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이 뭔데요?
디자이너에서 PM으로 직무 전환한 썰
갑분 PM의 사원증 사진어느 날 갑자기 PM이 됐다. 정말 갑자기다. 나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졸업 후 5년간 줄곧 디자인만 한 찐 디자이너였다. 그러다 어느 날 걸려 온 전화로 인해 커리어가 송두리째 변했다.
#1. "PM으로 지원한 게 맞나요?"
"PM으로 지원한 게 맞나요?"
아무리 봐도 디자인 포트폴리오인데 PM 직군으로 지원한 것이 맞느냐는 질문이었다.
솔직히 PM이 무슨 단어의 줄임말 인지도 몰랐다. 당시 나는 오랜 프리랜서 생활로 지쳐있었고, 단지 '회사'라는 곳에 가고 싶었다. 면접 100곳을 목표로 디자인 비스무리한 단어만 봐도 지원 폭격을 했다. 그곳 역시 PM의 Product만 보고 대강 제품이겠거니 지원했었나 보다.
아, 망했다. 별로라고 생각하시는구나... 싶었는데 수화기 너머의 말이 이어졌다.
"디자인, PM 모두 잘하실 것 같네요. 두 직군의 담당자가 참여해서 면접 진행할게요."
#2. PM이 뭔데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PM이 될 운명인지, 당시 교제하던 친구가 모 게임회사의 PM이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는 곧장 1:1 원포인트 족집게 특강을 시작했다. PM은 Product Manager의 약자이며, 제품의 시작부터 완료까지의 전 과정을 관리한다. 결국 PM은 그 당시 나의 일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고 생각했다. 실상은 매우 다르다)
당시 나는 프리랜서로, 개인사업자를 내고 1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었다. 계약부터 영업, 정산, 실무, 관리까지. 일반적인 회사라면 각 부서에서 처리했을 일을 모두 혼자서 감당했다.
프리랜서의 세계는 매우 냉정하다. 일정 준수는 기본이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높은 수준의 품질이 꼭 필요하다. 만약 무엇 하나라도 클라이언트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경우 끝장이다. 작은 꼬투리를 잡아서 대금 지급을 안 하거나, 쓸데없는 감정 다툼을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단돈 30만 원을 받으려고 부산까지 쫓아간 적이 있다면 믿겠는가.
내가 프리랜서 세계에 머문 시간은 3년이다. 의도한 적은 없지만 3년간 PM의 기본 정의인 제품 관리를 트레이닝하고 있던 셈이다.
PM이 무엇인지 듣자 확신이 들었다. 내가 갈 길은 PM이라고. 항상 막연히 가슴 한편에 기획으로 전향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감각을 다루는 디자인은 늘 어렵고, 천부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디자인으로 살아남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그러나 두 방법 모두 달성하기 어려우며, 그러므로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했다. (이 두 가지가 무엇인지는 주제와 다르므로 별도의 글에서 설명한다) 즉, PM으로서의 면접은 신이 주신 절호의 기회였다.
#3. 합격해버렸다
2020년 2월, 여의도. 나는 면접 자리에서 진짜 나의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일한 방식과 그 속에서 느낀 점, 일이란 무엇인지, 일에서 무엇을 찾는지, 다시 회사로 돌아온 이유, 분쟁이 생겼을 때 해결 방법, 프로젝트 설명 등등.
그리고 나는 최종 합격을 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fyi. 입사하고 보니 면접의 기회를 주신 분은 Head PO님이셨다. 다른 면접관분들은 회의적이었으나, Head PO님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효도할게요...
#4. 잘하는 것 vs. 하고 싶은 것
그러나 이상하게도 막상 합격하니 생각만큼 기쁘진 않았다. 이때 인공지능 관련 회사의 UX/UI 디자이너로 합격했기 때문이다.
이날부터 많은 고민이 시작됐다.
잘하는 것 vs. 하고 싶은 것
디자이너로서 어리바리한 신입 시기를 버티고 이제 좀 숙달된 5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다시 또 PM으로서 신입이 된다니. 분명 처음 하는 일이니 실수가 많을 테고, 지적도 많이 받을 텐데.
동네 구멍가게 사이즈라도 디자인 스튜디오 대표로서 능동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다가, 신입으로서 초반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생각을 하니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 것 같았다. 게다가 나의 성향이 낯설고, 불안정한 것에 대한 방어기제가 심한 점도 있었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혜안을 구했다.
우리 가족들.
친구와 그의 아내.
프리랜서 동지이자, 대학교 선배.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하나였다. 디자인은 충분히 잘하고 있었으니 언제든 다시 할 수 있지만, 변화할 기회는 드물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기억나는 선배의 말.
"둘 중 더 어려운 것에 도전해. 네가 처음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기로 결심했을 때처럼 말이야"
그렇게 나는 PM이 됐다.
#5. 바람 잘 날 없는 PM의 세계
입사 후 어떻게 됐냐고?
당연히 혼돈의 카오스였다.
PM의 세계는 디자이너의 세계와 너무나 다르다. 오랜만에 하는 회사생활은 또 어떻고. 이따금 내가 왜 3년간 혼자 일했었는지 상기되곤 했다.
그러나 PM은 매력적인 직업이다. 나는 가히 이 직업과 사랑에 빠진 것 같다.
PM이 된 후로 주변 사람들은 날 워커홀릭이라고 부른다. 밤낮 주중 주말 휴일도 일, 일, 일. 서핑이 취미인 한 친구는 내가 일만 하는 모습이 불쌍하다고 인생을 즐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일이 즐겁다.
무언가를 상상하고 창조하는 일. 사용자의 불편점을 찾고 개선하여 데이터로 증명하는 과정. 높은 목표 설정과 달성을 위한 놀라운 팀워크. 그리고 그 속에서 믿기 어려울 만치의 성장.
이 일은 내게, 현관문 비밀번호도 잊어버릴 정도로 혼란을 주는 동시에 단기간의 10X 달성이라는 카타르시스를 함께 선사한다.
앞으로 연재를 통해 디자인과 PM, 그리고 직무 전환에 대하여 쓸 예정이다. 주로 두 직업의 전문적인 지식과 다양한 썰(?)을 푼다.
투 비 컨티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