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28~29
여행기간 : 2006.05.29 - 06.02
작성일 : 2006.07.04
동행 : 같이 사는 여자분
여행컨셉 : 신혼여행을 빙자한 백패킹 + 렌트카 여행
신혼여행은 다들 즐겁고 좋겠지만, 우리들은 정말 이제 한 숨 좀 돌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컸다.
주례가 없는 결혼식을 한다구요?
결혼식장이나 웨딩업체도 낯설어하는 결혼식 전체 진행 순서는, 하루 전날 밤새워서 워드로 작성해서 출력했다.
결혼식 당일 아침까지 사회를 비롯해서, 아무도 결혼식이 어떻게 진행될 지 몰라서 다들 내심 조마조마한 상태였는데, 다행히 사회자가, 베테랑 'J'라서... 과연 식이 끝나고 모두가 결혼축하 보다는 사회자 칭찬을 더 많이 했다는... 역시 학생회장 출신이라...
결혼반지는 학교 후배가 하는 금은방에서 주문했는데 식이 시작되기 직전에 도착했다. 뭐 없으면 반지교환은 식에서 생략할 요량이었기에 크게 초조하진 않았지만,
가족들은 이 결혼식 전체가 초긴장의 연속이었다는... 재밌잖아^^
신혼여행지가 어디라구여?
처음 들어 본다는 곳으로 신혼여행을 잡아서 여행사를 적잖게 당황하게 만들고, 결국 결혼 당일 떠나지도 못하고 연안부두에서 가까운 코모도 호텔에서 신혼 첫날을 보내야 했다.
07시 30분,
국제여객 부두에서 여행사 직원과 미팅.
여행에 필요한 티켓들도 거기서 처음 받아서 바로 배를 탔다.
결혼식 진행부터 반지, 신혼여행에 필요한 티켓들까지 전부 007작전처럼 당일, 지금, 여기서, 아슬아슬하게...^^
티켓들은 부산 후쿠오카간 왕복 배편, 규슈JR패스, 가고시마에서 야쿠시마까지의 비행기편, 그리고 가고시마에서 하루 묵을 호텔 바우처. 끝이다. 나머지는 현지에서 알아서 해야한다. 007작전은 사실 이제부터...
8시 45분에 승선
부탄까스는 뺏겼다. 위험물이라는 봉투에 담아서 승무원이 가져가 버렸다.
야쿠시마? 그게 뭐야?
'바야'는 동남아 에메랄드 빛 바다를 바라보며 선베드에 누워있는 스스로를 상상했지만, 내가 제안한 곳이 자신의 상상과 그렇게 다른 곳일 줄은 몰랐을 거다. 자기가 모르는 또 다른 낙원 쯤... 더구나 난 오키나와 근처임을 많이 강조하기도 했고...
야쿠시마로 결정한 건 우연이었다.
처음엔 신혼여행이라니까, 어디가 어딘지 전혀 모르는 곳들을 쭉 소개 받았다.
'보라카이, 발리, 세부, 푸켓, 파타야...' 몇 번 들어본 곳도 있긴 했지만, 자고나면 낙원같은 곳에 도착해서 천상의 세월을 며칠 보내고 오는... 뭐 그런 곳들이라기에 이곳들이 한데 엮여서, 다들 같은 나라에 있는 건지, 어디쯤인지 도대체 구분이 되질 않았다.
어쨌든 이곳들 중에서 선택을 해라는데, 차이도 모르겠고... 고민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신혼여행지를 결정할 수 있는 정보를 얻고 내 머리속에서 각 지역의 차이점을 검토해 볼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곳들은 다 그냥 낙원, 천국들이었다.
그때 서울 녹색연합의 서국장이 소개해 준 곳이 "야쿠시마"였다. 시각 정보는 별로 없었다. 그냥 자신이 찍어 온 핸드폰 속 사진들 몇 장과 정말 좋다는 말 뿐. 휴양지와 전혀 거리가 먼, 어쩌면 신혼여행지로 아무도 고려해 보지 않을 곳이지만, 누구나 완전히 반할 수 밖에 없다는 곳.
나의 백패커 본능에 최적화된 신혼여행지잖아?
문제는 바야를 설득하는 것이었는데,
ㅎㅎㅎ 정말 다행인 건...
바야는 여행 계획 따위 세우는 것에서 전혀 주도적이지 않으면서,
아직 상상만 했지 실제 에메랄드빛 바다나 선베드에 누워 본 적도 없고,
비행기 타 본 적도 없으니... 예의 오키나와 좀 들먹이고는 바로 통과.
사기 신혼여행은 그렇게 실행 가능했다. (이게 뭐 사기 결혼은 아니지 않나?)
배로 거의 세 시간을 가서야 도착했다. 후쿠오카는 두 번째 방문이다. 항구에 내려서 밖으로 나오니 저번하고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지만 신혼여행이랍시고, 촌시럽게 항구에서 사진도 찍고...
결국 하카타 역에 빠듯하게 도착을 했는데 아뿔사 12시 반 기차는 결국 놓치고 말았다.
다음 기차는 1시 10분.
그렇게 기차를 타고 큐슈의 최남단에 있는 현, 카고시마로 향했다. 비록 기차라고는 갔다 오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여행사에서 가격을 비교해서 큐슈 JR패스로 끊어 주었다. 가격을 비교하면 편도로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편도 패스면, 이렇게 기차를 놓쳤을 때 취소수수료나 재발행 등 복잡했을 건데, JR패스는 정해진 기간 안에서는 사용 가능한 지역 내의 아무 기차나 이용할 수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카고시마까지는 릴레이쯔바메(신간센)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신야쓰시로라는 곳에서 쯔바메로 갈아타야 한다.
