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따라, 천성산~낙동강 1 : 낙동강하구 아미산 전망대

2017.2.5

by 조운

짧은 산행이라 우습게 생각했다가 스님과의 약속시간을 살짝 넘겨서 뵙게 된다.
스님은 물따라 쭉 바다까지 가면서 중간중간 보고 싶은 곳들 들렀다가 아미산 전망대를 가자신다. 더 자세한 설명도 없다. 오늘도 운전은 동승하시는 내원사의 한 비구니스님.




여행기간 : 2017.2.5
작성일 : 2017.10.18
동행 : 비구니 스님들과
여행컨셉 : 당일치기 답사




내원사 매표소에서 출발해서 내원계곡을 따라 내려온다.
답사의 목적은 물의 순환, 특히 천성산과 같이 지하수가 풍부한 곳에서 발원한 물이 바다까지 가는 여정 중에 방문 포인트가 될만한 곳들을 체크하는 것.
굳이 포인트의 종류를 나누자면 경관적 중요도, 환경적 중요도, 지질적 중요도, 인문적 중요도로 선정이 될 것 같다. 아미산 전망대는 경관, 환경, 지질, 인문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곳이면서 여정의 끝 마무리를 하는 곳이라 중요도 면에서는 단연 으뜸 축에 든다.
특히 낙조의 하구를 조망하기에는 그만이다.

인간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수렵 채취의 시대부터 인간은 물가 인근에서 씨족, 부족을 이루면서 집단의 힘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다. 산은 짐승들의 땅이라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서 산에 막히면 교류가 힘들었지만 일찍부터 물길을 통해서 강 건너와는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점차 공동체의 범위를 넓힌다.
자동차 덕분에 도로를 중심으로 교류하고 소통하는 지금 시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그래서 생명을 영속하는데도, 집단을 영속하는데도 물가의 생활은 필수였다. 농경이 발달하고나서야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거고.





용연마을 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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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물가 근처는 오래된 '인문적 요소', 즉 전통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을 수 밖에.

내원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처음 만나는 마을이 용연마을이다.
내원계곡수가 양산천과 만나는 곳에 위치한 용연마을에는 커다란 당산나무와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광장이 있다. 작은 마을이지만 광장의 규모는 제법된다.
농경과 어로가 마을의 발생 유래라고 생각하면, 물가에 모두 모여서 집단적인 제의, 유희의 공간을 만들었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고 마을에서는 중요한 장소일 것이다.
지나던 나이 많은 어르신한테 여쭤보니, 나무들 사이에 장막을 치고 그늘을 만들어서 당산제도 올리고 매년 마을 잔치를 했던 기억이 있다고 그러신다. 용연마을회관 바로 옆이라 찾기도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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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과 35번 국도 사이에 위태롭게 위치한 용연마을은 내원사라는 큰 사찰 덕에 명맥은 이어가지만 인구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실제 양산천과의 합수 지점은 도로를 건너 우정공원이라는 식당 앞이다.




아미산 전망대


양산천을 따라 내려오는 길은 낯설다고 나에게 운전을 맡기신다.ㅜㅜ
덕분에 사진을 거의 찍지 못했다.

신전마을 다리 아래로는 형형색색의 암반 위로 물이 흐른다. 자세히 보면 암반도 아닌 것이 모래도 아닌 것이 퍼석거리는 바위들 같은데, 이건 다음 번에 사진과 함께 다루어야 할 듯.

중간 중간 멈춰서서 둘러보다, 호포대교까지 왔다.
4대강 사업으로 농지가 갑자기 공원이 되어버린 황산들. 제내지(제방에서 강 쪽으로 있는 땅)에서 농사를 추방하고 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공원은 물금역(물금이라는 말은 이두에서 유래했는데 논과 밭을 표기하던 기호였다고 하니 물금이 예전부터 들녁으로 유명했음을 짐작케 한다) 바로 뒤인데 이름은 황산공원이다.
황산은 양산의 옛 이름이라 한다. 중앙정부와 양산을 잇는 관로, 즉 파발역이 늘어서 있던 영남대로의 양산쪽 구간 이름도 "황산도"라 한다.
여튼 자전거길과 오토캠핑장으로 둔갑한 물금 둔치를 지나 본격적으로 낙동강을 끼고 간다. 불행하게도 낙동강은 부산시민들과 점점 멀어져 버렸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없고 자동차전용도로로 대부분 단절되고 말았다. 좌안만 보면 화명둔치, 삼락둔치에 생긴 공원으로의 접근말고는 불가하다.
물가에 살지만 이젠 물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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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산 전망대는 생긴 지 오래된 곳은 아니다. 환경단체는 보통 뭔가를 건설하는 걸 반대하는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 전망대는 환경단체가 부산시에 제안하고 오랫동안 건립을 주장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낙동강 하구가 가진 아름다움을 만인이 즐기면, 그 만큼 훼손의 유혹에서 자유로워 질 것이라는 것. 탁월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경관적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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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절정으로 달아오르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이렇게 구름이 많은 날도 하구의 낙조는 정말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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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는 복층 구조이고, 윗층에는 저렇게 삼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다. 멀리 가덕도 위 하늘부터 물까지 붉게 타오르는 저녁이면 많은 사람들이 전망대를 찾는다고 한다. 여러 대의 쌍안경도 구비되어 있다.


