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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의 옷 취향
초등학교 1학년 지율이의 등교 시간은 9시. 어린이집 지아의 등원 시간은 9시 30분이다. 지난밤 22:00시 즈음에 눈을 감은 아이들은 8시까지 잠에 몸을 맡긴다. 8시에 눈을 뜬 아이들은 간단히 아침밥을 먹는다. 아내가 끊여 놓은 콩나물국에 말아 아이들을 먹인다. 때로 장조림을 밥에 넣어, 한 숟가락씩 먹이기도 한다.
어느새 8시 30분. 아침에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날 밤 아이들 샤워는 필수다. 다소 젖은 상태로 잠을 잔 아이들 머리카락은 아침이 되면, 만화 ‘드래곤볼’의 ‘슈퍼 샤이아인’처럼 붕 뜬다. 아이들 밥을 먹이면서, 손과 빗에 물을 묻혀 머리카락을 계속 가라앉힌다. 여기까지가 등교 준비 끝. 8시 40분 지율이를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고, ‘학교 잘 다녀와.’ 하고 안녕.
8시 40분부터는 지아와의 시간. 채 못 먹은 밥을 몇 번 더, 입에 넣는다. 지아의 머리를 몇 번을 만지고, 빗질하고, 머리끈으로 묶는다. 얼마의 시간을 머리카락에 투자해야 한 번에, 예쁘게 머리를 묶을 수 있을까? 옷장 앞으로 간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대체로 아내가 골라놓은 옷을 입히며 되지만, 가끔 지아는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입겠다고 고집한다. 고작 4살, 33개월 된 어린아이가. 옷장 앞으로 가서는
“이거.”
“지아야, 이 옷은 어린이집에 입고 가기에는 좀 불편해.”
연두색의 주름진 치마인데, 여기저기 반짝이가 붙어있다. 공주옷이다. 아빠는 한국 사회, 아저씨의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시러. 이거 입을래.”
“전에 선생님이 움직이기 불편한 옷은 입고 오지 말라고 하셨거든. 요거, 예쁘고 편한 옷 입자.”
분홍색 미니마우스 상의에, 레깅스 느낌의 바지를 제안한다.
“아라써. 흠.”
다행이다. 합의에 성공.
남녀의 성역할에 대해서, 혹은 남녀의 특성에 대해, 사회적 관습에 의해 주입될 수 있다고 읽었다. 어릴 적, 1980년대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철수는, 경찰관이나 소방관 등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영희는 선생님, 간호사 등의 직업을 가졌다. 2019년의 교과서는 많이 바뀌었다고 들었다. 남녀가 동등한 성교육을 하려 한다. 심지어 ‘남녀평등’이란 단어도 남자가 먼저 나와 있다고 ‘양성평등’이란 단어로 대체하여 쓰려한다고.
‘중앙고등학교’라는 학교와, ‘중앙여자고등학교’라는 학교가 있다. 예상이 되겠지만, 남자가 다니는 학교는 ‘중앙고등학교’, 여자가 다니는 학교는 특별히 중앙‘여자’ 고등학교라고 불린다. 한국 사회의 인식에 남성이 여성보다 먼저 인식된다는. 그리하여 학교에서는 그러한 사실을 학생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교육한다.
요즘 레고는 여자 소방관이 블록으로 등장한다. 소방관이든, 경찰관이든 여자가 직업으로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남자다운 직업은, 여자다운 직업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자는 핑크색?
오빠의 장난감에 인형은 없어, 인형을 가지고 논 적이 없다. 오히려 자동차, 화물차, 로봇을 가지고 놀았다. 오빠의 옷을 버리기 아까워 지아에게 입혔다. 그러다 파란색 계열의 옷을 많이 입었다. 회색이나 검은색 역시 많이 입었다.
그럼에도 지아는 핑크색을 좋아한다. 자신이 옷을 고를 때에는 핑크색을 이쁘다 하고, 핑크색 옷을 입으려 한다. 어린이집을 다녀서부터인지 확인할 수 없으나 어느 순간 핑크색을 엄청 좋아한다.
지아 옷을 살 때에는 핑크색 계열의 옷을 사는 경우가 많아졌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경우에도, 지아는 역할놀이를 좋아한다. 지율이의 사자, 호랑이, 공룡 모형을 가지고 놀 때에도 공룡에겐 엄마, 사자에게 아빠의 역할을 부여한다. 호랑이는 애기다. 지율이가 ‘덤벼’, ‘싸우자’라며 역할 놀이를 했다면, 지아는 ‘이름이 뭐야, 여기는 왜 왔어, 밥 잘 먹어’ 등의 대화를 즐겨한다.