갈아타는데 주어진 시간은 약 30초. 또 놓치면 정말 큰일이었다. 왜 이렇게 빠듯하게 표를 끊어 주는 지...는 내려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걱정과 달리 릴레이쯔바메를 내리면 바로 앞에 쯔바메가 정차해서는 문도 열어 놓고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려서 마주보는 열차로 들어가니까 따라가기만 해도 된다. 쯔바메는 의자도 훨씬 좋고 안락한 느낌.
후쿠오카에서 가고시마까지 기차로만 보낸 시간은 세 시간 가량.
쇼핑센타랑 역이 한 건물에 같이 있는거야 우리나라에도 흔히 보니까, 그렇다치고. 좀 특이한 것은 물레방아-놀이기구가 역 건물 옥상에 있다. 천천히 돌아가는 그곳에서 가고시마를 관광하라는 거겠지만 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예약된 비행기를 타야했기에 바쁘게 움직였다. 짧은 일어실력으로 길을 물어 겨우 리무진버스 정류장을 찾아냈다. 가고시마 역은 꽤 번화한 곳이고 버스노선이 많기 때문에 조심해서 움직여야 했다.
카고시마 공항은 외곽지역에 있다. 그러니까 다시 산을 넘어서 버스로 공항까지 45분을 달렸다. 걸리는 시간, 비용 생각하면 굳이 비행기로 가지 않아도 되지만 하늘에서 다도(多島)의 바다를 보는 것이 장관이라고 절대 놓치지 말라는 말에... 하지만 ㅜㅜ 날씨가 좋지 않아서 예상했던 장관까지는 볼 수 없었다.
비행기는 정말 작았다. 이런 작은 여객기가 있구나 할 정도였다. 같이 탑승한 사람들은 모두 야쿠시마로 가는 관광객으로 보였으나 연령대는... 글쎄...
혹시 효도관광버스에 잘못 올라탄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그리고 역시나 모두 일본인. 한국인은 고사하고 서양인도 없었다. 그만큼 야쿠시마는 아직 잘 알려지진 않은 곳이었다.
탑승 절차를 밟다가 공항직원들과 의사소통이 안되어서 좀 곤욕을 치뤘다. 우리가 타는 비행기는 JAL이었는데 가방검사는 배편보다 엄격했다. 우리 가방에는 사실 위험물로 분류될 것이 많았다. 버너에 가스, 칼... 짐 세 개를 몽땅 뺏아가려고 했다. 물론 후쿠오카 가는 배에서도 가져갔던 가스는 그대로 돌려받았지만, 혹시나 하는 맘으로 안 뺏길려고 실랑이가 조금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참... 부끄럽...)
사람들도 모여들고 직원들도 몰려들고... 잠시후
“안녕하세요?”
하며 어떤 남자 직원이 왔다.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와서 사태를 정리하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안녕하세요 외의 말은 전혀 알아듣질 못하겠더라.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후쿠오카나 큐슈 북부쪽은 어딜 지하철, 버스 등 어딜 가나 일본어 다음으로 영어, 우리말로도 정차역 안내해 줘서 그다지 외국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는데... 아직 가고시마까지 찾는 한국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여긴 그냥 외국^^
출발 시간은 다 되어가도록 해결은 안되는 상황에서, 어떤 젊은 아가씨가 한 명 더 왔다.
JAL 직원 옷차림인데 우리말을 능숙하게 했다. 교포 2세라고 했고, 열심히 한국어 공부하는 중이라고 했다. 당일 비번인데 급하게 연락을 받고 집에서 뛰쳐나왔단다. 모든 게 나 때문에... ㅋ
바야는 실랑이하는 동안 계속해서 짐을 맡기라는 것 같다고 눈치를 차렸는데, 이 교포 2세 여직원이 해주는 우리말도 결국은 그 얘기였다. 어쭙잖게 일어 좀 해 볼라는 나보다 전혀 모르지만 눈치 빠른 바야가 더 나았다.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말.
맡기세요 - あづけてください.
아는 단어였는데 왜 그 말이 들리지 않았을까?^^
참고로 말하자면, 배편도 좋은 선택인 듯하다. 시간은 좀 더 걸리지만, 관광객보다는 섬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터라 섬마다 들러서 간다. 위에서 조망하는 맛대신에 가까이서 직접 보는 맛이 있어서 좋기도 하거니와 비행기보다 훨씬 싸다.
날씨만 좋았다면 기내에서 창으로 보는 광경은 참 멋있을 뻔했다. 카고시마에는 활화산인 사쿠라지마가 있는데, 섬이던 것이 1914년 분출한 용암으로 육지와 연결이 된 상태란다. 우리가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사흘 후에 화산폭발이 또 한 번 있었다. 그러니까 1914년 이후로는 첫 화산폭발이었던 셈이다. 장관이었다는데, 우리가 갔을 때도 정상에서 연기는 계속 피어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작은 섬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맛도 좋았다.
사진은 날씨 때문에 잘 나오진 않았다. 야쿠시마는 연중 비오는 날이 366일 이라고 너스레를 떤 글을 읽었는데 실지 우리가 있던 내내 비가 내리지 않은 날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 내리는 시간은 하루에 한 두 시간이고 우산이 필요 없을 정도의 가랑비였다는 거다.우여곡절 끝에 결국 야쿠시마 공항에 도착은 했다.
그래도 나름 신혼여행인데... 이거 정말 잘 한 건가... 자다깨다를 반복했던 바야는 아직 뭐 원망의 눈빛을 보내진 않으니...
다들 이렇게 신혼여행 가는 줄로 아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