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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루가 Mar 31. 2016

#. epilogue..

파슈파티나트 화장터 아이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



이제 정말 끝난 걸까?



영화가 끝나고 나니 벌써 사방에는 어둠이 내려앉아있다.

아이들의 복잡해 보이기도 상기되어 보이기도 한 얼굴을 보면서도 나는 산에 위치한 학교라 일찍 끊어져버린 버스 때문에 아이들과 돌아갈 일부터 걱정이 되었다.

뿌자는 영화를 볼 때만 해도 오빠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 아픈 줄도 모르더니 밤기온이 차가워지자 얼굴에 다시 살짝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친절한 교감 선생님이 외부로 나가는 관계자 분께 부탁해 차를 얻어 탈 수 있게 알아봐 주셔서 서둘러 작별 인사를 해야만 하는데...

양호실에 데려온 뿌자의 얼굴이 영 좋지가 않다.

둘째 엘레스, 첫째 데이빗 오빠가 양쪽에서 달래 보아도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이불만 자꾸 뒤집어쓴다. 

오빠들이 인사라도 하려고 이불을 걷어내면 다시 얼굴을 파묻어 버린다.

그러더니 끝끝내 누르고 누르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소리도 흐느낌도 없이

고개를 숙인 채 눈물만 흘리고 있으니 달래는 오빠들도 마음이 아프기는 마찬가지이다. 

자기를 달래느라 곧 돌아온다는 말을 하는 오빠들도 그 말을 듣고 있는 뿌자도 기약 없는 약속임을 서로 알고 있으니 어려운 이별일 수밖에...

이번에도 작년 더 사인 (우리의 추석에 해당되는 네팔의 명절) 때 만나고 일 년여 만에 만났으니 다음 만남이 언제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나 또한 한국으로 돌아가면  언제 다시 만나러 올 수 있을지 모르니 밖에서 출발을 알리는 자동차 클락션 소리에 모두 못 들은 척 쉬이 걸음을 옮기질 못한다. 결국 얻어 타는 입장에 양호실까지 데리러 오신 선생님에게 이끌려 하나 둘 학교 밖으로 힘없이 걸어 나왔다.



차 안에서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못한 채 창밖만 바라보니 도심과는 다르게 드문드문 자리한 인가에서 비추는 불빛이 가냘프게 흔들리듯 빛나고 있다. 저녁을 먹지 못한 아이들(물론 대부분 성년이 되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아이들 이외의 표현은 어색하기만 하다.)을 데리고 식당에 갔다.

모두 모여 함께하는 마지막 식사이니 통역을 도와준 덜 구릉이 집에서 담근 네팔 전통주인 락시(우리네 소주와 비슷한데 쓴맛이 덜해 부드럽지만 도수가 높아 주의해서 마시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를 아이들에게 따라 주었다. 아직 엘레스는 마시면 안 되는데 자꾸 달라고 하자 덜 구릉은

“술은 어른한테 배우는 거니 파슈에서 애들끼리는 마시지 마라”하며 반잔을 따라주니 홀짝홀짝 아껴가며 마신다. 

다큐에서 맏형 노릇을 하던 라스꾸마르에게 부인이 언제 출산하는지를 묻자

"다음 달에 셋째를 출산하는데 와이프는 지역센터에서 미싱일을 하고 저도 파슈에서 장작도 줍고 가끔 관도 주워 팔지만 식구가 불어나니 먹고살기 힘들어요... 아이들 학교도 보내야 하는데,,," 가장으로써 식구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 보지만 여의치 않은 생활에 원래도 말이 없는 친구가 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데이빗은 친구들과 함께 막내 동생을 만나고 돌아와서 그런지 며칠 전 새벽 쓰레기를 수거하던 날보다는 얼굴이 많이 부드러워 보였다. 며칠 전 한국사랑(타멜에 위치한 한국 식당)에서 엘레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의 냉랭한 감정이 뿌자를 만나고 온 덕분인지, ‘락시’가 발휘한 마법 덕분인지 기분이 꽤 풀려있었다.




배고픔과 절망 때문에 12살 어린 나이에 죽음을 바라던 아이였지만

마음 한편에는 동생들은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하지 말라고 말려도 본드 하고 여전히 파슈에서 희망 없어 보이는 생활을 하는 엘레스를 보면 더 속상하고 미운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파일럿을 꿈꾸던 아이는 이제 청소부가 되어 식구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간만 있어도 행복하겠다며 쓸쓸하게 웃고 있었다.


