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부모가 되려던 나를 멈춰 세운 캐나다식 교육
한국에서의 토요일 오후,
아파트 단지 안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대신 학원 노란 버스의 경적 소리로 가득합니다.
평일 내내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영어와 수학 학원을 ‘뺑뺑이’ 돌던 아이들은,
주말인 토요일에도 쉴 틈이 없습니다.
수업 후 부족한 영어를 보충하고, 집에 돌아와 간식 뒤에는 피아노 학원으로,
다시 미술 학원으로, 마지막엔 지친 몸을 이끌고 운동 센터로 향합니다.
예체능조차 ‘특기’라는 이름의 또 다른 과목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토요일 해가 저물어서야 비로소 가방을 내려놓습니다.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저 역시 ‘완벽한 부모’가 되고 싶었습니다.
남들 다 하는 학원 하나라도 빠뜨리면 우리 아이만 뒤처질까 봐,
내 아이의 재능을 발견해주지 못하는 무능한 부모가 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아이의 스케줄러를 빈틈없이 채웠습니다.
학원 셔틀버스에 아이를 태워 보내며 느끼는 안도감이 곧 나의 정성이라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의 교실은 제가 세워둔 이 견고한 ‘완벽의 탑’을 단숨에 무너뜨렸습니다.
캐나다에서 마주한 토요일은 사뭇 달랐습니다.
학원 버스 대신 가족과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아이들,
악기 연주 실력보다 그 선율을 즐기는 마음을 먼저 묻는 선생님들.
그곳엔 ‘1등’을 가리기 위한 줄 세우기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수학 문제를 하나 더 맞히는 것보다,
오늘 친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새로운 감정을 느꼈는지가 더 중요한 가치가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 낯선 풍경 속에서 저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내가 아이의 스케줄을 완벽하게 관리하려 했던 이유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는 것을요.
1등 없는 교실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아이를 다그치기 전에
부모인 나 자신부터 ‘완벽’이라는 강박에서 놓아주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완벽한 부모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토요일 오후, 학원 셔틀버스 대신 아이와 나란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용기.
캐나다 교육은 저에게 그 소중한 여백의 가치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완벽해지려 하는 걸까요?
이 글은 1등 없는 교실: 캐나다 교육이 가르쳐준 것들] 시리즈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