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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캔다고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서를 냈다. 체험학습을 강화도 처갓집으로 간다. 장인은 서울에서 오래도록 직장생활을 하셨고, 퇴임 후엔 강화도로 집을 옮겼다. 그게 10년 전 즈음의 일이다. 서울에서 멀지 않고, 전원생활도 가능한 곳을 물색하다 강화도에 새로이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하고 계신다.
장인, 잠모 두 분 모두 정정하시고, 농사일로 바쁜 나날을 보내신다. 계절 내내 상추와 깻잎을 키운다. 때가 되면 고구마 농사를 짓는다. 굳이 농사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고구마 재배를 한 후에는, 고구마로 몇십 박스를 채운다. 그 많은 박스들을 친척과 지인들에게 나누어 준 후, 사람들에게 판다. 그러니 텃밭에서 취미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농사 수준의 재배가 맞다.
고추를 심고, 키우고, 따고, 말린다. 김장철을 대비해 배추를 심는다. 그중에 지율이가 좋아하는 작물은 고구마다. 일하기 싫어하는 내 성격에는 모든 농사일이 맞지 않은데, 지율이는 다르다. 고구마를 캘 때에는, 고구마 줄기를 먼저 제거한다. 작은 호미로 뿌리 되는 부분들을 찾아 땅을 파헤친다. 땅을 헤치다 보면, 초등학교 1학년생 주먹의 4~5배는 됨직한 거대한 고구마가 모습을 조금 드러낸다. 하나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한 뿌리에 네 개에서 여섯일곱이 뭉쳐 있다. 그것들을 상처가 나지 않게 하나씩 뽑아 올리는 재미가 지율이에게는 꽤 큰가 보다. 물론 8살의 손에 잡혀 있는 호미는 매번 고구마에 상처를 내고, 상처 난 고구마를 보면 할머니 마음에도 생채기가 생긴다.
작은 호미를 들고, 쭈그리고 앉아 이랑에 일정한 간격으로 묻혀 있는 녀석들을 캐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할머니들은 왜 허리가 굽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할아버지보다 할머니들이 허리가 더 굽어 보였다. 어린 시절에는 몰랐지만, 어른이 된 후, 뼈의 약화 등이 원인이라고 알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뼈의 약화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농사일이란 것이 내내 허리를 굽히고 해야 한다. 벼를 허리 숙여 심어야 하고, 콩을 허리 굽혀 심어야 한다. 허리 굽혀 감자를 캐야 하고, 고구마 역시 허리를 한껏 구부린 채 캐내야 한다. 몇 시간이고 허리를 굽히고 일을 하다 보면, 젊은 나이인 나로서도 허리가 굳어지고, 뻣뻣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잠시 쉬기 위해 허리를 펴면, 허리에서는 ‘뚜두둑’ 소리가 나고, 입에서는 ‘아구구’ 소리가 나온다. 매일을, 몇십 년을 그리 허리를 굽히고 일을 하셨으니 어머니들은 나이가 들어가며 당연히 허리가 굽어지는 것이 아닐까. 결혼 후 처음 접했던 농사일로 인해 할머니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낮 동안에는 허리 굽혀 농사일을 했고, 밤이 되면 못 마시는 술을 마셨다. 젊은 시절의 나는 왜 힘든 일을 하고, 새참으로 술을 마시는지, 밤이 되면 또 술을 이어 마시는지 알 수 없었다. 몸에 해로운 술을 낮과 밤을 어어 마시는 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권서방, 와서 한 잔 들어야지.”
“예.”
“한 잔 마셨어? 그럼 또 받아야지. 한 잔은 아쉽잖아.”
술을 좋아하는 어른들은 한두 잔을 마시지 않는다. 쌓아 놓은, 사놓은 술을 모두 마신다. 한두 병을 마시는 건 자존심 상하는 듯이, 서너 병, 네다섯 병을 마신다. 처가 어른들이 권하는 술을 피할 수 없었던 사위는, 낮에 일하고, 밤에 술을 마시고, 깊은 밤에 구토하는 일이 잦았다.
“권서방 어디 갔어?”
“화장실. 그러니까 그만 좀 줘요. 사람이 힘들어하잖아.”
