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과연 안정적인 대외정책이 될 수 있는가
한동안은 잊고 있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국제체제에서 현상유지를 추구하는 것과 현상에 대한 도전을 하는 지에 대한 분석은 생각보다 중요한 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러한 분석이 가지는 한계는 분명 이해한다. 국가의 행태를 어떠한 카테고리로 분류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특히 대부분의 국가는 권력을 추구한다는 공세적 현실주의자들의 견해가 더 이론적 간결성을 가지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국제체제를 국제사회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국가가 추구하는 최종적인 가치는 단일할 지라도 추구하는 방법과 수단에 있어서 각각 차이를 보이며, 이는 국가의 행태를 카테고리화 할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제체제에서 국가의 행태와 목표를 현상 유지와 현상 타파로 나누는 신고전적 현실주의자들은 방법은 의미가 있다.
여기에 나는 대한민국의 통일 추구라는 이야기를 끼얹어 보고 싶다. 대한민국의 통일에 대한 적극적인 추구는 사실 엄밀히 말하면 현상유지가 되지 못한다. 한마디로 북한과 남한이 통합된 형태의 새로운 국가건설을 의미하는 바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현상타파적인 행태가 된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타파가 대한민국의 우방국가들과 동아시아의 주변 국가들의 방향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현재의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현상유지 추구 국가이며, 중국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세력 균형 유지를 위하여 집단적 자위권을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중국부상론에 의하면 현상타파적인 국가이지만 동시에 중국이 얘기하는 화평굴기는 엄밀히 말하면 현상유지를 얘기하기도 한다. 중국을 현상타파로 본다고 하더라도, 중국이 추구하는 현상타파는 동아시아 지역 패권의 맹주로 떠오르는 것을 의미하는 데 여기에서 대한민국의 통일은 기존의 중국의 영향력이 강한 북한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가정된 중국의 방향과 상충된다. 미국은 대한민국의 동맹으로서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통일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미국은 현재의 세계 패권구도가 흔들리지 않는 것을 원하는 현상유지 국가이다. 만약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통일이 미국의 패권 유지의 부정적인 변수가 된다면 미국은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시할 가능성이 언제든지 존재한다. 즉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적극적인 통일 전략은 현재의 동아시아 국제체제의 현재 상황에 도전하는 것이 되며, 이를 주변국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국제체제는 세계적인 강대국이 일차적으로 접하고 있는 지역이기에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첨예하다. 바둑으로 치면 공배가 없는 지역이다. 이런 지역에서 대한민국의 독자적인 통일 추진은 다른 국가들로부터 경계를 받기가 쉬운 것인 현실이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받은 우려 중 하나가 바로 동아시아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질서를 깨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였다는 것을 상기해 본다면, 현실주의적인 관점에서 한국이 독자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통일을 추구하는 것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엄밀히 현 동아시아 국제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던 기존의 국가는 북한이다. 북한은 핵개발과 핵실험, 무력도발을 통해 김씨 왕조체제 보존과 더불어 국제사회로부터의 북한의 위상을 높이려 한다. 또한 기존의 강대국들의 균형으로 이뤄진 동아시아의 체제에서 독자적인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후원국가인 중국과 적대국인 미국의 반발에도 극도로 공세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은 이에 대해 안보정책으로 북한에 대한 억지를 추구하고 있다. 억지란 본래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타국에게 행동을 강요하는 것으로, 이는 곧 현상유지적인 정책이다. 즉 동아시아 국제체제가 문제국가인 북한에게 현상을 유지하려 하고 있고 이에 한국은 동참하고 있는데 이는 현상타파적인 통일과는 국제체제적 수준에서는 상호 모순이 된다. 대한민국의 주변 국가들이 북한에 대한 억지라는 측면에서는 적극적으로 대한민국과 보조를 같이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이 통일의 문제로 전개된다면 이는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게 있어서 통일은 사실 국제적 문제라기 보다는 국내정치의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통일은 국제적 층위에서의 문제이며 통일에 대한 행위자는 대한민국과 북한만이 아니다. 사실 동아시아에서의 북한을 둘러싼 대부분의 문제는 남북 간의 ‘민족끼리의 문제’가 아닌 이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개입되어 있는 국제체제적인 차원의 문제이다. 이 차원에서 앞의 국가의 목표와 행태 분석을 위해 현상유지 국가와 현상타파 국가로 보는 관점은 분명 의미가 있으며, 대한민국의 현재의 통일 정책에서 놓칠 수 있는 문제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그 점을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