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소리로 혼내다

8

by 권지해

지율 태어나다


“아빠는 권지아만 예뻐해.”

“무슨 소리야. 네가 잘못했으니까 혼내는 거야. 왜 갑자기 권지아 이야기를 하는 거야.”

“아빠는 나만 혼내잖아. 권지아는 혼내지 않잖아. 혼내도 짧게만 혼내고.”

“아니야. 권지아도 혼내거든. 잘못한 크기에 따라 혼나는 정도가 달라지는 거야. 그리고 너 혼나는데, 권지아 이야기를 왜 꺼내는 거야.”

“아니거든. 아빠는 나는 무조건 크게 혼내고, 권지아는 거의 혼내지 않고, 혼내더라도 금방 화도 풀거든.”


우리 부부는 맞벌이다. 처음 지율이가 태어날 때, 아내는 근무하던 학교를 그만두었다. 아내는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기간제 교사였다. 3년간 같은 고등학교에서 근무를 했다. 졸업한 학생들이 찾아올 정도로 학생들과 정이 들었고, 동료 교사와도 즐거이 잘 지냈다. 하지만 기간제 교사가 출산을 한다고 했을 때, 출산 휴가 3개월을 주는 학교는 아마 한국에는 있지 않을 터이다.


자연스럽게 아내는 학교를 그만두었고, 지율이가 태어났으며, 덕분에 지율이는 엄마와 둘이서 행복한 2년의 시간을 보냈다. 두 살 이전의 기억이 있을 리 없겠으나, 지율이는 하루 종일 엄마의 품 안에 있었다. 엄마와 함께 산책하고, 운동하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 지율이가 만 두 살이 되던 해에 엄마는 새로이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낮 동안에 지율이는 어린이집에 있었고, 퇴근이 빠른 사람이 지율이를 데려 오곤 했다. 지율이 자체는 무척 고마운 존재였지만, 부부 두 사람이 일을 하면서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 일은 힘들었다. 퇴근 시간이 촉박했고, 시간을 아이에게 맞추어야 했다. 지율이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가만히 있지 못했고, 울음이 많았다. 울고 있으면 안아 주어야 울음을 그쳤고, 안고 있다가도 일어서서 걷지 않으면, 이어서 울었다.


밥을 즐겨 먹지 않았다. 매 끼니 숨을 이어갈 정도로만 먹었다. 하루 종일 놀아주어야 했고, 놀아주지 않으면 짜증을 냈다. 그렇기에 둘째 아이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지율이와 겪었던 전쟁을 다시 한번 겪을 수는 없었다.


지아 태어나다

지아가 태어났다. 부부는 고민했다. 아내는 직장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출산 휴가 3개월은 쓸 수 있었으나, 육아휴직에 대해서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 역시 육아휴직은 생각하지 못했다.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쓴 남자 사원이 존재하지 않았다. 남자의 육아휴직은 법적으로는 존재했지만 멀었고, 멀리 북유럽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지아는 고민 끝에 아내의 3개월 출산 휴가 뒤에, 강화도에 계신 지아 외할머니가 키워주시기로 한다. 외할머니가 좀 고생스럽지만, 금요일에 서울로 지아를 데려다주시면, 주말은 부부가 살펴본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부부는 강화도로 지아를 데리고 간다. 그리하여 7일 중 약 3일 정도 부모가 지아를 살피는 시스템으로 2년을 보내게 되었다.


지율이가 8살이 되던 해, 지아가 4살이 되던 해에 부부는 지아를 서울로 데려오기로 한다. 지아가 엄마, 아빠를 인지하기 시작했고, 부모와 떨어지기 싫어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이, 어린이집을 다니는 것보다 나을 수 있겠으나, 아내는 지아를 데려오고 싶어 했다.


지아가 4살이 되던 해에 비로소 네 식구가 모두 모였다. 지율이는 지아를 아꼈다. 부모와 떨어져 사는 지아를 안타깝게 생각했다. 안타까운만큼, 지아를 챙겨주려 노력하는 오빠였다. 분명 네 식구가 같이 살기 전엔 그러했다.


“지아야. 오빠 보고 싶었어요?”

“지아야. 오빠가 초코 사줄까?”

“지아야. 오빠가 뭐 하고 놀아줄까?”


안타까운 마음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일까. 안타까운 상황이 종료되는 순간일까? 아니면 3달, 6달, 1년. 거의 평생. 사람마다 유효기간은 다르겠지. 지율이의 안타까움은 일주일 정도였다. 3일 일지도 모른다. 나머지 4일은 안타까움이 사라지고 경쟁심이 자라는 시기. 지아에 대한 지율이의 억울함이 증가했고, 지아 역시 오빠에 대한 애틋함이 사라져 갔다. 지아라면 많은 것을 참고 인내하던 지율이가 쉬이 폭발한다.


“너 오빠 장난감 만지지 마라.”

“시러. 지아 꺼야.”

“이거 오빠 꺼거든.”

“지하 꺼.”

“이게...”


지율이가 화를 내면서, 지아 몸을 밀어내려는 행동을 한다.


