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마중

9

by 권지해

첫 통장 만들기


육아휴직 후 첫 번째 미션이다. 소풍을 다녀오는 지율이를 기다리기. 지율이는 혼자서 슈퍼와 문구점을 오고 갈 수 있다. 오고 갈 뿐인가. 과자와 문구류를 혼자서 사 올 수 있다. 몇 번 과자를 사 먹으러 다녀오더니, 갑자기 용돈을 달라고 한다.


무슨 초등학생이 용돈이느냐며 물었더니, 친구들 중에 용돈을 받는 아이가 있다고 한다. 아직은 줄 수 없다고, 무척 어리다 말하며 진정시켰다. 그러다 일주일에 2,000원씩의 용돈을 주기로 했다. 그러면서 지금껏 동전을 모아 오던 돼지 저금통을 깨서, 지율이 통장을 만들어 주기로 한다.


인터넷 검색으로 초등학생 통장 만드는 법을 검색했다. 초등학생이 통장을 만들려면 가족관계 증명서와 도장, 그리고 법정대리인의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쓰여 있다. 검색한 대로 하면 좋으련만, 혼자만의 판단을 더 한다. 초등학생이 직접 자신의 신분증을 가지고 간다면, 가족관계 증명서는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지율이가 학교를 마친 3시 즈음에, 둘이 함께 지율이 여권과 도장, 내 신분증을 챙겨 은행을 갔다. 은행에서 안내해 주시는, 허리에 총을 찬 분이, 묻는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이가 모은 동전으로, 어린이 통장을 만들려고요.”

“그럼, 가족관계 증명서와, 아이 도장, 그리고 본인 신분증이 필요합니다.”

“저, 도장과 신분증은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 본인이 직접 왔고, 아이 여권이 있는데, 가족관계 증명서가 필요한가요?”

“예. 없으면 안 됩니다.”

“아~ 네.”


그냥 인터넷에 쓰여 있는 대로 준비할 걸. 아이 본인이 본인 신분증을 가지고 있으면, 문제없다고 왜 생각을 했을까? 나의 걸음이야 괜찮지만, 지율이에게 미안해졌다.


“지율아. 미안해. 지금은 서류가 부족해서 만들 수 없대. 내일 다시 오자.”

“그래. 내일 다시 오자.”


어린이 본인이 왔는데, 본인의 신분증이 있는데, 왜 가족관계 증명서가 필요할까. 자신의 의사대로 통장을 만드는데, 가족관계 증명서까지 꼭 필요한가. 종이 한 장으로 증명되는 지율이와 나의 관계가 재미있다. 우리가 친하고 친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빠라 부르고 아들이라 부르는 호칭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는 증명서가 필요하다.


인구가 많아,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없다. 국가에서 관계를 공인해주고, 국가가 개인에 관한 문서를 만들어 주어야 경제, 금융 활동이 가능하다. 단체와 단체는 요구 사항이 생기면 공문을 발송한다. 각 단체에 속한 이들은 공문에 의해 일을 배당받고 처리한다. 공문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기안자를 찾고, 결재자를 찾는다. 발신인을 찾고 수신인을 찾는다. 그 종이 문서 속에, 개인의 특성이나 개인의 성격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 책임 소지가 명확하다.


가족은 아니다. 지율이는 내가 실수해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다. 착오로 인해 은행에 다시 와야 함에도, 불만을 표시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가족이라서? 어려서? 그도 아니면 이해관계를 계산을 하지 않아서일까.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사회 속에서 가족에게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계산된 관계가 아니며, 실수가 용납되는 관계여서이다.


지율의 돈 사용 방법


지율은 용돈을 모으고, 홀로 마트나 문구점을 간다. 신기한 건, 지율이가 아빠와 마트를 가면 이것저것 모두 산다고 말하다가도, 저 혼자 다녀올 때에는 오직 한 가지의 과자만 사 가지고 온다.


“지율아, 궁금한 게 있는데, 아빠랑 마트 가면 여러 개를 산다고 말하잖아.”

“먹고 싶은 게 많으니까 그렇지.”

“그런데 왜 너 혼자 갈 때는 한 개만 사 가지고 와?”

“에이. 돈 아깝잖아.”

“얍! 그럼 아빠 돈은 안 아깝냐?”

“아빠는 카드로 사잖아. 많이 사도 되는 거 아냐?”

“아니. 카드도 결국 돈이야. 아빠가 카드로 사면, 카드회사에서 아빠 은행 통장에서 돈을 가지고 가는 거야.”

“그래? 어쨌든 내 돈은 좀 아까워.”

“알았다. 알았어. 그래도 다음엔 아빠랑 갈 때도 과자는 한 가지만 사자.”

“생각해 볼게.”

“생각해 봐줘서 고~맙다.ㅋㅋ”


일주일에 2,000원씩 받는 용돈에 조건을 달았다.


