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하나의 습관을 완성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다이어트를 위하여 밤에 10Km씩 달린다. 30 중반에 들어서면서 샤워 후, 세면대 거울에 비친 모습이 어색해졌다. 배에는 살이 붙기 시작했고,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옆구리 선이 사라졌다. 볼의 턱 선이 둥글게 변한 기분이 들었다.
회사 생활을 하며 회식이 잦았고, 술을 많이 마셨으며, 휴일에는 운동보다 낮잠을 택했다. 살이 붙음은 당연했다. 체중계를 구매했다. 취업과 결혼 후에도 몸무게는 64~65Kg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도착한 샤오미 체중계의 숫자는 68~69Kg을 오가고 있었다.
움직이는 숫자가 68에서 멈추길 바랐지만, 멈춘 숫자는 69.37이었다. 분명 살이 찌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살이 옆구리와 배에 붙어 있었다. 무려 4Kg이, 결혼 초기보다 삼겹살 여섯 근이 온몸에 붙어 있었다. 보통 식당에서는 삼겹살 1인분이 200g을 넘지 않는다. 결혼 후로 내 몸에 20인분 어치의 삼겹살이 늘어 붙어 있음을 상상하니 두려웠다.
다이어트가 필요한 시점이다. 검색을 해보니, 밥을 안 먹고 하는 다이어트는 독(毒)이라 한다. 간단히 생각했다. 10Km 달리기를 시작하자. 아침에는 출근해야 하니 불가능, 회사에서 돌아와서는 아이들과 놀아야 하니, 오후에도 불가능. 밤 10시 즈음 아이들이 잠드니, 밤 10시에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에 3~4번을 뛰기로 한다. 주말에는 가족 모임이 많으니, 주중에 3회 이상을 달려야 한다. 달리려 마음먹으니 부수적인 다이어트 효과가 생겼다. 일주일에 2,3회 있던 회식이 줄었다. 술을 마시면 달릴 수 없으니, 술을 의식적으로 마시지 않으려 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술에 포함되어 있는 칼로리 섭취량이 줄었다. 술안주를 먹지 않게 되어 몸에 들어가는 음식물 양이 줄었다. 술자리라고 다 끼지 않게 되었고, 편하게 달리기 위해서 저녁 식사량을 조금 줄였다. 그렇게 10Km 달리기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밤 10시가 되면 무조건 나갔다. 비가 조금 오더라도, 미세먼지 상황이 다소 좋지 않더라도 달렸다. 무엇인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좋다고 한다. 주변에 알림으로써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더 한다고. 또한 주변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10Km를 달린다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네 나이에 무릎 나가는 것 아니냐?’, ‘10Km는 힘들 수 있으니 천천히 거리를 늘려라.’, ‘미세먼지가 몸에 더 안 좋으니, 미세먼지 있는 날을 뛰지 마라.’ 등의 염려를 들었다. 이유 있는 걱정이다. 하지만 건강이 목표가 아니라, 다이어트가 목적이었다. 무조건 달리면, 무조건 살이 빠지리라 믿었다.
약 1시간 정도를 달리고 와서, 윗몸일으키기 50회와 팔 굽혀 펴기 50회를 이어했다. 그리고 샤워를 한다. 11시 30분 이후로는 맥주나 가벼운 간식을 먹지 않았다. 배가 무척 고프면 우유 한 잔을 마셨다. 가끔은 두 잔.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몸무게가 67Kg으로 떨어졌다.
아이들이 가끔 밤 10시까지 잠들지 않더라도 밖으로 운동을 하러 나간다. 나와 가족 모두 알고 있는, 하나의 습관이 만들어졌다. 두 달 동안 정해진 시간 반복적으로 움직였고,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몸에 변화가 왔다.
습관(習慣)? 관성(慣性)?
집에는 TV가 없다. 무선 인터넷 공유기와 셋톱 박스, 인터넷 전화가 한 세트로 묶인 통신 장비는 있으나, 통신 신호를 받아 화면에 구현하는 모니터는 없다.
지율이는 TV를 많이 봤다. 처음에는 ‘터닝 메카드’ 만화 하나로 시작했다. 하루에 만화 한 편, 30분은 괜찮다 여겼다. 그러다 점차 ‘짱구는 못 말려’, ‘안녕, 자두야’, ‘베이블레이드’ 등을 챙겨 본다. 정해진 만화 말고도 텔레비전을 켜고 채널을 돌리며, 만화라면 무엇이라도 보는 단계에 이르렀다. 영상에 중독된 것처럼 보였다. 아내는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텔레비전을 버리는 것으로.