“지율아. 화내면 안 돼. 그럼 장난감 치울 거야. 그리고 지아랑 잘 지내야지. 누구 거가 어디 있어. 같이 노는 거지.”

“뽀로로 버스 내 거 맞거든. 아빠는 또 지아 편들어. 그리고 나 화낸 거 아니야.”

“지아 편드는 거 아냐! 네가 화내고 있는 거에 대해 말하는 거야. 소리치고 있고, 밀려고 하잖아? 동생을 절대로 밀거나 때리면 안 돼.”

“화 안 냈다니까. 아. 이. 참. 화나. 권지아, 너 나한테 말 걸지 마라.”

“권지율. 이리 와. ‘아이참’이 뭐야. 저기 생각 의자에 가서 2분 앉아 있어.”

“근데 아이참은 괜찮거든.”

“아이참도 쓰면 안 되는 말입니다.”

“알았어.”

“‘알았어요.’라고 말해야 해.”

“알았어요.”


아빠가 오빠를 혼내고 있으면, 지아는 조용히 주위를 맴돈다. 둘째라서 그런지, 아니면 지난 두 해 이상, 함께 살지 않아 그런지 아이는 주변 눈치를 본다. 오빠와 싸우다가도 혼날 때는 조용히 있는다. 본인에게 혼을 낸 이후에는 조용히 아빠 옆으로 와서, “아빠, 미안해.”라고 말한다. 잘못했든 하지 않았든, 일단 “미안해”라고 말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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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아이가 친해지는 시간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는 형이 물었다.

“둘째, 강화도에서 데려왔어?”

“아니요. 아직이요.”

“빨리 데려와.”

“빨리 데려와야죠. 근데 키울 엄두가 나질 않네요.”

“내가 첫째잖아. 우리 부모님도 맞벌이셨거든. 두 분이 나를 낳자마자 창원 할머니 댁에 맡긴 거야. 너야 강화도니까 자주 왔다 갔다 오가지만, 창원이 어디 그래? 이 분들이 한 달에 한 번 나를 보러 오셨나 봐. 그러다 좀 지나니까, 2~3달에 한 번 정도 서울에서 나를 보러 온 거야. 그렇게 8살 때까지 할머니가 키워주셨거든. 재밌는 게, 그 사이에 동생이 태어났어. 동생까지 할머니에게 맡길 수는 없잖아. 동생은 두 분이 어떻게든 키웠어. 나랑 동생이 2살 차이가 나. 동생은 계속 부모님하고 살았고, 나는 8살부터 부모님 하고 함께 살게 된 거야, 처음 며칠이 여전히 기억나. 8살 때의 기억인데, 우리 집인데도, 친척집에 머무는 어색함. 여기가 내 집 같지도 않고, 부모님도 내가 자신들의 집에 있는 게 어색한 거야. 나를 대하기가 어색하고, 어렵고, 그러셨나 봐. 서로 다정한 거랑은 거리가 있는 성격들이니까. 그런데 성격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동생과 부모님은 그렇지가 않더라고. 동생과 부모님은 진짜 부모 자식 간처럼 거리도 없고, 어려운 것도 없었는데, 나만 어색하고 불편했던 거 같아. 초등학생이면 많이 알고 느끼잖아. 40 중반이 넘어가는 지금도 부모님에 대한 아쉬움, 서운함 이런 게 남아 있어.”

“정말이요? 처음 듣는 얘기네요. 형, 힘들었겠어요.”

“뭐. 힘든 거 까지는 모르겠고. 그러니까 둘째 빨리 데려와. 아직은 어리니까 괜찮겠지만, 나이 들면, 부모야 둘째 치고, 아이가 어색해할 수 있잖아. 나는 아직까지도 부모님이 동생과 나를 다르게 대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둘째 애기랑 빨리 같이 살아.”


다행히 지아는 일주일에 3일을 매번 보아 와서인지, 집으로 온 후에도 잘 지냈다. 지아는 엄청 고자질한다.


“오빠가 미러써.”

“아이고, 지아 어디 다쳤어?”

“응. 여기.”

상처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지만,

“아이고, 아팠겠다. 아빠가 오빠 혼내줄게.”

“응.”


모기가 무러써.”

“어디?”

“여기.”

“아이고. 부어올랐네. 이 놈의 모기. 아빠가 꼭 잡아줄게.”

“응. 자바 줘.”


지아의 민원을 해결해 주면서, 지아는 우리 집의 일원이 되어간다. 다만 지율이가 지아 민원의 주요 대상이기 때문에 지율의 억울함이 늘어갔다.


큰소리로 혼내지 않기로 약속하다


“아빠는 지아 편만 들잖아.”

“지아가 어리잖아.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지아를 밀거나 때리면 안 되는 거야.”

“하지만 지아가 먼저 밀었단 말이야.”

“지아야. 먼저 밀었어?”

“......”

“지아도 오빠 밀면 안 돼. 알았지.”

“이봐. 지아에게는 친절하게 말하잖아. 혼내는 것도 아니고.”

“지아는 아직 어리잖아. 혼낸다고 해도 못 알아들을 거고.”

