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저지의 패션 디렉터가
바르셀로나로 떠난 이유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더 큰 파도를 타러 온 겁니다.

안녕하세요, 재미교포 Eric Cha입니다.

저는 현재 바르셀로나에서 3년째 패션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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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전 직접 찍은 뉴욕 출근길 & 바르셀로나의 정상 Tibidabo

보통 저를 소개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묻곤 합니다. "미국에서 디자인 디렉터까지 하셨다면서, 왜 굳이 힘든 유럽 시장에 다시 맨땅에 헤딩하러 오셨어요?"

은퇴 후의 여유로운 삶을 찾아왔냐고요? 천만에요. 저는 오늘, 제가 25년 차 패션 베테랑의 눈으로 본 '바르셀로나'라는 기회의 땅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25년, 바닥부터 임원까지 (From Retail to Director)

저는 1999년 미국 동부, 보스턴의 작은 옷 가게 점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매장 막내(Retail Associate)에서 시작해 매니저, 지역 관리자(District Manager), 그리고 바이어(Buyer)가 되기까지 수많은 옷을 직접 팔아치웠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물에서 놀고 싶다는 갈증이 저를 뉴욕으로 이끌었습니다. U Mass를 졸업 후 짐을 싸들고 Flushing Queens의 친구집으로 이사 갔습니다.


패션의 심장 뉴욕과 뉴저지에서 저는 미친 듯이 일했습니다. 생산 코디네이터(Production Coordinator)로 시작해 MD, 디자이너를 거쳐 Smoke Rise Denim Co. 와 New York & Company로 잘 알려진 Saadia Group (Xray Jeans Division) 같은 굵직한 회사의 디자인 디렉터(Design Director)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Southpole과 같은 스트릿 웨어 브랜드에서는 브랜드 매니저로서 5개 브랜드를 책임지며 브랜드 총괄급으로 일하기도 했죠.

기획, 생산, 디자인, 수입, 세일즈, 그리고 최종 소비자가 지갑을 여는 순간까지. 저는 패션 비즈니스의 A to Z, 즉 B2B와 B2C의 모든 과정을 23년간 몸으로 구르며 배웠습니다. 제 이름을 건 브랜드를 런칭해 쓴맛 단맛도 다 봤고요.

그렇게 커리어의 정점에 섰고 Fashion Industry에 어느 정도 인지도와 자신감이 생겼을 때,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갈길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피지 워터(Fiji Water)'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이야기는 현재 인터넷에도 많이 떠돌고 있는 친숙한 이야기 일 겁니다.


2. 피지 워터 이론 (The Fiji Water Theory)

피지 섬의 물은 무료겠죠. 어디에서나 신선하고 깨끗한 물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 물이 상품으로 브랜딩 되어서 달라진 장소에서 판매된다면, 예를 들어 미국 슈퍼마켓에 가면 3달러 그리고 뉴욕 레스토랑에 가면 5~6달러가 되고, 공항에서는 7~9달러가 되며, 이곳 스페인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부르는 게 값이 되기도 합니다. 찾을 수도 없어서 따로 Amazon 같은 곳에서 주문해야 합니다. $3 언저리에 팔리는 물 1리터가 스페인 아마존에서는 80유로, 즉 $95 정도네요. 가격은 그야말로 sky rocket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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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Target.com에 있는 Fiji Water 1L (왼쪽)와 Amazon Spain에 올라와 있는 Fiji Water 1L 가격비교 (오른쪽)

"상품은 그대로인데, 어디에 놓이느냐(Place)와 타이밍(Time)에 따라 가치는 천지 차이가 난다."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달은 순간, 저는 뉴욕의 패션 시장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뉴욕의 스트릿 웨어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었습니다. 공급은 넘치고 가격 경쟁은 정말 치열했죠. 제가 다니던 거의 모든 회사에서는 재고가 넘쳐나고 있었고, 그것들을 처치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으로 물가는 계속 치솟는데,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옷가게에서는 10달러에서 20달러 사이의 물건이 즐비했죠. 특히 TJ MAXX나 Burlington Coat Factory 또는 Ross 같은 곳을 가면 저렴한 옷의 바겐 천지이고요. 제가 몸담고 있던 25년간 미국의 대형매장의 옷값은 거의 안 올랐다고 체감했습니다. 그 상품들이 다 싸구려일까요? 아닙니다. 대부분은 누군가가 심혈을 기울이고 돈과 시간을 투자한 결과물이겠죠. 그러나 아무리 좋은 옷도 그곳에선 이를테면 '50센트짜리 물'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물을 가장 비싸게 쳐줄 사막은 어디인가?"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저는 런던, 파리, 로마를 거쳐 이곳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습니다.