“지율아, 너 혼자 용돈으로 마트를 갈 때, 지아 것도 같이 사 주기. 어때?”

“좋아!!”

“네가 용돈을 모아서 저금할 때에는, 아빠가 그만큼의 돈을 더 은행에 넣어줄게.”

“응??”

“만약 네가 5,000원을 저금하면, 아빠도 5,000원을 넣어 준다고. 그리고 10,000원을 저금하면, 아빠가 10,000원을 더 은행에 넣어준다는 말이야.”

“정말?”

“그럼. 대신 네가 은행에서 돈을 뺄 때에는 아빠에게 절반을 나누어 주어야 해. 네가 10,000원을 뺀다면 아빠에게 5,000원을 주는 거야. 알겠지?”

“응. 알았어. 뭐. 나쁜 건 아니네.”

“그렇지. 그럼 약속이다.”


인수인계


지율이는 혼자서 마트도, 문구점도 혼자 가서 쇼핑을 하고 오는 아이. 피아노 학원과 미술 학원도 홀로 다녀온다. 그런데 아내는 지율이가 소풍을 다녀오면 마중을 가서, 기다리라고 말한다. 버스 출발은 학교 운동장에서 하는데, 도착은 학교 인근 마트 앞에서 내려준다. 버스가 회차할 공간이 불편해서인가?


학교와 마트와 거리가 멀지 않으니, 도착지점을 정한 것으로 추측했다. 아내는 버스가 내리는 지점에 손을 흔들고, 받아주길 바라고 있다. 8살이 된 아이를, 집과 학교 인근의 마트 앞에서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물론 약간의 귀찮음도 마중하기 싫음의 하나의 이유이다.


“인수인계 모르시나요?”

“인수인계?”

“그래. 선생님이 소풍을 다녀왔잖아. 그러니까 부모가 아이를 받아야지. 당연한 거잖아.”

“학교에서도 교실문을 아이 혼자 나서잖아. 학교 교문을 나서는 것도 아이 혼자고. 그때마다 보호자가 기다리는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소풍에 다녀온 아이 마중하는 일에, 그 논리는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여보. 소풍은 학교 밖으로, 일상이 아닌 활동을 한 거잖아. 버스까지 대절해서. 학교는 일상생활의 하나인 거고. 아이가 집과 학교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는 상황이잖아. 위험 요소라든가 변수라는 것이 많지 않으니까 반드시 교문 밖에 보호자가 없어도 되는 거지. 소풍은 일상은 아니니까, 시간도 정해졌던 시간이 아니었으니, 아이가 학교 밖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바로 볼 필요가 있고, 그러니 보호자가 필요한 거지.”

“그럼 버스가 아예 학교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것 아닌가.”

“이보세요!!”

“예. 예. 꼭 데리러 가서, 잘 모시고 오겠습니다. 걱정마십시욥!”


오전에 지율이를 깨워 학교로 보낸다. 소풍 가방은 어제 미리 싸 놓았다. 아이는 깨우자마자 일어난다. 어제 지율은 잠들기 전에 양을 100마리는 세었다. 초등학교 첫 소풍이라 설렜는지, 잠이 잘 오지 않았겠지. 아침에도 일어나라는 말에, 오늘 소풍가야지란 말에 벌떡 일어났다.


밥을 먹이고, 화장실 일을 보고, 간단히 씻기고, 양치질을 한 이후에 학교로 출발시킨다. 지아를 깨워, 밥을 먹이고, 화장실 일을 보고, 간단히 씻기고, 양치질을 한 이후에 어린이집에 갔다. 아이들이 모두 출근한 이후, 잠시 아름다운 오후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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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유를 주는 학교와 어린이집에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아이 둘을 살피고, 놀아주는 일은 지치고 힘이 든다.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저학년의 선생님들은 다수의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쳐주시는데, 얼마나 힘이 드실까.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분들을 무한히 존경한다. 대단하다.


커피 한 잔의 여유


육아휴직을 했으면,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어린이집을 보내면 안 되는 것 아니냐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회사에서도 점심시간만은 온전히 내 시간으로 휴식을 취했다. 밥을 얼른 구내식당에서 먹고, 밖으로 산책을 나섰다. 산책을 나서며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은 필수다.


어느 커피 회사의 카피처럼 ‘커피 한 잔의 여유’란 말은 정말 적절하다. 이 카피를 만든 카피라이터는 천재다. 육아휴직 전에는 밥 먹으며 이런 말을 했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밥은 먹으며 일 해야지.’, ‘밥 먹었으니까 오늘 하루도 다 갔다.’, ‘밥을 먹었으면, 커피도 한 잔 해야지.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일을 보고 뒤를 닦지 않은 느낌이라니까.’