“아니거든. 나만 혼내거든. 무서운 표정도 나에게만 짓고.”

“지율아, 지아가 말을 못 알아들어서 그래. 너도 어릴 땐 다 들어줬어. 못 알아듣는 아이를 혼내거나 큰소리 낼 수 없잖아. 그건 정말 불필요한 일이야. 대신 너에게도 큰소리로 혼내지 않을게. 조용히 말할게.”

“알았어. 약속해.”

새끼손가락을 걸어야만 했다.



결국 나는 어린아이들을 혼낼 수 없게 되었다. 큰 목소리로 말할 수도 없게 되었다. 지율이가 잘못하면 어떻게 대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지아를 혼내지 않고 잘 키울 수 있을까.


“야. 너 왜 오빠 장난감을 마음대로 만져. 이리 내.”

“으앙.. 으아앙...”

“지율아. 왜 그래?”

“권지아가 내 장난감을 허락 없이 가지고 놀잖아.”

“지율아, 지율이도 아빠 물건 만지잖아. 가지고 놀기도 하고. 그때마다 아빠에게 허락 맡고 만지니?”

“아니.”

"지아도 그러니까 네 물건을 만지는 거야."

"하지만 싫단 말이야. 지아가 내 물건 만지는 거. 그리고 나랑 아빠랑은 친하니까 만지는 거거든."

네가 아빠 허락을 맡지 않고 물건을 만지는 이유는, 우리가 가까운 가족이라서잖아. 네 말대로 친한 사이. 그래서 물건 만지는 정도는 허락 같은 게 필요 없는 사이. 지율이도 그래서 아빠 물건을 만지는 거고. 맞니?”

“맞아.”

“그런데, 지율이와 지아도 친한 사이 아니니?”

“권지아랑은 아빠만큼 친하지 않아!”

아이쿠. 뭐라고. 와. 진짜 대단하다. 권지율의 머릿속 회로가 놀랍다. 끝까지 우기기의 장인인 건지.


“그럼, 이 세상에서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형제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지율이랑 지아 둘 밖에 없지 않아.”

“그렇긴 한데, 그렇게 친한 건 아니야.”

“그래도 우리는 한 공간에서 같이 살잖아. 내일도 살 거고, 몇 년, 몇십 년, 살 거잖아. 아닌가?”

“그건 맞아.”

“지아랑도 엄청 오래 살 건데, 이 공간에서, 서로 위해주고, 같이 챙겨주는 게 낫지 않아. 매일같이 싸우는 것보다는?”

“어쩌면 지아랑은 매일같이 싸울지도 몰라. 그리고 권지아가 장난감 만지면 망가진단 말이야.”

‘야. 권지율.’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걸 참는다. 화내지 않기로, 큰 소리 내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럼 지아랑 싸우면 지율이는 기분 좋아?”

“그건 아니야.”

“만약 장난감이 망가지면 다시 사면 되잖아. 지아가 가지고 놀다가 망가지면 새로운 걸 아빠가 사 줄게. 서로 같이 이해하고, 나누면서 지내자.”

“진짜 망가지면, 아빠가 새로 사 줄 거야?”

“응.”

“알았어. 그럼. 같이 놀게.”

판단하지 않고 듣기


말로써 해결된 것인지, 장난감을 사 준다는 말로 해결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화내지 않아도 아이들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끝까지 웃으면서,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주었다. 실은 혼내는 건, 크게 말하는 건,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아서다.


덩치 큰 아빠가 일단 혼내면, 아이는 들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가 아니라, 혼나야 하는 힘든 상황을 모면하고 싶으니까. 그럼 아빠는 시간을 쓸 일도, 마음을 소비할 일도 없다. 간단하게 마무리된다. 그런데 혼났던 경험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인내심을 가지고 듣는다. 앞뒤 말이 맞지 않아도. 조금 더 시간이 걸리고, 마음속으로 울컥할 때가 있지만,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시간과 마음을 쓰다 보면, 굳이 무서움이나 화냄으로 갈등을 마무리할 필요가 없어진다.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의 원인만을 찾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느냐를 따지다 보면 감정이 상한다. 다만 해결을 위해서만 대화를 이어간다. 해결책으로 내 주장만을 반복하는 것은 다툼의 여지를 만든다. 도리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럴 때에 갈등이 조용히 마무리된다.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내 주장만이 옳다고 여기는 게 아니라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있다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어진다. 어느 경우에도 내가 옳다고 전제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지 말자. 상대가 나이가 많든 적든, 나보다 직급이 위든 아래든, 일단 그의 의견과 생각을 듣자. 들은 후에, 내 생각과 의견을 말하자.


듣자마자 의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 끝까지 들어보자. 상대방의 견해를 들음으로써, 그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서로에게 큰 목소리로 말할 필요가 없어질지 모른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상생활을 어찌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가족도, 사회도, 사람과의 관계로 이루어진 곳. 관계를 이어가고, 만들어가는 것은 큰 목소리나 ‘옳음’이 아니라 조용한 듣기와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 그리고 미소를 포기하지 않는 ‘친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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