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첫 경주여행

2014.2.23

by 조운

여행기간 : 2014.2.23
작성일 : 2016.10.31
동행 : 같이 살아 주는 분과 그녀의 아들들
여행컨셉 : 드라이브




경주는 참 좋다.

주(州)가 붙은 곳들은 오랜 동안 사람들이 터를 이루고 삶을 영위한 곳이다. 우리나라를 크게 나누고 있는 8도 체계의 명칭은 이 주(州)가 붙은 도시 이름을 두 개씩 붙여서 만든 게 많다.
경상도는 경주+상주
전라도는 전주+나주
충청도는 충주+청주
강원도는? 강릉+원주 (어디나 예외는 있다^^)

주(州)는 글자 그대로 일단 물이 있다. 사람들이 모여사는데 우선 물이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주(州)가 붙은 도시들은 풍부한 물 덕분에 인근에 논이 많다. 진주, 경주는 아예 도시를 논이 감싸고 있다.
물과 식량. 도시가 형성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다. 지금이야 부산처럼 물도 농사지을 땅도 부족한 곳이 유통의 중심지라는 이유만으로 메트로폴리스이 되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물류에 장애가 많았던 때에는 먹을 게 풍부해야만 도시가 가능했으리라.
주(州)는 그렇게 풍부한 물과 식량 덕분에 자고로 인심이 그렇게 사납지가 않다. 내면이야 어떤지는 몰라도 장사치들이 세운 도시나 산물이 부족한 시골보다 겉으로는 교양과 측은지심이 고양된 곳이란 말이다. 어디나 다 배타적인 지역성이 있지만, 똑같이 물과 농사가 발달한 밀양의 경우는 이상하게 그 배타적 정서가 남다르다. 주(州)가 아니라 그럴지도... (밀양 사람들을 뭉탱이로 디스할 의도는 없다. 배타적이라는 게 최근에는 부정적인 용어로 주로 쓰이지만 지역의 시각에선 그닥 나쁜 문화 토양은 아닐 수도 있으니)
어쨌든 경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봄이면 파란 들판이, 가을이면 누런 들판이 초입부터 반겨주는 것부터 시작된다. 거기다가 전체 도시가 신라 문화유적이라 말할 수 있어서, 함부로 건축 허가를 내 주지 않아서 전반적으로 도시가 나지막하다. (경주에 계신 이모의 단층집 옥상에 오르면 구 경주역 일대에 나지막한 단층집들이 모두 보인다)
당신들 삶이야 어떤지 모르지만 외지인의 시각으로 경주는 참 평온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그런 경주가 집에서 맘잡고 달리면 30분 거리에 있다는 건 행운이다.
행운일까?

학창시절 경주에 수학여행을 가는 경우 말고, 경주는 주로 벌초, 제사 등을 지내러 가는 시골 길에 지나가게 되는 곳이었다. 서울이나 먼 데 있는 사촌형들은 멀다는 핑계로 집안 대소사에 잘 빠지는데 가까이 있다보니 그러지도 못한다... 행운이 아닐 수도 있구나.^^


신라역사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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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신문의 책소개에서 본 책이 맘에 들어 구매했다.
그리고 아침 먹고, 청소하고, 빨래 돌려서 널고 날날하게 있다가 차를 몰고 나들이를 떠났다. 건넛집에 마실 가듯이 경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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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경주 전체에 산재한 문화재를 둘러보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로 "신라역사과학관" 방문을 들고 있었다. 그래서 맘에 들어 덮썩 책을 샀던 거기도 하지만.
마치 어렸을 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끼고 소쇄원으로 향했던 것처럼...

아이들한테는 조금 어려울 수 있는 수준의 과학적 원리를 아기자기하고 쉽게 설명하고 있었다.
신라시대의 과학기술에 대한 것 뿐만아니라 조선 세종 때 장영실의 과학적 성과들도 같이 전시되어 있다. 정체성에서 좀 어긋나는 것 아니냐 싶긴 하지만, 일타이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석굴암이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변하지 않고 후세에 전해 질 수 있었던 자연 방습 작용, 그리고 그걸 무식하게 도굴 수준으로 파헤친 일제시기의 발굴, 하지만 아직도 망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잘 알 수 있게 해 준 코너.
인류가 수많은 종을 영원히 멸종시키고도 도덕적 책임감이 그렇게 크지 않은데, 옛날 뛰어난 문화유산 정도 망친 것 가지고 무슨 큰 대수랴마는... 그래도 나라라면 나라의 자라나는 애들이 자긍심을 가질 만한 것들(한글이 워낙 막강해서 다른 것들이 불필요하다면 모를까)을 보존하고 원리를 전하는 작업을 해야하는 건 아닐까? (이 나라의 문화유산에 대한 정책을 보면 나라를 지탱하는 이념적 지향이 아나키즘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ㅋㅋ)

과학관 외관이 워낙 허름하기도 하고 불국사 가는 구석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별로 안 올거라고 봤는데, 의외로 또래 애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이 많았다. 해설사의 설명을 미리 신청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은데, 우린 뭐, 빨래하고 청소하고 나들이 온 주제라...




