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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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지해

방학특강


여름방학 미진 수영장에서 ‘어린이 방학 특강’이 열렸다. 지율이는 물을 좋아하되, 무서워한다. 발을 담그고 몸을 담그는 것은 좋아한다. 눈에 물이 들어가고, 머리카락이 젖는 것을 무서워한다. 여름 바닷가를 갈 때, 구명조끼를 입고, 튜브를 타고 논다.


나는 물에 몸 전체를 담그기를 사랑한다. 심지어 사우나를 가서도, 온탕에서도 머리까지 입수, 냉탕에서도 몸 전체를 입수한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부유하는 느낌이 들어야 비로소 물에 들어왔다는 느낌을 받는다. 옆에서 구명조끼 없이, 튜브와 무관하게, 수영하는 아빠가 자유로워 보였는지, 즐거워 보였는지, 지율이가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마침 집 인근 미진 수영장에서 ‘어린이 방학 특강’이 열렸다.


첫 일주일 동안 숨쉬기 ‘음~ 파.’를 배웠다. 그리고 이틀째부터 ‘발차기’를 배운다. 발차기를 행하면서 ‘음~파’를 해야 하지만, 발차기와 음~파를 동시에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라 보였다. 실제로 지율이는 음~파와 발차기를 끝내 같이 하지 못했다. 4주 동안 발차기나 음~파를 하면서, 방학이 지났다. 지율이는 방학이 끝난 이후에도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는 건 어렵다. 특히 몸으로 배우는 건 어려움이 따른다. 수영은 대학교 4학년 때 배웠다. 대학 졸업에 필요한 모든 학점을 이수했다. 영어 기준 시험을 통과했다. 다음 해 2월 달이 되면, 초급 장교로 군대를 입대한다. 군대라니. 무조건 가야 하고, ROTC를 선택한 건 나이지만, 조금은 답답했다. 그래도 2년 동안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져 있기에 마음은 편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했고, 동아리 생활을 제법 열심히 했다. 동시에 군사학 수업을 들었고, 교육학을 배우며 교직을 이수했다. 군대를 가기 전에, 나를 위해 무엇인가 별다른 효용이 없어도 괜찮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다. 그게 수영이었다.


어른에게 배움이란?


스물네 살 신체가 가장 건강한 때에도 수영은 발차기와 음~파로 시작됐다. 어른이어서인지, 발차기 하루 만에, 음~파를 배웠다. 일주일쯤 후에, 음~파와 발차기를 동시에 할 수 있게 되자 선생님은 팔 돌리기를 알려주었다. 킥판을 들고, 2주일 후, 자유형 발차기만으로 25M 레인을 왕복으로 다녀오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날 때에는 중간중간 쉬기는 했지만, 25M 레인을 킥판 없이 자유형으로 오고 갈 수 있었다.


두 달 때부터 배영과 평영을 배웠다. 11월 즈음부터 2월까지 자유형, 배영, 평영을 배웠다. 배영은 자유형을 거꾸로 한다고 생각하니 쉬웠다. 숨을 편히 쉴 수 있어 금세 배울 수 있었다. 평영 역시 호흡을 편히 할 수 있는 개구리 영법이었고, 온몸으로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편한 영법이었다.


누군가가 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싶어서 하는 것이어서인지, 수영 배우러 가는 길은 즐거웠고, 수영장에서 성실히 강사 분의 말을 따랐다. 나에게 있어 배움은, 상대방의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내 머릿속에 이식하는 것. 최대한 비슷하고, 똑같게. 성실히 배움에 임하면, 선생님은 그분 머릿속에 있는 더 많은 지식을 내게 전해 준다. 이식된 내용은, 손으로, 몸으로, 익히고, 반복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수영이든, 공부든, 모든 배움이 그러하다 믿었다.


군대에서 소대장을 할 때, 중대장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난 초보였기에 그의 말을 따르면 된다고 다짐했다. 중대장의 말을 잘 따랐으니 대대장의 말은 오죽 잘 따랐을까. 1년이 지난 즈음에 단기 장교로서는 드물게, 대대 군수장교가 되었다. 보통 ROTC 장교들은 소대장 2년 마치고 중위 계급장을 달고 군대를 전역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장교들은 2년 차 즈음에는 인사장교나 교육장교를 맡게 된다. 군수장교는 군대 생활을 더 오래 한, 연차가 있는 중위나 대위가 맡던 직위였다. 대대장님은 말을 충실히 따르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군대를 전역한 이후, 직장을 구했다.


직장에서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었다. 윗분들의 말에 충실히 따랐다. 퇴근 시간 역시 정해진 시간보다 대체로 늦은 퇴근을 했다. 직속 부장님이 퇴근하지 않으면, 나 역시 퇴근하지 않았다. 부장님보다 먼저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게, 무엇을 잘하지는 않아도 성실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직장 생활이라 생각했고, 삶의 방식이라 여겼다.


자맥질


지율이는 수영장을 가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면서 물속에서 끝없이 자맥질을 한다. 자맥질이란 말을 사전에서, 소설에서 들어보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지율이가 물속에서 난리 치는 것을 보며 자맥질의 정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사전에는 나온다. 물속에서 팔다리를 놀리며 떴다 잠겼다 하는 행위. 지율이는 자신보다 앞 순서의 아이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영법을 행할 때까지, 몸을 물속에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 머리를 담았다, 몸을 던졌다, 물에 떴다, 팔을 허우적거리고, 다리로 발버둥 친다. 선생님 뒤에서 몇 번을 그러다 보면, 선생님이 물속에 담겨있는 지율이의 팔을 잡아끈다.