환경적 중요성


부산시민들도 잘 모르지만, 겨울만 되면 고니가 1~2,000마리 정도 낙동강 하구에 찾아든다. 멀리 아미산에서 보면 마치 스티로폴 부스러기 같이 보일 정도라, 어떤 시민이 하구에 널린 쓰레기를 수거해라는 민원 전화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그만큼 하구에 고니들이 즐겨 먹는 세모고랭이 같은 식물성 먹이가 풍부하다는 건데, 낙동강 사업이후로는 세모고랭이 서식지가 확 줄어들었고, 당연히 매년 찾던 고니도 인근의 주남 저수지 등으로 많이 옮겨 가는 추세라 한다.
뿐만아니라 낙동강 하구둑 공사 전에는 재첩으로도 유명했던 곳이다. 지금이야 재첩하면 섬진강으로 생각하지만, 국민학교 시절 동네마다 리어카에 "재첩국 사이소~" 하던 재첩 아지매들이 아침을 깨워주는 흔한 풍경이 매일 벌어졌는데... 수문 개방이 논의되는 지금 다시 낙동강 재첩이 돌아오리라는 기대가 크다.
그 외에도 맹꽁이, 귀이빨 대칭이, 가시연 등 희귀한 생명들과 웅어, 붕어, 잉어까지 오랫동안 부산시민들의 밥상에 오르기도 했던 많은 수자원들이 거의 자취를 감춘 곳이기도 하다.


지질학적 중요성


IMG_1644-_Wide1080mark.jpg?type=w773 전망대에는 등의 이름과 위치를 표시해서 찾아보는 재미를 준다

모래가 많은 낙동강(MB가 현대산업개발 사장이던 시절 낙동강 하구둑을, 대통령이던 시절 4대강 사업을 한 덕분에 모래가 많이 줄었지만...)이 품고 온 고운 모래가 바다로 흘러들고, 바다의 파도가 그것을 저지하면서 형성된 등이 여럿 있다. 섬이라기엔 아직 부족한 하지만 엄연히 바다는 아닌 곳을 "등"이라고 부른다. 그런 등 중에서 "섬"으로 승격한 곳도 있을 정도.
저 상태로 고정된 것이 아니란다. 강물과 바닷물의 수만년에 걸친 밀땅으로 형성되는 강 하구의 등은 지금도 발달하는 과정이라는데... 최근에 강에 손을 많이 대면서 발달 속도가 현저하게 줄었단다.


인문적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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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낙동강에서 어로로 생계를 꾸리시는 분들이 있는데, 기수지역의 풍부한 산물은 이들에게 축복이었다. 최근 줄어든 어획량에 생계가 힘들어지고 있는데, 그것보다는 아름다웠던 삶의 터전이 황폐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더 가슴아프다고 한다. 이들은 지금 블루길, 베스 같은 외래 교란종을 잡아서 정부로부터 kg당 수당을 받아서 겨우 살고 있다.

전망대에서 자세히 보면 도요새 같은 작은 놈들이 등과 등 사이 물만 있는 곳을 걸어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수면 바로 아래까지 사실 모래가 쌓여있는 곳들이 많다는 뜻.
예전에 다대나 구포로 농산물을 팔러왔던 김해 농부들이 장이 파하는 시간 물때가 맞으면, 배를 타지 않고 그런 물길을 따라 걸어서 강 건너 김해로 돌아가곤 했다한다. 강폭이 수 킬로미터에 달하지만 베테랑들은 수심이 낮은 곳들을 잘 찾아서 다녔다고...
물가에 살며, 물에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낙동강 하구는 그야말로 자원의 보고 같은 곳이었을 테고, 공동체와 공동체를 이어주는 중요한 길목이었을 것이다.

스님이나 나나 이런 여러 지점들에 대한 정보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아니라, 그 동안 동냥귀로 들은 것들에 불과해서 좀더 전문적인 사료와 함께 이런 것들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함에 공감하고 여정을 마치기로 했다.

"~~ 하기로 했다." 하면 우리는 천천히 알아봐야지 하고 말지만, 스님은 아마 오늘부터 당장 작업에 들어가서는 며칠동안 식음을 멀리하고 완성하실 것이다. 그게 바로 스님만이 가진 놀라운 면이기도 하고... 그럼 이번엔 얼마만에 다시 연락을 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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