불국사

다음으로 선택한 곳은 인근에 있는 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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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 청운, 백운... 뭐 이런 이름들이 기억속에서 꼬물거릴 뿐 정확한 명칭도 가물가물한 저 돌계단 앞에서... "얘들아,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니? 돈에 있는 그림 같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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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탑은 보수공사 중이라, 저렇게 밀폐 포장 상태였고, 그 옆에 다보탑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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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교과서에서 본 내용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흡입했던 내용들을 따라 경내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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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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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애들은 지가 손으로 만져야 놀이니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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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들이 추가한 탑 하나를 꼭 찍어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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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에 사는 다람쥐가 꾸러기들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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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먹이를 많이 줘서 그런지, 그다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다람쥐를 쫒다가 더이상 닿지 않는 곳까지 가버리자, 다람쥐와 함께 했다는 추억만 선물하려고 한 컷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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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모양이 있는 유명한 단청이라는데... 애들 눈 높이에서는 숨겨진 멧돼지를 찾기가 힘들어서 아빠만 고생을 했다는... 불국사가 이런 오밀조밀한 재미가 있는 곳인지 몰랐다. 애들이 멧돼지 찾기 삼매경에 빠져 한참을 즐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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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이대면 쑥쓰러운 듯한 첫째와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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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지가 모델인 줄 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석굴암

책이 경주를 가보고 싶게 만든 가장 큰 요소가 석굴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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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로부터 애들은 신났다. 손만 뻗으면 움켜 쥘 수 있는 눈이 벽에 막 붙어 있지, 발 아래는 질척거리는 흙길에 발이 빠지기 일쑤지... 엄마만 속타지 뭐, 지들은 그게 다 재미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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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석굴암에 줄을 서서 입장하고 유리관 너머의 본존불상을 바라보고 하는 과정은 그다지 재미가 없었나 보다. 나오자 마자 다시 눈하고만 논다.
저만치 먼저 앞서가던 녀석들이 아빠를 불러서 사진을 찍어라고 난리다. 가보니 얼마전에 봤던 영화 주인공과 함께 있다. 울라프라고...

그래, 석굴암이야 뭐... 사람들이 잘 보존하면 또 보러 오면 되고... 뭐 못봐도 언젠가는 어느 장인들의 실패에 굴하지 않는 의지와 성공을 볼 날들은 많으니까. 아빠가 하이라이트로 맘대로 정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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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

박물관을 주마간산으로 슬쩍 훑어 보곤 우리는 여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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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애들 눈에는 신기하게 생긴 벽돌에 불과한 첨성대보다는 거기 반월성 일대를 누비고 다니는 열차에 더 흥미를 가졌다. 우리가 찾아간 시간이 늦어서 딱 한 번만 타 볼 수 있었는데, 담에 일찍 와서 많이 타고 놀자는 약속만 남발해야 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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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진 찍는데 부쩍 재미를 붙인 아들 녀석의 작품.
해가 뉘엇뉘엇해서 반월성은 정말 잠시잠깐 산책만 하다가 이내 돌아와야 했다.

"여보, 당신은 재밌었어?"
"응... 뭐... 그냥... 재밌었어."

언제쯤 아빠는 지가 땡기는 곳, 지가 땡기는 것 말고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최적의 장소로 그들을 데려갈 수 있을 것인가?
이럴 때, 왜 너희들한텐 경주가 그러니? 이러면 꼰대가 된다.
나에게 포근한 주(州)가 다른 이에게는 그냥 시골일 수도 있는 거니까^^


최근 경주의 지진으로 첨성대도 약간 상처를 입었단다. 그보다 트마우마에 빠진 경주시민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푸근한 마음이 깨어지고 있다는 소문에 가슴 아프다. 그게 지진이 많은 경주에 살기때문이 아니라 원전 옆에 살고 있기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화도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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