육아휴직을 한 이후, 지율이를 따라 수영장을 간다. 미진 수영장은 보호자가 피교육생을 볼 수 있도록 수영장 밖, 대형 유리창 밖에 의자들을 마련해 놓았다. 아이들은 안에서 밖에 있는 부모를 볼 수 있고, 부모들은 밖에서 수영장 안에 있는 아이를, 선생님을 볼 수 있다. 지율이는 아빠가 자신을 보고 있음이 무척이나 든든한가 보다. 원래 이리 까불었나 싶지만, 앞에 선생님이 계시는데, 까부는 정도가 무척 심각했다. 그래서 주의를 주기로 마음먹는다.


두꺼운 유치창이라 들리지도 않겠지만,

“지율아. 지율아. 앞에 봐. 앞에, 선생님 봐.”

(입모양만으로, 옆에 다른 어머니들이 있기도 하고, 유리창이 앞을 막고 있으니 들릴 리도 없다. 그래서 아주 조용히 말한다.)


“응? 뭐?”

(지율이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입모양만으로 대답한다.)

“선생님 앞에 계시다고, 앞에 집중하라고.

“뭐라고?”

(옆에 다른 엄마들 눈치가 보인다. 엄마들은 안에서 아이들이 어떤 모습을 하든 다들 가만히 앉아 있다. 나만 이런다.)


“집. 중. 선. 생. 님.”

“OK!"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오케이를 만들어 대답한다.)



80년대 애국조회


선생님은 그런 지율이를 혼내지 않는다. 어린 시절 기억과 다르다. 월요일 아침 애국조회 시간이면, 전교생이 일렬로 주욱 서 있어야 했다. 요즘에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애국조회가 사라진 것 같다. 80년대 말, 매 월요일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줄을 맞춰 서서는 교장선생님의 훈화를 들어야 했다.


10분을 넘겼고, 전체 행사 시간을 포함하면 30분은 되었을 거다. 뜨거운 8월 여름에 땡볕의 운동장에서 30분을 서 있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30분 동안 떠들거나 자리에서 벗어나면, 혼나거나 벌을 서야 했다.


“야. 누가 떠들어. 조용해야 할 것 아냐?”

무서웠던 담임 선생님이 한 마디 한다. 그럼 오랜 훈화 말씀에 지루해, 수군대던 아이들이 모두 조용해졌다.


“조용히 해. 듣는 것도 수업이야. 인내하고, 참는 거. 그것도 수업이야.”

인내하고 참는 것도 인생에서 필요할 터였다. 그런데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옆의 친구가 있는데, 날은 더운데, 교장 선생님 말씀은 잘 들리지 않는데, 그저 묵묵히 기다리기만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과거에는 대체로 그랬다. 기다릴 때에 조용해야 했고, 수업을 들을 때에도 조용히 해야 했다. 질문을 하는 것보다는 충실히 듣고, 잘 참고 인내하며, 문제를 잘 푸는 것이 모범생인 줄 알았다.


초등학생에게 배움이란?


수영장의 선생님은 아이들을 혼내지 않았다. 물속에서 자맥질을 하든, 친구들끼리 약간의 물장구를 치든, 나무라지 않았다. 보는 나만 불안해했지, 아이들은 기다리면서 놀았고, 선생님은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을 순서대로 지도했다.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배우는 것은, 참는 것이, 인내하는 것이, 주가 아니었다. 노는 것이 주가 되어야 하고, 다음이 배움이었다. 노는 일이 배우는 것이고, 배우면서 노는 것이 8살에 맞는 교육. 그러고 보니 지율이는 피아노 학원에서도 손가락의 움직임을 배우지 않았다. 반복적으로 도레미파솔라시도, 도시라솔파미레도 등을 하지 않았다.


모차르트의 ‘작은 별’을 연주했고, 동요 ‘나비야’를 채 한 달이 되기 전에 연주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배움이란, 재미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지율아, 피아노 학원 재미있어?”

“응. 재미있어.”

“아빠는 피아노 칠 줄 알아?”

“아니, 아빠는 피아노 칠 줄 몰라.”

“왜 몰라? 내가 알려줄까?”

“아니야. 아빠는 괜찮아. 지율이가 피아노 쳐 주면 아빠는 들으면 안 될까?”

“좋아. 그럼 들어봐. 내가 칠게. 나 잘 피아노 잘 치거든.”


이 대책 없는 잘난 척에, 왕자병은 어찌해야 하는지.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율은 잘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잘한다고 말하는 걸까. 진짜 자신이 잘한다고 믿는 걸까?


“응. 열심히 잘 들을게.”

지율이의 연주를 듣는다. 들어야만 한다.


수영장을 간다. 매번 유리창 앞에 앉아 지켜보아서 그런지, 이제 수영장 선생님과 목례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가끔 눈을 마주치는데, 수업 전ㆍ후에 가만히 앉아 있기가 민망하여 인사를 한다. 그러다 보니 뒤에서 까부는, 수없이 자맥질을 하는 지율이가 불편하다.


불편하고 불안하면 안 되는 것 같지만, 여전히 아빠는 불안하다. 차분하고 말 잘 듣는 아이로, 선생님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침을 받으면 좋을 텐데 하는 노파심이 든다. 뭐, 아빠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지율이는 즐긴다.


어릴 땐 몰랐다. 배움은 즐거움이란 사실을. 무엇인가를 새로이 안다는 건, 머리와 몸이 새로워진다는 건, 굳이 결과만이 아니라 배우는 과정에서조차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몰랐었다. 지율이를 통해 또 하나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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