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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Apr 23. 2020

질나쁜 농담에 타협하는가? 아니면 타협하지 않는가?

요새 계속 집에 있고, 영화도 꽤 봤는데 이상하게 글을 쓰고 싶어지지 않아서 한동안 글을 손에서 놓고 있었습니다. 너무 오래 칩거생활을 해서일까요? 기분이 좀 쳐지는 감이 없지 않네요. 이런 기분탓인지 최근에 액션영화 중심으로 보다가 간만에 글을 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영화를 보아서 생각나는대로 몇 자 적어볼까 합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왓치맨>입니다. 코믹스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며, 코믹스 작가는 <브이 포 벤데타>를 썼던 작가라고 합니다. 저는 원작은 안 봐서 원작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이 영화만 해도 굉장히 좋은 영화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처 : 다음 영화>

이 영화의 배경은 냉전시대로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이기고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한다는 가상의 역사입니다. 또한, 마스크를 쓴 히어로가 자경단으로 활동하다가 닉슨 대통령의 '킨 법령'으로 인해 마스크를 벗고 일반인으로 돌아가야 한 상황입니다. 단 세 명의 왓치맨만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닥터 맨하튼과 코미디언은 국가에 소속되어서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는 등의 국가의 무기로써 활용되고 있습니다. 로어셰크는 국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경찰과 대립하면서 여전히 자경단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코미디언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코미디언은 여전히 가면을 쓰고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살해당한 사람이 코미디언이라는 것을 모르는 상황입니다. 로어셰크는 코미디언을 일반인이 해칠 수 없으며, 누군가 왓치맨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살해한 것이라 생각하며 수사해나갑니다. 이 영화는 이러한 일련의 흐름들을 따라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문구는 '누가 감시자들을 감시하는가'입니다. 하지만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이 문구보다는 니체가 말한 '괴물과 싸우는 자는 이 과정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만일 네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심연도 너를 들여다 본다.'가 떠올랐습니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영화 속 액자식 구성으로 한 등장인물이 보는 코믹스의 내용이 이러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왓치맨 캐릭터들의 변화 때문입니다. 이들은 모두 결국 바라는 것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거나, 본인이 결코 되고 싶어하지 않거나, 혐오하는 어떤 것이 됩니다. 이런 점에서 액자식 구성 속 코믹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왓치맨들의 변주라는 생각이 듭니다. 


액자 식 구성 속 코믹스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인공은 선장이며, 바다에서 어떤 화물선에 습격을 받아서 배가 침몰합니다. 선원은 모두 죽고 선장인 주인공만 살아남아서 섬에 표류합니다. 배를 공격했던 화물선은 주인공의 마을 방향으로 갑니다. 화물선이 마을을 습격할 거라고 생각한 주인공은 부서진 나무들과 선원들의 시체를 이용하여 마을로 향합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마을로 들어간 주인공은 항구에서 만난 커플을 해적의 협력자라고 생각하여 살해하고 그들의 말을 빼앗아 마을로 갑니다. 그리고 본인의 집에 잠입하여 자고 있는 사람을 해적이라 생각해 습격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주인공의 아내였고, 모든 것이 자신의 착각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은 주인공은 해안으로 도망칩니다. 그리고 해안가에서 자신의 배를 습격했던 화물선을 발견한 주인공은 사실 화물선의 해적이 원한 것은 마을이 아니라 타락한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과 함께 하게 됩니다.