형을 세상 그 누구보다 좋아하고 선망하던 엘레스는 어릴 적 형의 꿈을 따라 자기도 파일럿이 되고 싶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 꿈은 교육도 받지 못하고, 출생 신고도 되어있지 않은 자신들이 꾸기엔 이루기 힘든 희망임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택시 드라이버가 되고 싶다고 하자 덜 구릉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졌네" 하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택시 드라이버 또한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고 신분증도 없는 엘레스에겐 이루기 쉽지 않은 일이다. 



출생연도랑 생일도 모르기 때문에 신분증부터 만드는 게 시급한 문제인데
만일 신분증 생긴다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택시 드라이버가 되고 싶어요.
하지만 공부가 힘들고 신분증도 만들 수 없다면 템포(일명 ‘툭툭’이라고도 부르는 카트만두의 대중교통 수단으로 삼륜 미니버스) 운전사라도 될 거예요.
그래서 미스가 다음에 다시 네팔에 돌아오면 미스를 태우고 
파슈에서 틴출리 촉(내가 머물고 있던 보우더나트 근처의 주택가)까지 공짜로 태워다 드릴게요
 


그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 역시 그 꿈이 꼭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 하마’ 하고 약속했다.



엘레스나 데이빗 모두 부모님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는 눈치였는데, 알코올 중독에 황달까지 와서 건강 상태가 위험한 지경에 이른 엄마나 자신들을 버리고 오래전에 집을 나간 친아버지, 그리고 같은 파슈 공간에 머물면서도 모른 척 살아가는 새아버지(뿌자의 아빠) 모두 무책임한 어른들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오빠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하나, 뿌자 만은 학교 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자신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 그래서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뿌자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고등학교 졸업 학위가 있는 네팔의 여섯 번째 학교로 선생님들은 실력 있고 인품 좋은 분들로 구성되어있다. 

네팔은 성적이 안 좋으면 다시 시험을 봐서 통과해야 졸업할 수 있는데 이 학교 고등학교 졸업률은 거의 100프로에 가깝다고 했다. 외국의 후원자들이 아이의 생활과 성적 등을 관찰하고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 교육과 성적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뿌자는 얼굴은 본 적 없지만 독일에서 후원자가 보내주는 돈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고 성적이 좋으면 대학도 갈 수 있다고 하니 학교에서도 운이 좋은 학생에 해당했다. 

고등학교까지는 여기서 생활해야 하는데 성적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남학생은 가구기술, 여학생은 의류수선과 같은 기술을 가리켜 졸업 이후에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했다. 

성적이 좋고 후원자의 도움이 이어지는 경우는 대학교육까지 받을 수도  있다. 

"뿌자처럼 집 밖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은 학교 기숙사 생활을 답답해서 힘들어하는데 뿌자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고, 똘똘해서 성적도 좋은 편이에요"라던 교감선생님의 말씀처럼 오빠들의 꿈 또한 멀지 않아 보였다.


        (만난 적은 없으나 후원자가 크리스마스 때 보내준 카드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뿌자)


헤어지던 순간 뿌자는 처음 만났을 때의 서먹함을 잊고는 내 허리를 감싼 손에 힘을 꽉 주며 단단히 나를 안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아래로 부릅뜬 커다란 두 눈이 흔들릴 때 나 또한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무너지려는 마음을 억눌러야만 했다.

돌아올게... 이번에는 지난번보다는 늦지 않게, 너를 만나러 다시 올게...

다짐하고 돌아서는데 기숙사로 올라가는 뿌자가 자꾸만, 자꾸만 돌아보고 있었다.




파슈파티나트와 고살라 길 위를 맨발로 뛰어다니던 세 아이들은

흩어진 꽃잎처럼 서로 떨어져 각자의 새로운 삶 속으로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들의 맨발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이들은 슬리퍼를 숨겨 두고 특별한 날에만 아껴서 신고 평소에는 늘 맨발로 사원 주변을 돌아다녔다.

헐벗고 위태로워 보이지만 삶에 단단히 뿌리내리기 위해 분투하던,

뛰어다니던, 헤매이던 피부의 질감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들의 그을린, 상처 입은 영혼에 언제나 신의 입맞춤이 함께 하기를...

그들의 꿈이 헛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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