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어쩐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겨진 날. 내게 그것은 대학교 1학년 신입생 환영회 날이었다. 환영회는 정말이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나를 포함해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들떠있었다는 느낌과, 술이 참 썼다는 사실만이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은 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시끌벅적한 술집을 벗어나 방을 찾아 걸어온 주택가는 유난히도 고요했고, 그 와중에도 매우 낯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낯설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왠지 모르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런 이질감을 가장 절감했던 건, 집으로 돌아와 불 꺼진 방에 홀로 들어섰을 때였다. 거기엔 그전까지 늘 상 집에 가면 있던 TV를 보며 자는 듯 깨어있던 엄마도, 잠들어버린 동생도 없었다. 적막과 어둠만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은 내 삶에서 최초로 쓸쓸함이란 감정을 느낀 날로 기억된다. 그때, 잠이 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이제, 어쩌면 평생을 이 어둠을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겠구나하고.
그래서인지 나는 친구들을 자취방으로 참 많이도 데려왔다. 사실 데려왔다기보다는, 오는 걸 꺼리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대학교 새내기들에게는 막차를 놓쳐도 언제든 몸을 뉘일 수 있는 자취방이 하나쯤은 필요한 법이고, 나는 그렇게 오는 친구들을 반겼다. 함께 놀다가 자연스레 우리 집까지 오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긴 했지만, 다른 데서 놀다가 재워달라고 연락이 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많이 취해서 들어오면 귀찮게 구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어찌됐든 혼자인 것 보다는 나았다. 나는 가족의 부재를, 그렇게 친구들을 통해 새로운 가족을 만들며 극복하려 했던 것 같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너무나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한다. 어느 선배는 동성결혼을 통해 가족을 이루고 있고,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며 그를 가족이라 생각하고 살아간다. 또, 셰어하우스에 살면서 그곳에 사는 이들을 나름의 가족이라 여기고 사는 이들도 있다. 나로서는 이러한 일들이 너무나 반가울 따름이다. 어린 시절에 우리를 ‘핵가족 세대’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아마 가장 먼저 폐기되어야 할 이론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정형화된 가족을 만들 필요는 없으며, 이에 얽매일수록 가족을 만들기는 더욱 어려워지는 법이다. 나는 누구에게나 가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어야 한다. 꼭 부부여야만, 혈연관계여야만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지를 줄이는 셈이다.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불 꺼진 방의 어둠과 싸워야할 숙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혼자 있는 게 편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이라 할지라도 늘 홀로 있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가족이란 그런 인간의 근본적인 공포를 해결해주는 이가 아닌가 싶다. 바깥에서 무슨 죄를 짓더라도, 무슨 깽판을 치고 돌아오더라도 결국엔 집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언제나 나의 편은 아닐지라도, 언제나 곁에 있는 누군가. 굳이 가족을 정의하자면 아마 이 정도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