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규칙

13

by 권지해

전북과 바르셀로나


K리그 1을 재미있게 본다. 매년 우승을 목표로 뛰는 전북 현대의 ‘닥공-닥치고 공격’ 경기를 보는 즐거움은 크다. 연두색인 듯, 형광색의 옷을 입고, 무턱대고 상대 골대로 진격하는 선수들에게서 원시적이고 생동감이 느껴진다. 선수들은 전쟁을 치르는 듯 진지하다. 공을 따라 네다섯 명의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이 달려든다. 같은 팀 구성원 간에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상대 수비수의 공간을 파고드는 장면은, 그 사이로 패스되어 들어오는 공을 보는 재미는 상당하다.


K리그의 전북 현대가 ‘닥공’ 축구라면, 스페인 라리가의 바르셀로나 축구는 예술 작품이다. 새벽 1~2시에 바르셀로나 축구 경기 중계가 있다면 운이 좋은 날이다. 시차로 인해서인지, 새벽 4시에 중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새벽 4시는 웬만한 정신력이 아니고서는 깨기 힘들다. 그러나 새벽 1시 정도야 얼마든지 잠을 참고, 생방송을 볼 수 있다.


세계 최고 기량의 선수들이 앞뒤로, 옆으로, 패스를 반복한다. 그러다 공격수와 수비수의 촘촘한 사이로, 1~2초의 짧은 순간에 세네 번의 패스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그러곤 어느새 골대 안까지 골이 운반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메시의 골이 터지기라도 하는 날은 정말 운이 좋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라 평가되는데, 그 선수가 또 한 골을 추가한다. 축구 역사의 한 장면을 라이브로 보고 있다는 감격스러움.


어느 영역이든 보통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노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일정한 수준, 아니 꽤 높은 수준에 다다를 수 있다 믿지만, 축구 경기를 보면, 특히 메시나 호날두와 같은 선수를 보면, 놀라운 재능과 엄청난 노력이 있어야만 저런 경지에 이르겠구나란 생각을 갖게 된다.


케이블카


제천에서 청풍호반 케이블카를 탔다.

“아빠는 케이블카 좋아?”

“아빠는 케이블카보다는 어디든 걸어서 올라가는 게 좋아?”

“근데, 저번에 남산에서도 우리 케이블카 탔잖아?”

“그건 네가 어렸을 때라서. 그리고 그날 시간이 많지 않았거든. 남산을 걸어 올라가려면 1시간 이상 걸렸을 텐데, 우리는 다른 일정이 있었어. 그래서 금방 타고 내릴 수 있는 케이블카를 탄 거야.”

“난 케이블카 좋은데. 여기 케이블카는 남산 케이블카보다 더 좋은 걸. 우리 가족만 타고, 멋있고, 앉을 수도 있고 좋다.”


“아빠는 산에 갈 때는 걸어 올라가는 게 좋아. 천천히 계속 오르다 보면, 땀이 많이 나거든. 땀을 닦으려고, 발을 멈추면, 그제야 얼마나 많이 올라왔는지 뒤돌아보는 거야. 그럼 어느 사이에 땅이 저 발아래, 눈 아래 들어와. 그걸 시야가 탁 트였다고 말하는 거야. 그때 마침 바람이 느껴지는 거야. 시원한 바람이.”

“탁 트였다가 무슨 말이야?”

“우리 집에서 하늘 바라본 적 있지? 우리 집에서는 하늘이 보이지만, 앞에 다른 아파트도 보이고, 큰 교회 건물도 보이잖아. 우리 눈과 하늘 사이에 무엇인가 자리 잡고 있는 거야. 그걸 시선을 막는다. 시야가 막혔다는 표현을 써. 반대로 우리고 보고 싶은 무엇인가와, 네 눈 사이에 아무 방해도 없이, 다 보일 때, 시야가 탁 트였다고 표현해.”


“아빠는 그래서 산을 걸어 올라가는 걸 좋아하는 거야?”

“지율이도 알겠지만, 우리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눈앞을 막는 것들이 많잖아.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보이고, 보고 싶은 것을 가로막는 것들이 많아. 그런데 산 위에서는 하늘만 보이고, 나무 같이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잖아.”

“그런데, 케이블카도 눈앞에 안 보이는 것 없이 다 보이는 걸.”


"그렇긴 해. 하지만 케이블카는 땀이 안 나오잖아. 산을 오르다 보면 땀이 나거든. 다리도 조금씩 아파오고. 땀이 많이 흐르면 아빠는 좋더라. 머리에서부터 난 땀이 머리카락을 타고 얼굴로 떨어지는 게 좋아. 다리가 아프고, 허벅지 부분이 부어서, 풍선처럼 터질 것 같은 적당한 통증이 좋아. "

“그게 뭐야. 땀나는 게 왜 좋아. 다리 아픈 건 왜 좋고?”

