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고백: 적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15년 넘게 살았고, 지금은 한국에서 제 일을 하며 머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캐나다 15년 살이'라고 하면 여유로운 풍경과 안락한 삶을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 시간은 나이아가라의 시린 눈발처럼 서늘한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캐나다에 온 지 겨우 6개월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나이아가라 근처에서 큰 자동차 사고가 났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부모 차를 몰래 끌고 나와 제 차를 들이받은 것이었죠.
제 눈앞에서 아이들은 도망을 쳤고, 저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남편은 한국에 있었고,
저는 서툰 영어로 사고를 수습할 능력조차 없었습니다.
결국 가해자를 찾지 못한 채 제 보험으로 차를 고치며, 저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내 삶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구나'라는 무력감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영어 학교에 가도 말은 늘지 않았고, 일자리는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런 저를 다독여주기는커녕, 적응하지 못한다며 타박하던 시댁의 목소리는
사고 당시의 충격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사실 우리는 꼭 캐나다 같은 타국에 살지 않더라도,
각자의 삶에서 문득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누군가는 서먹한 시댁에서,
또 누군가는 거대한 사회 시스템 안에서
"나는 왜 이렇게 섞이지 못할까?", "왜 나만 적응하는 게 이토록 힘들까?"라며 스스로를 자책하곤 합니다.
저 역시 토론토에서의 15년을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의 시간'이라 여기며 저 자신을 미워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일을 하며 서서히 회복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경계인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제가 느꼈던 그 지독한 외로움은 단순히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외로운 영혼이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을요.
이런 저의 부끄러운 고백이 누군가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소속감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분들이 계실 거라 믿습니다.
혹시 지금 홀로 '마음의 타향살이'를 하며 힘겨워하고 계신가요?
15년을 버티고도 여전히 이방인처럼 느끼는 제가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섞이려 애쓰며 자신을 갉아먹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외로운 시간은 당신이 당신다워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소중한 여정일지도 모르니까요.
나이아가라의 눈 속에서 길을 잃었던 제가,
이제는 그 차가운 기억을 문장으로 녹여보려 합니다.
저의 이 서툰 고백이, 어딘가에서 홀로 외로워하고 있을 또 다른 이방인들에게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라는 따뜻한 위로로 가 닿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