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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영 Aug 15. 2021

퇴사하겠습니다

성장을 향한 퀀텀 점프



몇 년 전, 퇴사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SBS 다큐멘터리 '퇴사하겠습니다'의 방영이 시작점이었다. 일본 아사히 신문사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기자 에미코 씨가 퇴사 후 프리랜서가 된 이야기로, 여기서 퇴사란 자유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출처: SBS 다큐멘터리 '퇴사하겠습니다', 출연자 이나가키 에미코


그러나 퇴사가 모두에게 자유를 뜻하진 않는 것 같다. 에미코 씨는 남들이 선망하는 회사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만렙이지만,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2~30대는 쪼렙 중에서도 개쪼렙이기 때문이다.


개쪼렙에게 필요한 것은 상승 곡선의 커리어 패스다. 그리고 이때 성장의 퀀텀 점프를 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바로 퇴사다.


IT 업계는 평균적으로 2~3년에 한 번씩 이직을 하는데 이때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50%까지 연봉이 수직 상승한다. 한 회사에 꾸준히 근속한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상승폭이다. 그러므로 이직은 가장 확실한 성장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ㅈ소기업 디자이너에서 카카오뱅크 기획자까지

연봉, 회사 규모, 복지, 자아실현 등. 어느 면으로 보아도 나는 확실히 상승 곡선의 커리어 패스를 그리는 중이다. 타임라인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1) 카드 뉴스 디자이너 → 잡지사 편집 디자이너

첫 시작은 아주 작은 소기업이었다. 대표 2명, 마케터 2명, 그리고 디자이너 1명으로 구성된 5인 회사. (fyi. 5인 이하의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의 일부만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 사각지대로부터 좆소기업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그곳에서 나는 카드 뉴스 디자인을 담당했다. 마케터가 써준 원고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용 이미지 콘텐츠로 제작하는 일이다. 당시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으로, 사회생활이라곤 1도 모르는 무지랭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니어 디자이너로서 결코 미래가 없는 일이지만, 그땐 단지 취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그런데 다행히(?) 마케터 중 한 명이 나를 굉장히 싫어했다. 난데없는 디자인 컨펌을 시전 하며 마음에 안 든다고 소리를 질러대는 탓에 입사 몇 주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분이 떠드는 소리를 엿들었다. 맥심코리아라는 잡지사에서 공개채용 중인데 떨어질 것 같아서 못 쓰겠다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해당 공고를 찾아보았고, 지원을 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그렇게 우아한 복수를 하며 첫 번째 이직을 했다.



(2) 잡지사 편집 디자이너 → 디자인 스튜디오 대표

잡지사 맥심코리아 편집 3팀의 신입 디자이너로 정규 월호, 앱 매거진, 각종 파티 포스터와 굿즈, SNS 마케팅 이미지 등을 담당했다. 난생처음으로 회사다운 회사에 입사하여 즐겁게 일했다. 그러나 그 즐거움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디자인 업계에서 편집 디자인, 그중에서도 잡지사는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잡지 업무의 특성상 "마감"이 있기 때문이다. 매 달 15~20일, 약 1주 간의 마감기간 동안은 회사에서 살다시피 한다. 초반 6개월은 수습기간으로 임금의 7~80%만 지급하며(애초에 임금이 매우 낮기 때문에, 수습 기간 동안 받은 월급은 100 원가량이었다) 이후 정규직이 되어도 식비, 택시비, 야근수당 등은 일절 지원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라 버텼지만 점점 체력적, 금전적으로도 감당이 안될 것 같았다. 이 모든 수모를 감수할 만큼의 열정도 없었다. 그래픽의 감각적인 디자인보다 기획에 가까운 논리적인 디자인을 하고 싶었기에 퇴사를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만두려니 덜컥 겁이 났다. 비교군이 이전 회사뿐이라 "또 그런 곳에 가는 것 아니야?" 하는 공포심이 들었다. 당시 팀장이 여기가 디자인 업계에서 가장 대우를 잘해주는 곳이라고 으름장을 둔 탓도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을 말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다가, 다행히(?) 팀장과 사이가 어긋나며 내쫓기듯 퇴사를 할 수 있었다.



(3) 디자인 스튜디오 대표 → 핀테크 PM


퇴사 후, 조금씩 외주를 받던 것이 규모가 커져서 "스탠딩미어캣"이라는 이름으로 1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사실 오래 할 생각은 없었는데, 정신없이 일만 하다 보니 어느새 3년이나 흘렀다.