3. 왜 하필 바르셀로나인가? (Why Barcelona?)

WhatsApp Image 2026-02-06 at 4.17.20 PM.jpeg 뷰 맛집 우리 집. 길 이름도 Vista Bella (Beautiful View) - 보이는 곳이 바르셀로나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라고 보면 됨.

제가 본 바르셀로나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습니다. 좋은 날씨. 비교적(?) 친절하고 낙천적인 사람들. 맛있는 음식. 지리적 이점.

제가 관광하며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바르셀로나는 부채꼴(Fan Shape) 모양으로 완벽하게 중앙집권화된 도시였습니다.

지리적 이점: 남쪽으로는 지중해 바다를 마주하고 양옆으로는 두 개의 강으로 막혔으며 북쪽으로는 산 (Tibidabo)으로 둘러싸인 지형 덕분에 상권이 흩어지지 않고 Psg. de Gracia길과 카탈루냐 광장(Plaza Catalunya)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응집되어 있습니다.


물류의 허브: 도시 깊숙이 들어온 항구와 공항은 무역의 최적지였죠. 항구가 공항보다 가까워요. 황영조 선수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로 잘 알려진 몬주익 언덕 바로 뒤에 있습니다. (위의 사진 중앙의 언덕 바로 뒤)


숨겨진 수요: 무엇보다 이곳 사람들은 '미국 패션'에 굶주려 있었습니다. Polo, Tommy Hilfiger, New Era, Nike, New Balance... 미국에선 흔한 브랜드들을 이곳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소비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Stussy 같은 스트릿 브랜드는 미국 본토보다 이곳에서 더 뜨거운 대접을 받고 있었죠.


저는 확신했습니다. "미국에서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Post-peak) 재고로 쌓여갈 양질의 스트릿 웨어를, 수요가 폭발하는 이곳 유럽에 공급한다면?"

뉴욕의 인맥을 통해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상품을 바잉 하고, 아직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유럽 시장을 공략한다면 승산은 90% 이상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바르셀로나를 거점(Hub)으로 마드리드, 더 나아가 유럽 전체의 스트릿 패션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이곳에 깃발을 꽂았습니다.


4. 베테랑의 새로운 항해

저는 지금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그리고 뉴욕과 뉴저지를 오가며 제 가설을 증명해나가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피, 99년부터 대학 진학으로 시작된 미국인의 비즈니스 마인드, 그리고 지난 3년간 직접 부딪히며 얻은 스페인의 현지 감각. 이 세 가지가 합쳐진 저만의 시각으로 이곳의 기회들을 하나씩 수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공간을 통해, 가이드북에는 나오지 않는 바르셀로나의 진짜 비즈니스 이야기, 그리고 한국 브랜드가 유럽 시장에서 놓치고 있는 기회들에 대해 하나씩 풀어놓으려 합니다.


뉴욕과 뉴저지를 종횡무진했었던 패션 디렉터가 40대 중반에 가족들을 데리고 선택한 두 번째 무대, 바르셀로나.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WhatsApp Image 2026-02-06 at 4.11.19 PM.jpeg 여정의 시작과 함께한 단출한 이민가방



[Eric Cha]

前 Smoke Rise Denim Co. Design Director


前 New York & Company / Saadia Group (Xray Jeans) Director of Mens Division


前 Southpole Brand Manager & Design Director


現 EU Business School - Master of Fashion & Luxury Business


現 바르셀로나 비지니스 컨설팅 및 Cross-Border Consumer Brand Strategist


現 Founder of Bostonian Trading Corporation S.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