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는 세 가지 유형
살다 보면 정말 많은 시련과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연애, 인간관계, 가정 등 많은 주제가 있겠지만 빠질 수 없는 것은 단연코 "일"이다. 당연하다. 우리는 하루 중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낸다. 그리고 직장은 얼마나 많은 타인들의 집약체인가. 낳아주신 부모님과도 의견 충돌이 생기는데 하물며 직장 동료는 어떻겠는가.
생계는 또 어떻고. 우리는 동아리 모임이나 취미반 수업, 사교 활동 따위에 참여한 것이 아니다. 각 직무의 전문가로서 회사로부터 돈을 받고 일하는 중이다. 여기서 등가교환의 법칙이 성립된다. 회사는 준 만큼의 성과를 바라고 직원은 받은 만큼의 업무를 원한다. 지불하는 입장에선 앵간한 결과는 성에 안 찰 테고 일하는 입장에선 시급으로 따지면 얼마인지 계산기를 두들겨보게 된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갈등은 딜레마에서 시작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 이렇게 하자니 저게 아쉽고, 저렇게 하자니 이게 아쉽고. 돈은 많이 주는데 일이 힘들거나, 일은 쉬운데 적성에 안 맞거나, 적성에 맞는데 비전이 없거나, 비전은 있는데 돈을 많이 안 주거나. 그래서 많은 직장인이 퇴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퇴사하지 않는가 보다.
언뜻 보기에 딜레마는 평생 풀지 못할 숙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이가 있었으니, 그 자는 말했다. “네 자신을 알라.”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결핍이 있고, 어떤 욕구가 있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미래를 그리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딜레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두 개 이상의 선택지에서 저울질을 하는 것이 바로 갈등인데, 자신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를 알고 있다면 그 결정을 매우 빠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3년간의 프리랜서 기간 동안 도를 많이 닦아서 그런지 업무적 딜레마가 없는 편이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생각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정리한 생각의 정리법을 따르면 모두가 근심, 걱정 없는 행복한 회사생활을 할 수 있다. 믿고 따라와라.
핵심은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을 많이 하면 망상이 되고, 망상은 육체와 정신 건강에 매우 해롭다.
자, 여기 일에서 추구할 수 있는 세 가지의 가치가 있다. 이 중 현재의 본인에게 해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선택하자. 단 1개만 선택할 수 있으며, 나머지 2개는 깨끗이 포기해라.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하나를 성취하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 아닌가요?” 물론 당신이 될 놈이라 나머지 2개도 성취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부가적이다. 갈등의 단계에서 감안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극단적이지만 선택한 단 하나의 가치만을 추구하는 게 가장 깔끔한 생각 정리법이다.
[선택] 많은 돈
[포기] 자아실현, 워라밸
[설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자의든, 타의든 이 가치를 선택했다면 본인을 일하는 기계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한 가지 팁을 주자면, “돈이 많다”의 기준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 좋다. 한 달의 얼마, 연봉 얼마, 만일 집을 사는 것이 목표라면 어느 지역에 몇 평대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얼마로 구체화하자.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에 확실한 기준이 없으면 평생 만족하지 못하는 불행한 인생이 된다.
[포기]
당신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다. 어린 시절 꿈꿔온 장래희망이라던가, 적성, 회사 내부의 인간관계 등은 신경 쓰지 말자. 칼퇴, 제주도로 떠나는 여름휴가,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 등도 접어두자. 워라밸을 챙기면서 고액 연봉을 받는 자들은 극히 일부다.
[장점]
통통한 통장을 가질 수 있다. 흔한 말로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하지만, 돈이 없으면 불행해지는 건 사실이다. (솔직히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다. 모든 경험엔 비용이 드니까) K-유교사상에 따라 돈이라는 단어가 불경하게 여겨지지만, 사실 돈은 노력의 결과물이다. 능력의 가격표이자 성적표다. 따라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과 더 높은 능력치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단점]
불행한 인간이 될 수 있다.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여 개인과 가정의 행복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 많이 번 돈을 관리하지 못할 경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어 평생 노예로 살 수도 있다. 따라서 이 가치는 정확한 기준과 목표 아래 단 기간 동안 지니면 좋다.