핑크색 옷들을 색깔만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핑크색 계열의 옷들은 화려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경우도 많다. 검은색, 회색, 푸른색 계열의 옷은 장식이 덜 하고, 투박한 느낌이 강하다.
장난감 역시 마찬가지. 사람 모형의 인형은 사람의 표정을 닮아 있다. 팔이나 다리의 관절 역시 움직인다. 곰이든, 토끼든 털이 표면을 덮고 있는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온기는 또 어떠한가. 로봇이나 모형 자동차에는 표정이나 온기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여성성, 남성성
지아와 옷을 고르면서 위험한 사고라 여기지만 생각한다. 사람들은 여성성, 남성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조금 더 따뜻한, 화려한, 어여쁜 - 이 모든 말들이 사회적 가치 판단을 지녔음을 부정할 순 없다 - 걸 여자아이는 좋아하는 게 아닐까라고.
지율이는 어릴 때에는 붉은 계열의 옷도 잘 입었다. 그러다 7~8살이 되니, 붉은 계열의 옷을 사자고 말하면, 여자 같은 옷이라며 싫어한다. 지율은 유치원, 학교 등에서 남성의 색을 습득했다. 반면에 지아는 4살인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옷을 고른다. 핑크나 화려함을 좋아한다.
지아의 이런 성향이 싫지 않다. 자신이 보기에 예쁜 것을 고르는 모습은 귀엽다. 옷에 대한 성향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피력하는 모습이 반갑다. 지율의 로봇으로 치고받았던 놀이가 불편하지 않았으나, 지아의 인형들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관계를 맺어가며 노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관계지향성이 여성성의 한 이름이라면 반가운 성향이 분명하다. 이 관계지향성은 지율이가 지아에게 배우길 바라는 면이기도 하다.
드디어 지아가 옷을 골랐다. 옷을 골랐으니, 양말을 선택하면 된다. 아이쿠. 양말은 토끼가 그려진 양말로 정해졌다. 또 아이쿠. 샤워를 하지 못한 아빠가 모자를 쓰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려고 하니, 저도 모자를 쓰겠단다. 그래서 또 모자를 썼다. 아이쿠. 다음으로 신발을 신으려 하는데, 운동화를 골라 주니, 싫다고 말한다. 핑크색 크록스 신발을 신겠다 고집을 피운다.
“지아야, 바깥 놀이하는데, 이 신발은 모래가 잘 들어와. 그러니까 운동화 신자.”
“시러. 시러. 이거.”
“아니야. 선생님도 운동화 신고 오라고 하셨어.”
“흥, 흥... 응.”
“그래, 오늘은 운동화 신고, 어린이집 다녀와서 어디 나갈 때, 그땐 크록스 신자.”
“응. 아라써.”
아침 출근길
신발까지 신고 우리는 현관문을 나선다. 현관문을 나서고, 엘리베이터를 탄 후에, 아파트 동 입구를 나선다. 10월의 9시 20분의 공기가 선선하다. 서서히 은행나무 잎들의 색깔이 짙은 푸른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해간다.
“아! 개미다. 무서워.”
“지아야. 개미는 무서운 벌레 아니야.”
무섭다는 아이가 벌레를 발로 밟으려 한다.
“안 돼. 지아야. 왜 그래? 개미를 밟으면 안 돼. 개미도 생명이란 말이야!!!”
“무서워~~”
“무섭다고 죽이면 안 되는 거야. 잘 모른다고, 무섭다고, 작다고 밟고, 죽이면 절대 안 돼. 움직이는 건 모두 소중한 거야. 아니, 저기 나무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도 모두 소중해. 그러니까 함부로 밟거나 던지거나 때리면 안 돼. 알겠지?”
“알겠어.”
은행열매가 많이 떨어져 있다. 은행열매를 피하면서, 개미를 피하면서, 우리는 천천히 발을 맞추어 걷는다. 어린이집까지 멀지 않은 길이지만 즐거운 길이다. 아침 참새들의 짹짹거림이 좋고, 적당한 고도에 올라있는 태양이 반갑다.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 나뭇잎의 색깔이 어여쁘고, 계절이 바뀌며 조금씩 차가워지고 있는 공기의 질감이 오묘하다. 조금씩 대지가 단단해지는 느낌.
지아의 작은 손을 잡고 천천히, 이 시간들을 보내고 싶다. 계절이 지나면서 지아의 손 역시 점점 커져갈 터이고, 그 커진 손은 어느 순간 아빠를 잡지 않을지 모른다. 그때가 오면, 옷을 고르는 지난한 시간들이 그리워질 것이다. 이 따뜻하고 감사한 시간을, 곧 지나가버릴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