신기하게도 지율이는 텔레비전이 없어진 이후, 만화를 보지 않는다. TV를 다시 사자고도 하지 않는다. 엄마가 있을 때에는 알아서 학교 숙제와 구몬 숙제를 한다. 문제 상황의 발생은 엄마가 회사에서 일이 늦을 때이다.
지율이와 함께 학교 숙제와 구몬 숙제를 한다. 아이는 앉아 숙제를 풀고, 옆에서 지아에게 책을 읽어 준다. 잠시 후, 아이가 먹고 싶다는 토마토 파스타를 만든다. 파스타 면을 8분 정도 삶고, 양파를 썰고, 소시지와 함께 프라이팬에 볶는다.
마트에서 사 온, 토마토 파스타 소스를 붓고, 맛의 풍미를 위해 진짜 토마토도 하나 으깨어 넣는다. 삶은 면을 소스 등과 함께 프라이팬에 넣고 1~2분 섞어, 소스가 면에 스며들게 한다. 그리 만든 토마토 소시지 스파게티를 지율은 좋아한다.
8살 어린아이가 영어로 말하고, 수학 세 자릿수 더하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안쓰럽다. 입에 과자라도 하나 넣어주고 싶고, 원하는 바를 채워주고 싶다. 숙제를 모두 마치면 딱히 할 일도 없다. 밤에 놀이터에 나가 놀기에는 조명등이 있더라도 어둡다. 동화책을 두 권 읽은 후에, 슬며시 말을 꺼낸다.
“지율아, 우리 영화 볼까?”
“정말? 좋아!!”
“그럼 어른들이 다 알고 있는 영화 보자.”
“뭔데?”
“오늘은 ‘오즈의 마법사’ 보자. ‘도로시’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야.”
“‘오즈의 마법사’도 어른들이 다 알아? 마치 ‘타잔’처럼?”
“응. 어른들은 다 알아. 아마 네 친구들도 아는 애들이 있을걸.”
“그래, 그럼 얼른 보자.”
엄마가 회사에서 오기 전, 몰래 빔프로젝트에 IPTV를 연결하여, 우리는 영화를 본다.
오즈의 마법사
‘오즈의 마법사’를 보고 난 후, 지율은 도로시가 좋다고 말한다. 영화 초반에는 겁이 많고 두려움이 많아 보였지만, 친구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용기와 지혜를 내서 싸움을 하는 도로시가 멋져 보였나 보다. 그냥 주인공이라 좋아 보였을 수 있다.
도로시는 자신을 평범한 소녀라 여기지만 마음 깊은 곳에 용기와 지혜가 존재한다. 평탄한 삶 아래에서는 사람의 능력이 드러나지 않는다. 잠재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을 해야 하고, 위기에 닿았을 때에야 비로소 본인도 몰랐던 능력이 발현된다.
첫 장면의 주저하고 망설이던 도로시와, 마지막 장면의 결단하는 도로시는 다르다. 욕심 많고 못되게 구는 서쪽 마녀에게 저항하고, 용기를 내는 도로시는 멋지다. 동화는, 영화는, 삶의 비유다. 도로시는 대체로 망설이고, 주저한다. 우리들처럼.
지율이는 가정식 어린이집을 다녔다. 5살이 되어 유치원을 다닐 나이가 되었을 때, 몇 군데 병설 유치원의 추첨에 참여했다. 집 주위 병설유치원이 있는 초등학교에, 친인척을 동원하였다. 팀을 꾸려 유치원 추첨에 나섰다. 사립 유치원은 원비가 한 달에 50~60만 원에 달하였고, 다른 부대비용까지 포함하면 꽤 큰돈이 들었다.
국공립의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원비가 존재하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공무원이기 때문에 교사들의 처우가 더 나을 거라 믿었다. 선생님들의 마음이 안정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여유가 있고, 편안하면 좋겠다. 가르치는 분들이 편하고 여유로워야 아이들에게 여유롭게 대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거리가 좀 있다고 하더라도 집 인근의 국공립 유치원으로 추첨 원정을 떠났다. 강화도 할아버지가 서정초등학교에, 강화도 할머니가 영도초등학교에, 이모가 경인초등학교에, 아내는 월촌초등학교에 각각 추첨자 대표로 나섰다.