[선택] 커리어 (자아실현)
[포기] 돈, 워라밸
[설명]
자아실현을 위한 커리어 패스를 밟는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장래희망이나 적성에 따른 최종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일한다. 이 가치관에서의 직장은, 직장 그 자체가 아니다. 최종 목표까지 이어지는 과정 중 한 단계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그 과정 중 어느 곳에 위치하는지에 따라서 업무 난이도가 매우 달라질 수 있다.
[포기]
열정페이, 좆소기업 등 일에 관한 온갖 안 좋은 명칭이 이 가치관의 단점에 해당한다. 자아실현을 위해 일하는 경우, 대부분 일과 자신이 하나인 덕업일치의 사람들이다. 따라서 일과 사생활의 분리가 없다. 정시 출퇴근, 주말의 휴식, 자유로운 연차 사용 등이 어려울 수 있다. 또 처음부터 일이 잘 풀리지 않은 이상 대기업의 고연봉, 좋은 복지도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장점]
사람은 왜 일하는가? 단순 돈 때문은 결코 아니다. 일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는 자아실현이다. 많은 경우에 일을 통해서 나의 정체성이 확립된다. 비록 적게 벌고, 개인적인 여유가 없더라도 이 가치를 선택한 사람들은 힘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너무 즐겁고 원했던 일을 하고 있으니까.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돈까지 주고 포트폴리오까지 만들 수 있다니. 금상첨화다.
[단점]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래도 일을 하는 것인데. 성과에 반비례하는 보상을 받게 될 경우 좋아서 시작한 일을 다신 좋아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어르신들이 말씀하시기로 정말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하라잖아?
[선택] 워라밸
[포기] 돈, 커리어
[설명]
워라밸은 워킹 라이프 밸런스(Working Life Balance)의 줄임말로 일과 사생활의 균형을 의미하는 말이다. 계약서에 쓰인 대로 정시에 출근하여 퇴근하는 삶을 산다. 지금 같은 코로나가 기승인 환경에선 자유롭게 재택근무를 할 것이고, 자율근무제를 실시할지도 모른다. 일은 근무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어렵지 않은 난이도로 구성된다. 퇴근 후 운동을 하거나 친구들과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다. 가정이 있다면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아이를 돌볼 수도 있다.
[포기]
근무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낮은 난이도의 일을 하기 때문에 많은 돈을 벌 수 없다.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거나, 일을 통한 성취감이나 자아실현 또한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장점]
사람이 있고 일이 있는 것이지, 일이 있고 사람이 있을쏘냐. 이 가치에서의 일은 말 그대로 일일 뿐이며, 돈을 버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회사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매우 적다.
[단점]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으로 인하여 누리는 삶의 질이 비교적 낮을 수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직업으로 정체성이 확립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치가 낮다는 점도 단점이다. 낮은 난이도의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베스트는 직장을 구하기 전, 자신에게 맞는 가치관에 따른 직무와 회사를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워라밸을 선택한 경우,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공무원과 같은 직업이 합당하다. 생뚱맞게 변호사, 의사, 개발자 등을 선택하면 안 된다.
그러나 이미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현재 직장이 자신이 선택한 가치관에 부합하는지 생각해보자. 만약 부합한다면 나머지 2개는 포기한 셈 치고, 만약 부합하지 않는다면 이직을 고려할 타이밍이다.
번외로 가치관 중 어느 것도 고르고 싶지 않고, 그냥 일이 죽을 만큼 하기 싫다면? 당장 퇴사해라. 앞, 뒤, 양 옆 다 신경 쓰지 말고 퇴사가 답이다. 당신은 지금 아픈 상태다. 퇴사하면 밥 빌어먹고 살 것 같지? 하늘은 결코 무너지지 않고, 숨 쉴 구멍은 어디에나 있다.
fyi. 본문의 생각 정리법은 일 뿐만 아니라 삶에도 요긴하게 쓰인다. 고민이 되는 주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나열해보고, 그 중 최우선 가치 1개만 취한 채 나머지는 버려라. 행복은 비움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