왓치맨들 역시 각자 다른 이유로 이러한 변화를 겪습니다. '나이트 아울' 대니얼은 아버지가 기업금융을 하고 남겨주신 돈으로 범죄자를 쫒았습니다. 그는 본인이 존경했던 영웅 1세대 히어로팀인 '미닛맨'의 '나이트 아울' 홀리스의 뒤를 이어서 2세대 히어로팀 '왓치맨'의 '나이트 아울'이 됩니다. 킨 법령 후에 마스크를 벗고, 일반인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로리와의 재회 후 다시 가면을 쓰고 로어셰크를 구하기도 하는 등 자경단 활동을 재개합니다. 하지만 로어셰크와 함께 마지막 남극으로 가서 모든 진상을 알게 된 후 모든 일의 배후였던 애드리언을 비난하면서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진 않습니다. 오히려 진상을 밝히려는 로어셰크를 닥터 맨하튼이 죽이는 것을 보면서도 막으려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로어셰크와 다크맨하튼의 대립과 로어셰크 뒤에서 이 대립을 보고 있는 나이트 아울, 그리고 닥터 맨하튼의 로어셰크 살해는 배트남 전쟁 당시 있었던 코미디언의 현지처 살해와 그것을 보고 있던 닥터 맨하튼의 구도와 유사합니다. 당시 코미디언은 현지처가 있었고, 전쟁이 끝나자 찾아온 현지처가 임신한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하자 본인은 미국으로 돌아가고 그녀와 아이는 잊을 거라고 말합니다. 잊지 못하게 하겠다고 그녀가 깨진 병으로 상처입히자 코미디언은 그녀를 총으로 쏴죽입니다. 코미디언을 비난하는 닥터 맨하튼에게 코미디언은 오히려 닥터 맨하튼은 그를 저지할 수 있었지만 저지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닥터 맨하튼이 인류와 동떨어져 있다고 비난합니다. 시체를 두고 떠나는 코미디언에게 닥터 맨하튼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합니다. 나이트 아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나이트 아울이 닥터 맨하튼을 어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임신한 현지처와 아이(베트남 전쟁 중 저지른 참혹한 죄악을 상징)를 잊고 미국으로 떠나버리기 위해 임신한 현지처를 쏴버리는 코미디언과 거짓된 평화를 유지하려 참혹한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로어셰크를 죽이고 다른 은하로 떠나는 닥터 맨하튼, 그리고 그 순간 옆에 있으면서도 막지 않았던 닥터 맨하튼이 인류와 동떨어져 있다면, 나이트 아울은 정의와 동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는 결국 오지맨디아스와 닥터 맨하튼을 비난하지만 그들이 만든 거짓된 평화에서 살아갑니다. 이 점은 마지막 샐리와의 대화에서 나타납니다. 샐리의 우리가 괜찮을까라는 질문에 대니얼은 사람들이 닥터 맨하튼이 우리를 감시한다고 생각하는 한 괜찮을 거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대니얼이자 나이트 아울이 오지맨디아스와 닥터 맨하튼이 만든 거짓된 평화에 순응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다음은 로리입니다. 로리는 1대 미닛맨의 실크 스펙터였던 그녀의 모친이 원했기 때문에 그녀의 뒤를 따라 2대 왓치맨의 실크 스펙터가 됩니다. 그녀의 모친이 히어로 은퇴 후 평범한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며,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에 대한 갈망을 계속해서 보여줬기 때문에 로리는 실크 스펙터라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에 오히려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히어로네임으로 자신을 부르는 로어셰크에게 본명을 쓴지 2년이 지났다고 선을 긋고, 자신의 히어로 코스츔을 끔찍했다고 평하며, 킨법령을 자신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것이라고 합니다. 로리는 오히려 전형적인 사랑을 원하는 소녀(여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회의에서 처음 만난 존에게 한 눈에 반하며, 이후 그의 연인 자리를 빼앗습니다. 킨 법령 이후 정부에 협조하는 존과 함께 지내며, 점차 존이 자신에게 멀어진다며 불만을 갖습니다. 