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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Dec 13. 2018

이 남자 왜 저렇게 절절하게 사과하고 있는 걸까요?

<7급 공무원>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몇 년전부터 볼 생각이 있던 영화였는데 최근에야 봤네요. 저는 이렇게 봐야지 생각만하다가 몇 년 뒤에야 보게 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왜 이 남자는 이렇게 절절하게 사과하는 건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남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봅시다.

이 남자에게는 연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가끔씩 연락이 안 되고 연락이 되더라도 어디냐고 물어보면 울릉도라고 합니다. 이런 일이 종종 있었는데 뭔가 사정은 있는 거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정은 말해주지 않습니다. 단지 사랑한다는 말만 반복할 뿐입니다. 심지어 한 번은 멀리서 보이길래 전화해서 어디냐고 물었더니 울릉도랍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칩니다. 그런데 여자가 변명이나 상황을 해결을 할 생각은 안하고 막 달려서 멀어집니다.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급하게 떠나야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공항에서 전화를 했습니다. 어디냐고, 어딘지 말하면 자기가 가겠다고. 한국을 떠난다고. 그런데 여자가 말하기를 울릉도이고 통화가 어렵다고 합니다. 아침에는 강화도라고 했는데 말이죠. 남자는 이런 상황에서 음성메시지로 너 같은 사람 만나라고 악담을 하고 떠납니다. 그리고 3년 뒤에 우연히도 다시 만납니다. 여자는 굉장히 화를 내면서 남자를 때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과할 것을 강요합니다.

관객은 이 여자의 사정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의 처지에 대해 동정할 여지가 충분합니다. 사과 요구도 납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남자의 입장에서는 아니죠.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관객이 아니기 때문에 이 남자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굉장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과를 합니다. 이런 사람을 보고 흔히 말해서 호구라고 하겠죠. 어떤 커뮤니티에 이런 내용의 글을 올려도 이 여자의 사과요구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남자는 사과를 하는 걸까요? 그것도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절절한 감정으로 말이죠. 이 남자는 찌질합니다. 마마보이이고 열정은 넘치지만 실제로 일하는 모습은 허당입니다. 그리고 3년전 한국을 떠나면서 차버린 옛 애인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어서 그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격과 미련 때문에 다시 한 번 이 여자와 잘해보려고 사과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남자가 하는 사과와 여자의 직장상사가 하는 말로 인해 이 남자의 사과는 진심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여자의 직장상사는 여자에게 정말로 미안하면 미안하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몇 씬이 지나고 남자는 그와 같은 말로 여자에게 사과합니다. 즉, 이 남자의 사과의 진실성은 여자의 직장상사의 입을 빌려서 감독이 보증하고 있습니다.

    

미안해.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다는 말조차 못하고 있었어.     


이 남자의 사과는 분명 이 남자의 진심이고 이 남자가 사과하는 사건은 갑자기 한국을 떠나버린 일일 겁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이게 굉장히 이상합니다. 이 남자가 한국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사실 이 여자가 자꾸 연락이 되지 않는 이유와 거의 동일합니다. 갑자기 떠나게 된 상황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전화해서 마지막으로 접촉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이걸 거부한 것은 여자였습니다. 물론 여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그걸 모릅니다. 오히려 이 남자 입장에서는 한국을 떠나야한다는 상황을 이용한 초강수까지 뒀는데도 여자는 연락도 잘 되지않고 거짓말까지 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음성메시지를 확인하고 이 남자를 붙잡기 위해 공항까지 갔지만 남자는 모릅니다. 그때는 이미 탑승수속을 밟은 다음입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누가 화를 내야하고 누가 사과를 절절하게 해야할까요? 남자는 물론 사과를 해야 합니다. 여자를 두고 갑자기 떠나버렸으니까요. 그렇지만 여자는 어째서 남자가 떠나간 이유가 본인의 행동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피해자의 포지션에 서있는 걸까요? 본인 사정은 관객은 알지만 남자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이유로 남자에게 무조건적인 이해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남자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 있는 거지요. 그리고 남자는 사과를 합니다. 그것도 절절하게 진심을 다해 사과하지요. 네. 남자는 그냥 호구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끼지않고 퍼주게 된다고들하지요. 이 사람이 없으면 인생의 뭔가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이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근데 이 남자는 찌질한 성격탓인지 그 정도가 심한 호구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맥락 속에서도 절절하게 진심을 담아서 사과를 합니다. 결국 저 남자가 저리도 절절하게 울면서 사과하는 이유는 이 남자가 찌질한 호구이기 때문이며, 그만큼 저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옥수수에서 이 영화를 보지 않기를 권해드립니다. 이 영화의 특성상 러시아어가 상당수 나옵니다. 그런데 그 러시아어의 자막을 옥수수에서는 제공하지 않습니다. 큰 틀은 알아들을 수 있지만 그래도 세부적인 내용을 모른다는 것은 아주 불편한 일이죠. 그래서 저는 옥수수를 통해서 이 영화를 보시는 것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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