“땀을 흘릴 때, 무언가를 하고 있는 거 같아. 몸의 관절이 근육이 움직이고 있어, 살아있는 숨을 쉬고 있는 느낌. 아빠는 가만히 앉아 있을 때가 많잖아. 그냥 손가락이나 움직이고, 책을 읽고. 영화 보고. 그래서인지 움직이면서 땀 흘리는 게 좋아. 다리 아픈 것도 열심히 움직였구나. 운동량이 평소 내 근육량을 넘어섰구나. 평상시에도 조금 더 운동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돼.”

“그럼 아빠는 내가 좋겠다. 나는 엄청 땀 많이 흘리고, 엄청 잘 달리잖아.”

“응, 아빠는 운동 좋아하는 지율이가 좋아. 앞으로 지율이가 더 크면 산도 많이 가고, 운동도 같이 하면 좋겠어.”


케이블카를 타고 비봉산의 꼭대기에 올랐다. 케이블카를 내려서 두 개 층을 더 올랐다. 잠깐의 계단을 못 참고, 지아는 목마를 탔고, 지율이는 뛰어오른다. 케이블카 아래에서 내려다보이는 청풍호는 남해 바다 같았다. 곳곳에 섬이 있고, 평화로운 호수가, 잔물결 없이 전체 해안을 감싸고 있다.


“아빠, 멋지다.”

“응. 멋지다. 여기 이름이 비봉산이래. 다음에는 걸어서 올라올까?”

“그래. 그런데 너무 멀지 않을까? 그래도 아빠가 좋다니까 걸어 올라오자.”

“알았어. 한 번 올라와 보기다.”

“근데, 아빠, 이제 여기 다 봤으니까 축구하러 가자.”

“그래. ㅋㅋ 축구하러 가자.”


1537935088820.jpg


축구시합

제천의 숙소에서 지율이는 축구장을 본 모양이다. 케이블카를 오르자마자 아이는 축구를 하러 가자고 성화다. 비봉산을 배경으로 커피 한 잔을 마셨고, 그리고 아쉽지만 내려왔다. 축구를 하러.

“아빠. 시작.”


공을 하프라인에 두고, 두 사람이 서로 반대 골대에서부터 뛰어간다. 그냥 가위 바위 보로 공격 순서를 정하고 싶었으나, 축구 클럽에서는 이와 같이 공격을 정하나보다.


“지율아, 가위 바위 보로 정하자.”

“안 돼. 먼저 공을 차는 사람의 공격인 거야. 가위 바위 보로 정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실제 축구 시합에서는 동전 던지기로 순서를 정하는 걸. 네가 배운 게 틀린 건 아니지만, 모두 똑같은 규칙으로 정할 필요는 없어.”

“아니야. 배운 대로 해야 해.”


“배운 대로 해야지. 지율아. 네가 축구 클럽에서 배운 게 맞아. 그러니까 뒤에서부터 뛰어오면 돼.”

아내가 말한다.

“배운 대로 해야지. 왜 자꾸 자기 마음대로 규칙을 정하려 그래. 그리고 선생님이 한 말에 대해서 존중을 해 줘야지. 아이에게 다른 규칙이 있다고 말하는 건 교육적으로도 옳지 않아.”


“무슨 말인지는 알지. 당연히 나도 선생님들을 존중하지. 그런데 선생님들이 하신 말씀이 100%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건 아니잖아.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고, 다양한 규칙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도 괜찮지 않아. 21세기잖아. 창의력의 시대라고.”

“또 많이 나간다. 그냥 선생님 의견을, 학교를, 학원을 존중하자는 거잖아. 아이가 그래야 더 많이, 열심히, 성실히 배울 거고. 그냥 축구 경기 시작을 골대 라인에서부터 하면 되는 걸 가지고, 창의력까지 나오는 건 뭐야. 멀리 가진 말자.”

“예. 알겠습니다.”


결국 시작부터 힘들게, 골대에서부터 뛰어야 한다. 1:0, 2:0, 2:1, 3;1, 3:2, 4:2 한 골씩 넣고 있다. 지율이가 앞서다가 4:3, 4:4가 되었다. 이제 내가 천천히 뛰다가 지면 오늘 일과는 끝난다. 수비 위주의 전술을 편다. 지율이가 공을 골대로 힘껏 찼고, 나는 그 공을 한 번 걷어냈다. 조금 열심히 찼고, 차는 와중에 문득 호기심이, 호승심이 들었다.


반대편 골대까지 차면, 들어갈 것 같았다. 물론 들어갈 리 없다 생각하고, 힘껏 찼다. 문제가 생겼다. 그렇게 찬 공이, 실제로 지율이 골대로 들어가 버렸다. ‘킥 실력이 녹슬지 않았군’이라며 기분 좋았다가, 순간 당황했다. 지율이는 나를 상대로 항상 간발의 차로 이겨 왔었는데, 져 버린 것이다. 4:5. 그것도 대 역전극.


규칙과 응용


“뭐야. 반칙이잖아.”

