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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Jan 26. 2019

화흉위길(化凶爲吉)과 현대인의 주체관

※ 이 글은 K-MOOC '주역, 잘 먹고 잘살기' 수업의 [“흉을 길로 변화시킬 수 있다(化凶爲吉)”고 보는 주역의 운명에 대한 관점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까?] 토론 주제로 제출하기 위해서 작성한 글입니다.


‘화흉위길(化凶爲吉)은 흉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대처와 행동에 따라 길한 상황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길흉화복이 외부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내부에서 나온다는 사상을 내제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패러다임이 현대인에게 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할 때 두 개의 교훈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인간이 오롯이 인간으로서 주체적으로 본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점이 길흉화복을 정한다는 패러다임보다 ‘화흉위길’ 패러다임이 더 합리적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주역의 ‘화흉위길’에 대한 사상이 퍼지기 시작하던 시대를 상상하면 당시 사람들에게 굉장히 위험한 사상으로 생각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화흉위길’ 패러다임에서는 모든 상황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흉을 대처와 행동을 통해서 길로 바꿀 수 있다’는 명제는 반대로 ‘길한 상황으로 바꾸지 못한 것은 본인의 대처와 행동이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명제로 바꿀 수 있다. 이전의 패러다임에서는 길흉화복이 모두 주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인간은 비록 무력했을지언정 안전했으며 상황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웠다. 하지만 주역에서 말하는 ‘화흉위길’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면서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졌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은 이제 점이 아닌 본인 스스로가 결정한다. 따라서 그 뒤에 따라올 상황에 대한 책임마저도 행동의 주체인 인간 본인의 것이다.

둘째, 고독한 주체가 아니라 관계 속의 주체를 지향한다. 서양 사상의 주체성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코기토로 설명된다. 이 유명한 명제는 서양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서양의 주체성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회의한 끝에 회의하고 있는 본인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주체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는 선언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개인으로서의 주체를 긍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데카르트의 코기토  속 주체는 무변하며 배타적이기에 고독한 주체이다. 서양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현대인들의 주체의식 역시 데카르트의 코기토 속 주체와 흡사하다. 고독하지만 확고부동한 주체의식은 인류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소외감을 가져왔다.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소외감은 최인훈 작가의 단편 소설 <타인의 방>에 잘 표현되어 있다. 3년간 살아온 같은 아파트에 살아왔던 이웃은 주인공을 알아보지 못한다. 심지어 주인공은 아내에게마저 소외되며, 자신의 집에까지 소외된 채 결국 체념하며 사물화한다. 데카르트는 아마도 본인의 주체적 자아가 마치 초인과 같이 확고부동한 절대성을 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대인의 주체성은 절대적이기보다는 오히려 고독하고 연약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역에서 말하는 관계속의 주체는 하나의 대안적 주체성을 제안한다. 주역에서 인간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자연의 일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 자연과 관계 맺고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아간다. 이런 흐름에 맞춰서 살아갈 때 길하고, 그렇지 못하면 흉하다는 길흉관을 제안한다. 이러한 길흉관 속에서 결국 화흉위길이란 자연의 흐름에 맞춰가는 관계 속의 주체관을 제시하는 것이다. 주역의 주체관은 데카르트의 주체처럼 절대적이고 확고부동하지는 않지만 자연 속에서 관계 맺고 있기 때문에 고독하지 않다. 또한, 자연이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변하듯이 인간 주체 역시 그 흐름에 맞춰서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유연하며 창조적이다.

이와 같이 화흉위길이 현대인들에게 줄 수 있는 교훈으로는 주체로서의 책임과 관계속의 주체성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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