이후에는 대니얼과 존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로리가 대니얼로 하여금 다시 마스크를 쓰도록 만듭니다. 존에게 화가 난 로리는 연구소를 뛰쳐나와 대니얼과 같이 지냅니다. 그 기간 중에서 대니얼의 집 지하에 있는 비밀기지로 혼자 내려가 보관되고 있는 미스터 아울의 슈트와 비행선(아르키메데스, 일명 '아치')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천과 먼지로 덮여있던 '아치'의 천을 걷어내고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던 '아치'를 작동시킵니다. '아치'에 장착되어 있는 화염방사기를 작동시켜서 비밀기지에 불을 지릅니다. 이 화재로 인해 울린 사이렌 소리를 듣고 대니얼이 비밀기지로 내려옵니다. 화재를 제압한 둘은 나이트 아울 슈트의 분광안경을 끼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로리가 지른 불은 대니얼이 킨법령으로 인해 꺼놓았던 히어로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했던 원동력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열정, 정의감, 초대 나이트 아울에 대한 동경 등 다니엘이 2대 나이트 아울로 활약하게 했던 감정적인 요소입니다. 로리가 먼지와 천으로 덮인 채 지하창고에서 주차되어 있던 '아치'를 작동시키고, 전시되어 있던 슈트의 분광안경을 '착용'하고 '작동'하도록 하는 것으로 로리가 다니얼에게 계기를 제공하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후 다니엘과 성관계를 맺은 날 밤 지하 비밀기지에서 슈트 앞에 서 있는 다니엘에게 '아치'를 타고 나갈 것을 본인의 입으로 말합니다. 아치를 타고 나갈 때 본인이 그렇게 싫어하던 코스츔을 착용하면서 이전까지의 히어로에 대한 태도와 반대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후 로리는 실크 스펙터로서 히어로 활동의 적극적인 모습과 애착을 보입니다. 이것은 그녀가 그토록 싫어하던 그녀의 모친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존은 닥터 맨하튼이라는 히어로 네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평범한 물리학자였는데 사고로 인해 몸이 분해되었다가 재구성되면서 초인적인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세계관 최강자이며,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야에 잡히는 물체를 변환시키거나 본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볼 수 있고, 분신을 만들어서 한 순간에 여러명의 본인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순간이동, 태양을 걸어도 끄떡없는 내구력, 숨을 쉬는데 산소가 필요 없는 등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신에 존은 이성이 감정보다 앞서면서 점차 일반적인 인간과의 괴리감을 가지게 됩니다. 감정에 비해 이성이 강세를 가지면서 존은 세계와 괴리됩니다. 생명은 고평가된 존재이며 생명의 중요성에 대해서 부정적인 존의 견해는 인본중심적 사고와 공감을 기반으로 한 감정의 영향력이 강한 일반 사람들과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닥터 맨하튼의 특이한 점은 생명의 중요성에 대해서 경시하면서도 히어로 활동에 전념한다는 점과 연인의 감정에 얽매인다는 점입니다. 다른 일을 뒤로한 채 에너지 위기를 막기 위한 작업에 열중합니다. 이 작업을 무사히 마치면 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전쟁을 막는다는 것은 결국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존은 항상 옆에 사랑하는 사람을 둡니다. 로리 이전에는 제니가 있었습니다. 로리가 존을 떠나면서 존은 지구를 포기하고 화성으로 떠납니다. 존은 자신을 설득시키기 위해 로리를 화성으로 데려갑니다. 로리와의 대화에서 생명의 존귀함을 배우고 지구로 돌아옵니다. 거기서 본 광경은 도시가 초토화된 광경이며, 모든 사정을 알게 된 후에는 배우게 된 생명의 존귀함으로 인해서 거짓된 평화를 수용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됩니다. 


