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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바라 Sep 09. 2015

참 열심히 살았는데, 이뤄놓은 건 없어 허무한 날

꼭 성공해야만 행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건 아니다

출처: pexels.com

'노력만 하면 안 될 게 없을 것'이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 규정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 가슴이 뛰던. 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 일어나면 된다는 낙관주의와 자신감에 차 있던.


  그때는 토익강사 유수연처럼 32살이 되면, <23살의 선택, 맨땅에 헤딩하기> 같은  성공 스토리를 출판하리라 마음 먹었었다. 아니, 32살 정도 되면 당연히 그 정도는 될 줄 알았다. 최소한 모교 홈 커밍데이에 멘토로 초청되어, 나처럼 고등학교 때까지 죽어라 공부해놓고 막상 결정적인 순간에 인문대를 택한 불운한 후배들을 모아놓고 '여러분, 저를 보세요. 제가 이렇게 해냈잖아요?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정도는 말할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32살이 넘은 나는 '성공'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인사평가에서 혹시 C를 받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역류성 식도염에 시달리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입사 초기엔 선배들로부터 일 잘한다는 칭찬을 참 많이 들었다. 한 과장님은 나를 가리켜 5년 정도 후에는, '업계에서 큰 일 낼 친구'라고까지 말씀하셨었다. 학창시절까지 노력은 한 번도 나를 배신한 적이 없었으므로, 직장에서의 성공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었다.


선배들의 다정한 격려에 으쓱해진 나는,
내가 몇 년 후엔 마크 저커버그나 에반 스피겔쯤 될 줄 알았던 모양이다.


최근에 <굿바이, 게으름>이란 책을 읽었다. 집안에서 빈둥대는 버릇을 고치고 싶어서다.


사실 집에서는 지독하게 게으른 나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정말 투쟁하듯 열심히 살아왔다. 대학 때는 합창동아리 지휘자, 교회에서는 3개 부문의 리더를 맡고 있었고, 과외는 항상 2개 이상 뛰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음악, 영어, 운동 등 배우고 싶은 건 다 배우고 다녔다. 친구를 만나 차라도 한 잔하려면 2주 전에 약속을 잡지 않으면 안 됐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남은 것은  형편없는 학점과, 막막한 미래뿐이었다.


 결국 핵심은 모든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

하루를 열심히 사느냐 안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늘 하루가 내일로 연결되어 삶의 지향성을 갖느냐, 아니면 그냥 하루하루의 연속일 뿐이냐가 중요하다.               
- 문요한, <굿바이, 게으름> 중에서

 

 취업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웹에이전시에 이어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서까지 하루 12시간 가까이, 또는 그 이상 근무하면서도 재즈 피아노도 계속 배우고, 책도 열심히 읽고, 리뷰도 열심히 썼다. 책 읽기 모임도 나가고, 토익시험도 2년마다 보고, 한겨레 교육문화센터에서  이것저것 배우면서 갖다 바친 돈은 또 얼마인지. 시간이 갈수록 당연히 연봉도 많이 오르고 역량도 향상되었지만, 항상 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속을 하염없이 걷는 기분에 사로잡혀 살았다.


행복은 길 위에서 피어나는 꽃이어야지 목표에 도달한 뒤 받는 트로피가 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이 만일 목표라면 그곳에 도달하기 전의 삶은 불행으로 물들 수밖에 없다.

나는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것도, 진정한 행복을 만나는 것도, 그리고 삶에서의 성공도 결국 하나라고 본다. 즉, 자기로서 살아가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결국 삶의 목적은 피어나는 데 있다.

 - 문요한, <굿바이, 게으름> 중에서


행복이, 목표에 도달한 뒤 받는 트로피가 되어서는 안 된다니?
33년 만에 이런 말은 처음 들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아니 그럼, 목표에 도달하지 않고 어떻게 행복을 느낀단 말이지?


우리는 삶을 레이스로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때는 명문 중학교를 가야죠. 명문 중학교 갈 때까지만 희생하자. 그럼 행복해질 거야.  명문 중학교 가면 외고에 가야 해요. 외고 갈 때까지만 희생하자. 그럼 행복해질 거야. 외고를 가면 서울대를 가야 하고, 서울대에 가면 대기업에 가야 하고 대기업에 들어가면 부장이 되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나이가 일흔이에요.

레이스가 된 삶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죠.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그래서 저는 순간순간 행복을 찾아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행복은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 박웅현, <책은 도끼다> 중에서


요새 일상생활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씁쓸해지곤 했다. 매일 매일 발전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고, 조금이라도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면 참기가 힘들어서 끊임없이 읽고 쉬지 않고 배우려고 발버둥쳤다. 물론, 매일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성취해야만 행복을 느끼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에야 존재 가치를 느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저자들은 말하고 있다. (심리학자나 정신과 전문의들은 이것을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나의 경우, 몇 년간 업무 강도가 아주 높은 회사에서 진이 빠질 때까지 일하다가 작년에 이직한 후 매출과 상관없는 비교적 덜 중요하고 한가한 업무를 맡으면서 극심한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졌었다. 회사에서 덜 중요한 업무를 맡는다고 내 가치가 떨어지는 게 아닌데도, 나는 마치 내가 범죄자라도 된 양 스스로를 멸시하고 학대했다. 그렇게 회사에서 성취욕을 채우지 못하게 되자, 그간 방향성 없이 여기 저기에 쏟아냈던 에너지들마저 완전히 방전되고  것이다.




사실 나는 옛날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고(아니, 그게 내 소명이라 생각해서 언젠가는 당연히 작가가 되어 있으리라 생각해왔고), 한때는 소설 창작 스터디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었다. 스터디가 흐지부지 끝나버린 후, 이상문학상이나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는 내 또래 소설가들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지만, 다시 습작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커지면  커질수록, 김애란 작가처럼 평단의 찬사를 한 몸에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할 만한 '대작'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해졌다.


(아무도 압박하지 않는데! 심지어 내가 작가 지망생인 것도 아무도 모르는데!) 그래서 아이러니컬하게도,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내 의지는 더더욱 완강하게 글을 쓰지 않겠다고 버텼다.  '내가 바라는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차이가 너무나 커서, 그 차이를 좁히려는 시도 자체가 마음에 너무  짐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성취에 집착하지 않게 되자,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실천하기가 훨씬 쉬워지고 그에 따른 계획과 목표도 또렷해졌다.


이제는 일주일에 두 번 또는 세 번, 나 스스로와 '글쓰기' 약속을 한다.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기로. 단편 소설도 좋고, 에세이도 좋고, 일기도 좋다. 꼭 김애란 작가처럼 최연소 이상문학상을 수상할 필요도 없다.


글을 쓰는 동안 마음이 편안하고,
내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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