할머니의 손이, 황금손이었다. 영도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첫 번째로 뽑은 추첨 번호를, 할머니는 손에 들고 있었다. 영도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들어간 5살의 지율이는 친구들을 잘 사귀지 못했다. 선생님을 어색해했으며,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5살 어린아이가 유치원에서 새로이 친구를 사귀고, 사람을 이해하고 이해받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시간은 흐른다. 1년의 시간은 처음 만난 아이들에게 어색함도, 낯섦도 이겨낼 수 있게 한다. 하루 종일 같은 교실에서 머물던 아이들은 천천히 친해졌고, 유치원이 끝난 후 놀이터에서 놀았다. 유치원 졸업할 때까지 지율이는 어떤 성향의 아이들이 자신과 어울리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지를 알게 되었다.
신목초등학교
지율은 친했던 친구들과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은 영도 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지율이는 신목 초등학교를 입학한다. 걱정이 앞섰다.
학교 가기를 두려워하거나 어색해하면 어떻게 하지? 영도 유치원 초기처럼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면 어쩌나를 걱정했다. 지율이는 첫 장면의 도로시처럼 어리고, 겁이 많고, 주저함이 많은 아이임을 안다. 아니, 모든 어린아이들은 어리고, 겁이 많고, 주저한다.
“지율아. 학교 어땠어?”
“응. 그냥 그랬어.”
“선생님은 어떠신 거 같아?”
“좋아.”
“오늘 짝꿍이랑 얘기했어? 이름은 뭐야?”
“얘기 안 했거든. 그리고 아직 짝꿍 이름은 몰라.”
“아~ 그래. 내일은 그래도 얘기하지 않을까?”
“모른다니까.”
“지율아. 내일은 짝꿍한테 지우개 빌려달라고 말해봐. 야!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야. ‘지우개 빌려줘’부터.”
“아이참. 피곤해. 나 그만 얘기할래.”
“응. 응. 알았어. 그만 물어볼게.”
학교를 보낸 첫 며칠은 짝꿍과 이야기를 했는지, 선생님은 어떠신지를 끝없이 물어보았다. 지율이는 그래도 꽤 여유 있게, 차근히 대답해준다. 그리고 마침내 3일째 되는 날, 지율이가 짝꿍의 이름을 알았고, 짝꿍과 대화를 했다.
“짝꿍 이름 뭔지 이제 알아?”
“응. 최서윤”
“아! 여자 아이로구나.”
“두 명 빼고는 다 여자애가 짝꿍이거든.”
“그래. 서윤이랑 어떤 얘기했어.”
“몰라. 기억 안 나.”
“야. 그래도 기억해야지. 서윤이는 예뻐?”
“아~~ 몰라. 이상한 걸 물어봐 아빠는.”
이상한 걸 물어봤다. '미안. 지율아.' 너희들은 다 예쁘다는 사실을 아빠는 잠시 잊었다. 지난 이틀 동안 말 한마디 안 했을 지율이로 인해, 괜스레 집과 거리 있는 영도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보냈나 하는 후회를 했다.
집 인근의 유치원을 보냈다면, 유치원 친구들이 그대로 초등학교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테니까. 집과 거리가 있는 유치원을 보내는 바람에, 아는 얼굴 하나도 없는 초등학교를 가게 된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주저함과 초초함이 많은 아이인데, 또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마음고생하는 것 같아 걱정이 많았다.
삼일만에 지율이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난 즈음에는 친구 녀석 하나가 집으로 놀러 오기도 했다. 씩씩하고 주저함 없이 자라고 있는 지율이가 고마웠다.
몰랐다. 지율이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잘 지낼 수 있는 성격임을. 운동을 좋아하고, 활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지율이 어리다는 사실과 아이들을 처음 만나기 때문에 주눅이 들까 걱정만 했다. 활달함이 어색함을 이겨 낼 수 있는 요소임을 잊었다.
영도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친구들이 생각나지만, 신목초등학교 친구들도 좋다는 지율이가 멋지다. 유치원과 다른 환경에서도 잘 지내고 있어 고맙다. 앞으로도 지율이는 어색함과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바란다. 자라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낯선 환경과 마주해야 한다. 그 긴장을, 불안함을 이겨내는 아이로 자라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