애드리언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스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을 초월한 닥터 맨하튼보다는 많이 약하지만 날아오는 총알도 피할 수 있는 육체와 세계에서 가장 영리한 두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 오지맨디아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지만 킨법령 이후에는 바이트라는 거대 기업의 총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인물이 영화 속 흑막이며, 영화 속에 등장하는 코믹스의 주인공과 가장 유사한 인물입니다. 다니엘은 애드리언을 평화주의자라 일컬으며, 일생동안 누군가를 죽여본 적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일찍이 '올바른 지도력'으로 왓치맨이 평화를 위해 정의를 수호하도록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킨법령 이후 냉전이 가속화되고 핵전쟁의 위험성이 대두되면서 평화를 위해 수천만명을 죽여서 수십억명을 살리는 선택을 합니다. 그 행동의 이유는 인간은 과거로부터 서로 죽이려했고, 이제는 서로를 끝장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코미디언의 말때문입니다. 인류는 본성적으로 파멸적이기 때문에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전 인류와 핵무기를 더해도 쓰러트릴 수 없는 난적인 닥터 맨하튼을 악역으로 세웁니다. 닥터 맨하튼이라는 초월적인 적을 앞에 두고 냉전은 종식되고 거짓된 평화를 이룩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동료들 앞에서 진실을 밝히면서 '우리들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말은 틀렸습니다. 과거의 그는 평화주의자이며 누구도 죽여본 적 없는 사람이며, 정의를 위해 평화를 수호하고자 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의 본질은 본인의 욕망(설사 거짓되었더라도 가질 수 있는 평화)를 위해 수천만명의 사람을 죽인 학살자입니다. 즉, 킨법령 이전에 그 본인이 적대시했던 빌런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코믹스 속 주인공이 망상에 빠져 지켜야 할 가족을 공격하고 타락하여 적대시했던 해적이 되었듯, 오지맨디아스는 거짓된 평화를 위해서 지켜야 할 일반인들을 학살하고 타락하여 과거 본인이 적대시했던 빌런이 됩니다. 그리고 코미디언이 마지막 순간 평생토록 적대했던 적을 가장 가까이 여기고 숙적 앞에서 이전 전쟁에서 학살과 폭력에 대해서 눈물지었듯이 오지맨디아스도 돌아서는 동료들로부터 혼자 남겨집니다. 그는 이제 털어놓을 적도 없으므로 혼자서 자신이 죽인 사람들을 기억하며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위의 네 명은 모두 '코미디언'의 다른 얼굴들입니다. 그들의 캐릭터가 모순성을 가지게 된 이유는 모두 코미디언 때문이었습니다. 나이트 아울은 시민들을 지키려했던 왓치맨을 해산하라는 시민들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코미디언을 봅니다. 킨법령 앞에서 왓치맨의 끝과 사람들이 가진 파멸적 성질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사회보호막이라는 코미디언의 말에 영향을 받습니다. 로리는 초대 실크 스펙터가 자신을 강간하려 했던 코미디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입니다. 닥터 맨하튼은 임신한 여자와 뱃속의 자신의 아이를 쏴죽이는 코미디언에게 닥터 맨하튼이 인간에 대해서 조금도 신경쓰지 않으며, 인류와 동떨어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오지맨디아스는 감시자들을 농담거리라 조롱하며, 인간의 야만적 본성이 전지구적 파멸을 불러온다는 코미디언의 말 때문에 거짓된 평화를 위해 수천만명을 죽입니다. 이들에게 이렇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코미디언은 누구인가요? 그는 1대 히어로 팀인 미닛맨과 그 뒤를 이은 왓치맨의 활동을 모두 했던 유일한 히어로입니다. 그리고 히어로이면서도 빌런처럼 잔혹하게 폭력을 휘둘렀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이 야만적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 스스로 파멸을 불러올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인간들 사이에서 정의를 부르짖으며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히어로와 자신을 조롱하기 위해 스스로의 히어로네임을 코미디언이라 지었습니다. 그렇기에 코미디언은 죽어야 했습니다. 코미디언 말고도 네 명의 히어로가 '코미디언'이 되었으니까요. 그들은 이제 인간의 본성은 야만적이라 믿으며, 기꺼이 모순된 삶을 택하며 본인들이 적대했던 존재가 되기로 결정합니다. 이런 '코미디언'의 농담의 동의어는 '타협'입니다. 인간의 야만적 본성을 조롱하면서도 본인만은 마지막에 웃을 것이라고 믿었던 코미디언처럼 이들 역시 인간의 야만적 본성이 파멸적 미래를 불러온다는 생각을 전제로 만든 거짓된 평화를 믿습니다. 그리고 그 거짓된 평화와 타협합니다. 