“아니, 뭐가 반칙이야.”

“반칙이지. 골키퍼가 반대 골까지 차는 게 어디 있어? 말도 안 돼. 이건 취소야.”

“반칙도 아니고 취소도 아니지. 축구에서 골키퍼도 골을 넣을 수 있거든.”


“골키퍼는 골을 막아야지. 골을 넣는 거 아니거든. 선생님도 골대 밖으로 많이 나오지 말라고 하셨거든.”

“그건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지, 절대 안 된다는 건 아니야. 너희가 배우는 과정이니까, 일반적인 내용을 알려주시는 거야. 축구 규칙에서 골키퍼가 골대 주변 라인 밖으로 나와도 규칙 위반은 아니거든.”

“아니야. 아니야. 절대 아니야. 골 취소야.”


“지율아, 네가 잘못 알고 있을 수 있잖아. 네가 무조건 맞다고 하면 안 돼. 적어도 상대방 이야기는 들어 봐야지. 답이 무엇인지, 서로 알아가려 노력해야 하는 거야. 자기주장만 내세우면 다른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가 없어.”

“하지만 선생님이 알려준 거잖아.”

“모든 규칙에 절대는 없어. 규칙들은 상황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조금씩 바뀔 수도 있는 거라고.”

“그럼 그건 규칙이 아니잖아.”

“규칙은 결국 사람들이 경기를 하기에, 함께 지내기에, 함께 놀기에 불편함이 없기 위해 만든 거야. 규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규칙이 불편하고, 이상하다면, 고칠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어야 해.”

“알았어. 그럼 아빠가 이긴 걸로 하고, 다시 해.”

“그래, 아빠가 이긴 거야. 시합은 좀 이따 하자. 우린 얘기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왜? 시합 다시 하자.”

아내가 옆에서 구경하다 한 마디 한다.

“또 진지해졌다. 그냥 축구 게임이잖아. 가볍게, 가볍게. 뭘 8살짜리 아이한테, 규칙을 바꿀 수 있는 거라고. 저 나이에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그 믿음을 지켜주는 게 옳은 거 아냐.”

“물론 당신 말이 옳지만, 그래도 이 게임은 내가 정당하게 이긴 거라고. 정당하게 이겼는데, 무조건 우기는 건 아니라고.”

“알았어요. 8살짜리 이겨서 좋겠네요.”


음... 억울하다. 나는 정당하게 이겼고, 틀리지 않은 말을 했음에도, 왠지 유치한 아빠가 되어 버린 것 같다. 내가 아는 제대로 된 규칙대로 행했음에도, 지율이가 아는 규칙과 다르다고 일부러 져 줄 수는 없었다. 지율이가 누구와 어떤 게임을 하든, 자신이 아는 바가 전부라고 우긴다면, 친구들은 점점 멀어질 것이다.


자기가 아는 것만 옳다고 하는 사람을 주변 사람들이 좋아할 리 없다. 자신이 아는 것 이외에, 다른 의견이 있다면 함께 듣고 고민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그러니 이 게임이, 단순한 8살짜리와의 축구 시합이 아니라, 규칙과 옳고 그름에 대한 교육으로 이어가길 바란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나만의 아집’ 일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열려 있는 아집이길.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여력이 있는 아집이, 꽉 막힌 규칙보다 나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아빠, 그럼 우리 둘이 축구할 때에 새로운 규칙을 만들 수 있는 거야?”

“그럼, 우리 둘의 시합이라면, 둘 사이에 합의에 이르면 새롭게 규칙을 만들 수 있는 거지.”

“그럼, 밖으로 나간 공 소유는 먼저 그 공을 잡는 사람 게 되는 거다.”

“야. 그건 아니지. 밖으로 차낸 사람이 있으니까, 상대편 소유가 되어야지.”

“뭐야. 새롭게 규칙 만들 수 있다며. 이건 왜 안 되는데.”

“아빠가 합의하지 않았거든.”

“빨리 합의해. 합의한 거다. 게임 시작.”

“야. 권지율... 야. 그건 진짜 아니다.”

“자... 슛!!”


지율이는 내가 한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걸까. 축구를 하든, 공부를 하든,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연습 방법으로 몸을 단련해야 한다. 규칙을 알아야 하고, 이전에 쌓여온 다양한 시합의 내용을 통해 전술, 전략을 알아야 한다.


메시를 좋아한다. 170Cm 즈음의 키로, 180Cm가 넘는 거구들에게 밀리지 않는다. 장신의 숲을 뚫고, 드리블과 발만으로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되었다. 얼마만큼의 노력과, 끝없는 자기 관리, 부상과의 싸움, 축구 전술에 대한 이해와 그에 따른 연습이 따랐을까.


지율이가 열린 마음을 가지길 바란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호기심과 이기고 싶은 호승심을 가지길 바란다. 그에 따라 노력을 하길 바란다. 이런 욕심을 가진 아빠는, 과연 이 아이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될지 벌써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