“어디 내가 주간. 지가 잔을 계속 비우잖아. 빈 잔을 그럼 그냥 둬. 채워야지.”
“성격이 잔을 거절 못하잖아. 그러면 아빠가 알아서 그만 줘야지. 어디 저 사람이 이제 그만 마시겠습니다. 하냐고.”
화장실에서도 아내가 하는 말이 다 들린다. 나를 생각해 주는 아내가 고맙고, 술을 못 이겨 화장실에서 구토하는 내가 싫다. 아버님이 술을 더 마시자 할까 화장실 나가기가 주저되고, 아버님이 이제 너 술 안 준다 할까 걱정된다.
“어~ 권서방. 속 괜찮아?”
“예. 괜찮습니다. 그냥 소피보고 온 겁니다.”
조용히 화장실 문을 닫고, 조용히 구토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밖에서 말하는 소리가 안에서 들리듯, 안에서 울리는 작은 소리 역시 밖의 사람들에게 들렸던 모양이다. 신기한 건 화장실에서 구토하는 횟수는 세월이 흐를수록 줄어들었다. 장인어른이 건네는 술의 양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어른들 말씀대로 술은 마실수록 느는 건 맞나 보다.
처갓집에서만 마시지 않았다. 직장 생활의 연차가 쌓이며, 마시는 술의 양도 늘었다. 술을 마신 세월이 많아지면서, 하루에 마실 수 있는 술의 양도 많아졌다. 직장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에게 먼저 술 한 잔 하자고 권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며, 술을 피하지 않았고 즐기게 되었다. 어른이 되며 목욕탕의 온탕에 몸을 담글 때, 시원하다고 말하는 것. 쓰디쓴 술을, 몸에 좋지 않은 술을, 찾아 마시는 것.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사위의 모습에 장인어른은 술이 늘었다며 좋아하신다.
결혼 초기 처갓집을 가면 일단 옷을 편하게 갈아입었다. 농사일에 적합하도록 편하고 오래된 옷을 입었는데, 마음은 편하지 않고 불편했다. 내가 먹지도 않을 것들에 왜 노동력을 투입하고 있나를 고민했다. 심지어 하루 일당이 얼마인가를 계산했다.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처가에 있는 내내 마음이 꽁했다. 하여 처갓집을 가는 도로 위에서의 마음조차 편하지 않았다.
“여보, 왜 그렇게 급하게 끼어들어.”
“급하지 않았는 걸. 게다가, 저 차가 느리게 가잖아. 통화하면서 가는 거 아냐. 아니, 전화를 한다고 해도 요즘 차는 다 블루투스 되질 않나. 왜 저리 느리게 가.”
“당신 화났지. 왜 또 화났어. 지금 처갓집 간다고 그러는구나.”
“무슨 말이야. 화 안 났거든. 그냥 조금 피곤한 거지.”
“처갓집 가면 피곤이 급하게 밀려오지?”
“아니라니까. 진짜 아니야. 나 처갓집 가는 거 좋아.”
“알았어. 그럼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응. 신경 쓰지 마.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그러는 중에 지율이가 태어났다. 지율이는 강화도를 좋아했다. 지율이는 고추를 심을 때에도, 고구마를 캘 때에도 밭에 있었다. 지율이는 고추 모종을 밟고 다녔고, 밭에 물을 넘치게 흘려보내고는, 흙탕물 속에서 뛰어놀았다. 고구마를 캘 때에는 호미로 고구마를 반토막 내곤 했다. 지율이는 강화도의 이랑과 이랑을 누비고 다녔다.
지율이가 뛰어노는 만큼, 망가뜨리는 고구마가 많아지는 만큼 처갓집이란 단어가 주는 불편함은 점점 누그러졌다. 불편함이 거의 없어질 때, 왜 농사일을 하고 나서 밤에 술을 마시는 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시골의 긴 밤에서, 무뚝뚝한 장인이 성실히 일한 사위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술이 전부였다.