이런 코미디언과 다른 인물들과 대비되는 것이 로어셰크입니다. 그의 인간명은 월터 코벡스입니다. 그는 편집증적이며, 폭력적이고, 음모론에 빠져 있습니다. 킨법령 이후에도 로어셰크는 국가에 소속되지도 않고 경찰과 맞서가면서 자경단 활동을 계속합니다. 왜냐하면 로어셰크는 자경단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히어로 활동 초기에 실종된 6세 아이를 구하러 갔던 로어셰크는 굉장한 충격을 받습니다. 죽은 아이의 시체를 물어뜯는 개들과 범죄를 부정하다가 본인의 정신에 문제가 있다며 체포하라는 범인을 보며 로어셰크도 코미디언과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야만적이라는 결론 앞에서 로어셰크는 코미디언과 다른 행동을 합니다. 코미디언은 타협을 선택했지만 로어셰크는 '자기부정'을 택합니다. 인간 '월터 코벡스'를 죽이고 '로어셰크'라는 히어로만을 남겨둔 것입니다. 그 이후로 다른 히어로들이 마스크로 본인의 얼굴을 가리듯이 로어셰크는 '월터 코벡스'라는 얼굴로 '로어셰크'라는 신분을 숨깁니다. 인간은 야만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보다 폭력적으로 범죄에 대응하며, 때에 따라서는 범죄자를 살해하기도 합니다. 편집증적으로 정의와 범죄 소탕에 몰입합니다. 월터 코벡스는 창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창녀를 범죄자처럼 경멸한다는 점에서 로어셰크가 가지고 있던 자기 부정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는 결코 타협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야만적 본성이 도시를 범죄의 소굴로 만든다고 할지라도 히어로 '로어셰크'는 끊임없이 그 야만적 본성과 싸우며 정의를 추구합니다. 그런 로어셰크에게 오지맨디아스가 제시하는 거짓된 평화는 그저 타협일뿐입니다. 로어셰크가 추구하는 정의는 인간의 야만적 본성과 끊없이 싸우면서 이룩해내는 것이기 때문에 수천명의 희생과 거짓으로 만들어진 평화 따위는 싸워야 할 대상인 인간의 야만적 본성과의 타협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로어셰크는 이 사건의 진상이 알려지면 핵전쟁의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돌아섭니다. 본인을 막아서는 닥터 맨하튼이 그 거짓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결코 돌아서거나 비켜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타협하지 않는다며, 자신을 죽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스크를 벗으며 일그러진 '월터 코벡스'의 민낯이 드러납니다. 타협하지 않고 인간의 야만적 본성과 싸우며 괴로워하면서 정의를 울부짖던 '로어셰크'의 마스크에 가려졌던 민낯입니다. 로어셰크는 결국 닥터 맨하튼에게 죽습니다. 하지만 로어셰크는 죽지 않습니다. 로어셰크의 정체성은 마스크에 있기 때문입니다. 타협하지 않고 진실을 알리려했던 로어셰크의 마스크는 남았기 때문에 그의 기록이 담긴 일기장이 기자의 손에 넘어갑니다. 하지만 이 진실이 기사화될지, 아니면 그저 괴짜파일로 끝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영화가 그 이후의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이 영화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는 굉장히 이해가 안되네요. 그나마 캐릭터가 뚜렷하고, 대사도 좀 있는 캐릭터는 실크 스펙터 모녀뿐입니다. 하지만 샐리는 자신을 강간하려고 했던 코미디언과 이후 관계를 맺어서 딸을 낳습니다. 그리고 히어로로 살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게 지나쳐서 당시 자신의 히어로 캐릭터로 만들어진 포르노 책자를 보면서 흐뭇해합니다. 샐리의 딸인 로리는 어린 나이에 애인이 있는 존을 유혹하는데 성공하고, 존이 자신에게 소홀하다고 생각해서 결별을 선언하고는 다니엘과 관계를 가집니다. 그리고는 다니엘 앞에서 존을 그리워하는 말을 계속해서 언급합니다. 다니엘과 연인사이가 된 후에도 존이 부른다고 화성까지 가고, 심지어 자신을 사랑한다면 지구를 구할 것을 존에게 요구합니다. 존이 떠날때는 키스까지 해줍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캐릭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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