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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하면둘 Nov 21. 2019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뭐 때문에 산책하려고 하는거야?"

"봐야할 것이 많아. 꽃이라든지, 고양이라든지..."

"꽃이나 고양이? 할머니가 불쌍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 츠네오가 그녀에게 처음으로 하는 질문은 그것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담요를 덮은 유모차에 타면서까지 산책을 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리곤 그녀의 대답에 배를 잡고 웃는다. 꽃이나 고양이, 그녀가 왜 그런 것들을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바깥으로 나가려 하는 지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사소한 것 따위 그에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허나 조제에게는 다르다. 두 다리가 불편한 그녀에게 바깥의 세상은 늘 허락된 곳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노력해야만 가까스로 닿을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녀는 평범한 바깥을 늘 갈구한다.


이 영화에서 두 사람, 츠네오와 조제의 사랑은 '시선의 차이'로 인해 시작되고 '시선의 차이'로 인해 끝이 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츠네오가 조제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는 자신이 보지 못한 것들을 보는 조제의 독특함 때문이다. 그녀는 앞서 말했듯이 '꽃과 고양이'를 보기 위해 산책하고, 길거리의 '버려진 책들'을 줏어다 읽는다. 사실 이는 그녀의 물리적 시선과도 관련이 있다. 일어날 수 없는 그녀는 기껏해야 어린 아이 정도의 시선에서 세상을 볼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땅 바닥에 있는 것들이다. 그녀의 실질적 키는 기껏해야 100cm 정도다. 그런 그녀가 보는 것이 170cm는 되어보이는 츠네오가 보는 것과 같을 리가 없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실질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은 츠네오가 유모차를 끌다 넘어져, 함께 구름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100cm든, 170cm든 구름을 볼 땐 하늘을 올려다 봐야만 한다. 그렇게 같은 시선으로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된 순간, 사랑은 시작된다.


그러나 이 시선의 차이는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키가 작은 그녀는 늘 그를 올려다 봐야한다. 영화에서 어린 여자아이의 숏에 이어서, 그녀를 보여주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 것은 그녀가 딱 그 정도의 위치에서 밖에 츠네오를 볼 수 없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녀는 츠네오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입장에 처해있다. 영화에는 또 츠네오가 어린 아이나 동물들을 내려다보며 귀여워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들과 조제는 츠네오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츠네오가 그들을 귀여워하는 마음과 조제를 향한 사랑이 비슷할 수 있음을 계속해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두 사람이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쪽이 우월한 상태에서의 애정이라면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 동정이나 연민이 된다. 영화 속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이 동정과 사랑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한다. 츠네오와 조제의 첫번째 이별은 그 균형추가 처음으로 무너지는 순간이다. 츠네오가 복지사를 불러 조제의 집을 고쳐주면서 자신의 대학동기이자 다른 애인인 카나에(우에노 주리)와 대화를 나눌 때 조제는 완전한 동정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이후, 조제는 그를 다시 만나주지 않는다.


그들의 재회는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할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츠네오는 조제를 찾아간다. 자신을 돌봐줄 유일한 사람이 사라져서 어느 때보다도 도움이 절박한 조제는 그를 붙잡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때에도 그녀는 자신을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것을 극렬히 거부한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고, 그 역시도 동등한 시선에서 자신을 바라봐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해도 돼"라고 츠네오에게 말하는 그녀의 속내는 다시말해 "나를 동정하지 말고, 사랑해줘"인 것이다.

그녀는 "휠체어를 사는 게 어때?"라는 그의 말에, 끝까지 싫다고 대답한다. 어린아이 같기도 하지만, 이는 그에게 업혀 그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그녀의 욕심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집스럽게, 그녀는 그에게 업혀다닌다. 그리고 그는 결국 그녀의 무게를 계속해서 짊어지지 못하고 그녀와 이별하게 되며 영화는 끝난다.


"담백한 이별이었다.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아니 단 하나 뿐이었다. 내가 도망쳤다."

영화는 내내 두 사람의 시선 차이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랬기에 이들의 이별은 굳이 다른 이유를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납득이 가능하다. 두 사람의 경우 함께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필요하다. 그런 사랑은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그들이 이별하고 난 후 영화의 마지막 결말 부분이다. 츠네오는 그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와 헤어지고 영화에서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린다. 정들었던 그녀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는 울지 않았다. 영화에서 본인이 스스로 자조적으로 얘기하듯이 그는 그다지 착한 사람은 아니므로, 이별 후 남게 될 조제가 불쌍해서 운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그녀는 헤어진 후 자신만의 행복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울음은 그녀를 떠났다는 죄책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롯이 츠네오 자신을 위한 울음일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저 보통의 헤어진 사람들처럼 사랑이 실패한 것에 대한 통한의 울음. 이별에서야 비로소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동정과, 죄책감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했던 이를 향한 그 서글픈 울음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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