그러다 점차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프리랜서로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명성(네임 밸류)과 매우 높은 수준의 디자인 실력이다. 일을 구하기 위해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일이 나에게 오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단순 아르바이트 수준에 머물 뿐….


명성은 사실상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문법이다.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는 계층 사회다. (사실 보이지 않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어쩔 땐 대놓고 보이기도 해서) 비틀어 생각하면, 사회가 요구하는 어느 수준의 커트라인만 넘으면 세상살이가 매우 쉬워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내 이름 석자 앞에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싶었다. 그렇게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4) 핀테크 PM → 은행 서비스 기획자

회사로 돌아오기 전, 두 가지 중 하나로 직무를 전환하고 싶었다. 서비스 기획자 또는 인테리어 디자인. 그리고 우연찮게 뱅크샐러드로부터 PM의 기회를 부여받아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뱅크샐러드에서 근무한 1년 5개월 동안 정말 미친 듯이 일만 했다. 누구에겐 별 것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이번 직무 전환의 기회가 너무나도 소중하고 절실했다. 반드시 성공 경험을 가져가리라. 기획자로서, PM으로서의 나의 역량을 증명하겠다고 다짐했다. 왜냐면 나는 알고 있었다. 이 기회가 쉽사리 주어지지도, 쉽사리 쟁취할 수도 없다는 것을.


감사하게도 외부적, 내부적 조건이 충분히 뒷받침되어 자유롭고 행복한 환경에서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성과를 바탕으로 보다 큰 성장을 위해 카카오뱅크에 지원하여, 합격할 수 있었다.




성공적인 이직을 위한 마음가짐

속칭 ㅈ소기업 디자이너로 시작하여,  카카오뱅크 기획자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6년이다. 내가 성공 커리어 패스를 그릴 수 있었던 요인은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1) 현실에 안주하지 말기

나를 계속해서 성장시키는 동력은 나의 기질과 관련이 깊다. 나는 불안도가 굉장히 높은 인간이다. 나의 위치가 안정적인지, 변화 요인이 있을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를 습관적으로 확인한다. 그리고 문제가 감지되면 다음과 같은 생각의 프로세스가 작동된다.

결국 회사 생활은 참고 다니거나, 못 참고 그만두거나 중에 하나다. 설사 아무런 결론 없이 참고 다니기로 결정했더라도 이런 식의 사고를 하는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 회사 생활에서 착하고 무딘 것은 결코 장점이 아니다. 그런 태도는 본인에게도, 회사에게도 독이다. 항상 깨어있는 자세로 나와 회사 상황을 관찰하고, 사고하고,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성장할 수 있다.



(2) 목표 설정하기

내가 성장 커리어 패스를 그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무턱대고 퇴사하지 않은 것이다. 대책 없는 퇴사는 커리어 똥망의 지름길이다. 퇴사를 떼놓고 생각해보아도, 인생에서 목표 설정은 매우 중요하다. 일을 통해 내가 이루고 싶은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놀랍게도 목표가 없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더라.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일도 없어요. 저는 그냥 시키는 일 하고 싶어요." 스스로도 모르는 커리어를 누가 알려준단 말인가.


나는 극강의 안정 추구형 사람이기 때문에 변동 가능성이 낮은 곳에서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게 목표다. 그러기 위해 첫째, 회사가 재정적으로 탄탄한 대기업이어야 한다. 둘째, 어느 한 도메인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체 불가능하여 나의 가치가 상승한다)


뱅크샐러드에서 카카오뱅크로 이적할 때 커머스, 배달, 동영상 플랫폼, 커뮤니티 등 다양한 제품군에서 오퍼를 받았다. 그러나 카카오뱅크의 인증기획팀으로 결정한 까닭은 위와 같은 목표 설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표 설정은 성장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이때 목표는 구체적일수록 좋다.



(3) 속도보다 방향

목표를 정했다면, 이제 목표를 향해 몸을 틀자. 명심해라.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아주 아주 작은 발자국이라도 목표를 향해 내디뎌야 한다.


내가 뱅크샐러드 입사 소식을 알렸을 때 대학 선배가 은근히 까내리는 말을 했었다. 업계 1위도 아니고, 디자인이 훌륭한 것도 아닌데 왜 가냐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 선배는 PM이란 직업을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나 디자이너 아니라고 ㅠㅠ) 그러나 나는 '기획자로 직무 전환'이라는 목표를 갖고 있었고, 따라서 뱅크샐러드로의 입사는 옳은 선택이었다.


이처럼 목표를 향해 아주 작은 커리어라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보자. 그 작은 발자국이 모여 후에 큰 별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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