관리자분들은 나를 엄청 싫어했을 수도 있겠으나, 동료들은 대부분 동의했다. 점심시간 없는 회사 생활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테이크아웃 커피가 없는 점심시간 역시 상상하기 싫었다.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 집에 ‘홀빈’ 커피 몇 종류를 샀다. ‘콜롬비아 슈프리모, 에티오피아 코게 허니, 케냐 AA' 등. 커피 그라인더를 샀다. TV 속 커피 갈아 마시는 남자들처럼 팔에 멋진 근육은 없었지만, 그라인더로 커피를 갈고 싶었다. 능숙하고, 멋지게.


그라인더뿐 아니라 핸드 드립 커피 주전자도 함께 샀다. 가느다랗고, S자로 휘어있는 주둥이에서 물이 졸졸 흘러나오는 모습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는 거다. 점심은 홀로 라면을 끓여 먹지만, 커피는 콜롬비아 슈프리모다. 왠지 이름도 세련된 느낌. 커피를 갈면서, 커피 향을 마시고, 커피를 내리면서 졸졸졸 떨어지는 커피액의 소리를 음미한다.


육아휴직 기간 내내 집에서 여유롭게 마실 것이다. 아직은 혼자 커피숍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도,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것도 어색하다. 혼자 밥 먹기 어렵고, 홀로 커피숍에 앉아 커피 먹기 어려워하는 건 촌스럽지만, 아직 혼자서는 밥도 잘 못 먹고, 커피도 잘 못 마신다.


소풍 마중 나온 엄마들


3시 20분 즈음, 지아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간다. 다시 육아로의 출근. 지아를 데리고 나오면,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놀이터에서 한참을 논다. 놀이터에서 지아와 놀다 보면, 어린이집 친구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4살짜리 아이들은 헤어진 지 10분도 안 되었건만, 서로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한다.


“지아, 아빠, 안녕하세요?”

“안녕. 시은아.”

지아 친구들은 나를 보고 인사한다. 아이들과 인사하고, 아직은 어색하지만, 어린이집 엄마들과도 가볍게 목례를 한다. 아!! 어색해.


“지아야. 놀이터에서 놀 거야?”

“응. 놀 거야.”

“알았어. 오늘은 이따 오빠 4시에 마트 앞에 도착하니까, 조금만 놀다 가자.”

“알았써. 얘들아. 놀자.”


‘놀자’라는 말과 함께, 지아는 한참을 놀이터에서 논다. 하지만 4 살배기 아이들은 같이 놀지 않고, 각자 논다. 미끄럼틀도 혼자 타고, 시소도 혼자 탄다. 그네도 당연히 혼자 탄다. 그럼 미끄럼틀 아래에서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지켜보고, 시소는 반대편에서 팔에 힘을 주어, 위아래로 흔든다. 그네는 100여 번은 밀어준다.


단조롭고 지리한 과정이지만, 반드시 겪어야 할 일이다. 한참을 놀다 소풍 버스가 마트 앞으로 오기로 한, 4시에 맞추어 지아를 데리고 놀이터에서 나온다.


“지아야, 오빠 데리러 가자.”

“시러, 더 놀 거야.”

“안 돼. 오빠 기다려. 오빠에게 가야 해.”

“시러.”

“그럼 아빠가 목마 태워 줄까?”

“조아.”


지아를 목마를 태우고 드디어 마트 앞에 도착했다. 멀리서도 엄마들이 보인다. 마트 앞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이 한가득 서 있었다. 그리고 몇몇 할머니 할아버지, 몇 명의 아빠가 있었다. ‘음. 육아휴직을 한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어. 역시 시대가 변하고 있어.’


선생님과 아이를 인수인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 많은 엄마들이 각자의 아이들 이름을 부를 때, 지율이 홀로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아이가 얼마나 실망할까. ‘그래, 나오길 잘했구나.’


버스가 들어오는데, 괜스레 반갑다. 버스에서 내리는 지율이를 발견한다. 지율이는 버스 입구에서 계단으로 내려오기 전에 벌써 두리번거린다. 나는 행여 아빠를 못 찾을까 얼른 지아 발을 왼손으로 붙들고, 오른손을 힘껏 흔든다. 좌우로 힘껏 아이가 볼 때까지 흔든다. 그리고 지율과 눈이 마주쳤다. 안도하는 아이의 눈빛.


눈이 마주치고는, 안심했는지, 가방을 아빠에게 그대로 벗어 전한다. 그리고는 버스에서 내린 반 친구들과 노란 반티를 입고 놀이터로 달려갔다. 놀이터에서 한참을 노는 지율이를 보며, 옆에서 덩달아 같이 뛰어노는 지아를 보며 생각한다.


그래, 육아휴직하길 잘했구나. 덕분에 이리 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구나. 아이들의 소중한 한 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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