰다시피 이골목 저골목의 코너를 돌고 돌아 어딘가로 데려갔다.
덴몬칸의 거의 끝자락이 아닐까 싶은 곳까지 왔을 때 허름한 가게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고는 황급히 다시 돌아가 버렸다. 가게 이름을 읽는 방법이 맞는지 모르지만, "토토로"의 패러니 느낌이... ^^
'가고시마라멘, 도토로'
안은 음식냄새가 가득했고, 젊은 총각들만 일을 하는 곳이었다. 별로 미덥지 않아 보였다. 음식은 손 맛인데... 그래서 주문한 것은 그 집의 스페셜라면.
뭐 시장이 반찬이라고 잘 먹긴 했지만 시원한 국물을 기대했던 우리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가공된 맛이 많이 났는데, 우리가 그 아가씨말고 좀 나이드신 분들한테 길을 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물론 깨끗하게 비웠지만...
그렇게 저녁을 먹고 나오니 밤이 되어 버렸다. 덴몬칸은 더욱 휘황찬란한 빛으로 밝혀졌다. 야쿠시마에서는 해지고 바로 어둠이 내렸는데...
아까 길을 헤매다가 봐 두었던 빙수 가게로 갔다. 부산항에서 가져왔던 우리말로 된 큐슈 안내 책자에도 나와 있던 집이라서 가보기로 했었다. 여기도 역시 젊은 총각만 있었다.
맛이나 색이나 글쎄... 잘 먹긴 했지만 좀 조악한 듯, 어릴때 초등학교 앞에서 먹던 불량식품 필도 좀 나고...
배도 채웠고 날도 저물고 해서 바로 숙소로 가려 했지만 호텔이 위치한 곳이 외곽이라 딱히 할 것도 없을 듯해서 좀 더 돌아다니기로 했다. 호텔에서 준 안내서에 ‘미나토오오토오리’ 공원이라고 있길래 가 보기로 했다. 분수와 조명으로 밤에도 근사하다고 나와있었으니.
덴몬칸을 헤매고 나는 방향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지도가 머릿속에 있어서 지구상에서의 현재 좌표값과 동서남북의 방향을 알아야만 하는 나는 잠시라도 그렇게 방향감각을 상실하면 아주 답답해진다. 정장차림으로 퇴근길에 버스를 기다리는 젊은 신사분한테 길을 물었다.그는 몇 마디 하려다가 말고 따라오라고 했다.
내 눈빛이 그렇게 측은하게 보이는 걸까? 사람들이 길만 물으면 따라오라고...
그는 식구중에 누가 생일인지라 선물을 사러 시내 나왔다가 다시 집에 가는 길인데 마침 자기집도 그 근처고 하니 같이 걷자고 했다.
길설명은 잘 안들리는데 신기하게 이런 얘기는 또 잘 들렸다.
자신이 대학때 연세대 야구부랑 친선 경기를 한 적이 있는데 한국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의 결혼식에도 그 친구들이 많이 왔었다며 묻지도 않은 얘기를 해 주셨다. 자상한 애기아빠로 보였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다시 항구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이었다. 밤도 깊었고 공원이라 하지만 조금 넓은 길에 분수며, 가로가 조금 있는 그런 곳이었다. 사진찍기는 좋았지만 그다지 감흥을 줄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유리 온실 식물원의 조명이 제일 화려했지만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우리는 바로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도착하니 9시.
우리 객실 한 층 위의 호텔 온천탕에서 간단하게 씻고 먼저랄 것도 없이 꿈나라로...
돌이켜보면, 야쿠시마라는 대자연에 취해서 보낸 날들이 꿈만 같았다.
논농사를 짓는지 물어 본 것은 어쩌면 거기서 정착하고 싶은 내 욕구였을지도... 그에 반해 이국적인 냄새는 있었지만 가고시마는 내가 사는 곳과 별반 다를 바 없이 거대하기만 한 관광지였다. 물론 여기저기 더 좋은 곳이 많이 있을 것이고 일본인들이 꽤나 선호하는 휴가지라지만 이방인의 눈에는 일상을 살고 있는 소시민들이 삶을 영위하는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아마도 소통할 수 있는 생명이 제한적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산란의 과정을 공유했던 거북, 잠시지만 전과정에 함께했던 이름모를 사람들 같이 소통하고 공유한 개체간의 관계까지 바라기에는 일정이 너무 짧기도 했거니와 너무 잘 조직화된 팽팽 굴러가는 타인들의 일상에 이질적으로 끼어있었다는 느낌이 컸기 때문이리라.
다음날 일찍, 우리는 다시 신간센과 코비를 타고 우리의 일상으로 복귀했다.
아니지, 일상이 될 결혼생활로 첫 발을 "자신있게" 내디뎠다. 좀 피곤한 상태로...
_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