술은 마시고 취하는 알코올로만 기능하지 않았다. 혈액 속에 녹아들어, 머리를 아프게 하고, 배를 삭게 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말이 없는 장인어른이, 어린 사위에게 속내를 털어놓게 만든다. 아들이 없이 딸만 둘인 어른에게 술은, 딸 도둑인 사위에서, 중년에 새로 얻게 된 아들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장인의 군대 이야기, 여의도에서의 직장생활, 증권 거래소의 친구들 이야기까지, 술은 장인어른의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놓는 혹 보따리였다.
“이봐, 권서방. 내가 군대를, 보안사를 나왔는데, 요즘에 기무사라 부르나?”
“예, 요즘에는 기무사라 부릅니다.”
“아니, 보안사 육군 병장인 내가 가면 그 부대의 대대장, 연대장이 직접 나왔다니까. 내 보고 하나에 자기들 평정이 달라지거든. 그러니 육군 병장인 나를 얼마나 무서워했다고.”
“그럼요. 아버님. 요즘엔 덜 하지만, 옛날에는 기무사, 보안사 이런 부대들의 권세가 아주 높았을 것 같은데요.”
“그럼, 그럼. 자네가 뭘 좀 아네. 자! 한 잔 들어.”
술은 몸에 배어 있는 한낮의 뜨거운 볕을 식혔고, 굽어졌던 허리를 편히 펴게 해 주었다. 처갓집이 편해지고, 술이 즐거워지는 모든 변화가 사위 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술이 주는 즐거움을 알아서인지, 지율이의 거리낌 없는 활발함 때문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번 가을에도 지율이는 고구마를 캐러 강화도로 간다. 올해, 지율이는 호모 에렉투스에서 호모 루덴스 혹은 호모 사피엔스가 되었다. 이전에는 손으로 흙을 파고 호미로 고구마를 쥐어뜯었다면, 8살의 아이는 조심스레 호미라는 도구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호미로 고구마를 캐고는 권총 모양을 닮았다며 좋아하고, 거대한 땅콩 같다며 신기해한다. 이전에는 그저 직립 보행을 하는 인류였다면, 이제는 도구를 사용하고, 유희를 아는 인간이 된 것이다.
8살이란 나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비로소 교육을 받게 하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올바른 결정이다. 여전히 지율이가 도와준다고 말할 때, 고구마 캐기의 달인 할머니는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녀석의 도와줌은 방해하기와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녀석이 달라붙어 있다면, 이랑 하나에서 고구마 캐는 시간이 혼자 할 때보다 두어 배 이상이 든다. 한참을 지율이와 놀아주시다 이제는 저기 아빠를 도와주라고 말씀하신다.
그럼 지율이는
“할머니 먼저 돕고, 그다음에 아빠 도와줄게. 할머니가 나이가 더 많잖아!!”
“아이고. 고맙다. 고마워. 그럼 얼른 할머니 도와주고, 아빠 도와줘라.”
동방예의지국에서, 장유유서를 실천하는 올바른 어린이다. 지율이는 어린 나이에 고구마를 캤던 일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 아이는 고구마가 조선 시대 후반에 들어온 작물이란 걸 알게 될까. 조선 시대 후기, 구황작물로써 많은 사람들의 생존에 중요한 식물이었다는 걸 알까. 고구마가 식물 뿌리의 영양분 저장소라는 걸 알까. 적어도 고구마 하나가 나오기 위해 많은 땀이 필요한 것은 알게 될 터이다.
고구마를 캐면서 지율이가 흙의 감촉을 알기 바란다. 흙의 부드러운 감촉을 좋아하길 바란다. 흙을 밟고 만지면서, 식물들이 흙에서 나오는 걸 알면 좋겠다. 흙과 물과 태양이 식물을 키운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싶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것들이 바다 내지 흙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함을 느끼면 좋을 것 같다. 그리하여 부드러운 흙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알았으면 좋겠다.
흙을 만지고, 뭉개고, 파헤치면서, 흙이 식물을, 생명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되면 좋겠다. 흙을 소중히 여기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 흙의 부드러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흙에 대해, 자연에 대해 감사함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따뜻한 사람일까를 생각해 본다. 아픈 허리를 부여잡으며, 옆에서 본인이 캔 고구마를 가지고 노는 지율이를 보며, 아직 어린 아빠는 살며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