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부터 이별까지 한 달 안에 끝내는 속성 사랑법
조로연애라는 단어를 처음 떠올렸을 때, 나는 내 연애 패턴을 한 단어로 정의하고 싶었다. 조로증을 앓는 아이처럼, 겉모습은 금세 어른이 되지만 실제로는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채 늙어버리는 병. 나의 연애가 딱 그랬다.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결혼을 약속하고, 한 달 안에 이별에 이르는. 천천히 걸음마부터 배워야 할 관계가 성급하게 완주를 외치다가 결승선도 보지 못한 채 포기하는 것.
최근의 연애를 떠올려본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를 운명의 상대라고 말했던, 마음과 말이 투명했던 사람. 고작 며칠을 함께 보내며 그는 결혼하자는 말들을 고백했다. 청춘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 쭈뼛거리고 베슬거리며 사랑에 빠진 눈빛으로, 기대에 찬 목소리로 미래를 그렸다. 금사빠가 되지 말자고 그토록 되뇌어왔건만, 그 말들이 마음속에서 금세 자라났다. 가족과 일면식도 없지만 함께할 미래를 그려보게 되었다.
만난 지 4주 차에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 그 관계는 급격히 노화됐다. 그렇게 조잘조잘 말이 많고 반짝이던 눈이 영 다른 사람 같아졌다. 핸드폰을 들여다보기 바쁘고, 함께 있는 시간에도 시끄럽게 볼륨을 키운 채 릴스를 봤다. 3일 동안 숙소에서 그런 모습을 보며 존중받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는 먼저 서울로 올라가고 나서 연락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걸 보며 헤어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꼈다.
혼자 제주에 남아 친구와 통화하며 상황을 정리했다. 예정됐던 일이 벌어진 것처럼 덤덤하고 후련한 마음이 들어 나 역시 헤어지고 싶음을 알았다. 같이 온 여행지에 혼자 있다는 게 쓸쓸하기도 했지만, 집에서 떨어진 곳에 있으니 더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상황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서울에 돌아와서 가벼운 안무를 묻다 카톡 대화로 이별했다. 그를 붙잡고 싶거나 매달리고 싶은 마음보다는 또다시 이렇게 끝났구나 싶어 헛헛함이 들었다.
조로연애라는 단어가 이번 연애만으로 인해 떠오른건 아니다. 수많았던 한 달 남짓의 연애를 겪으며 사랑하는 관계가 덧없이 느껴져 마음에 차오른 단어였다. 내가 지금까지 가장 오래 만난 상대는 2년을 함께 했는데, 그때도 서로의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 상태에서 확신과 헌신을 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언제 남남이 될지 모르는 사이라는 거리감을 두고 만나게 되는 게 가장 슬프게 느껴졌다. 언제든 서로의 삶을 등지고 떠나면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사이가 된다고 여겼다.
조로연애가 반복될수록, 스냅샷처럼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의 이미지가 점점 더 많이 쌓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전에 헤어졌던 기억에서, 그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새로운 이를 만나도 이전 사람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떠올랐다. 비교하게도 되는데 미안하게도 되고, 또 한편으론 여러 경험 덕분에 가장 성숙한 버전이 된 내가,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과거 상대에게 미안해졌다.
플래시 메모리에 계속 덮어쓰기 하는 기분도 들었다. 이전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들다 보니, 새롭게 시작하는 연애에서도 말 못 할 그리움이 남았다. 그런데 이전 사람도 오래 만난 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으로 기억이 덮어씌워지면, 또 금세 이별이 찾아왔다.
짧은 숨의 연애는 강렬한 기운을 자아낸다. 비단 연애뿐만 아니라 어떤 경험이든 처음 겪을 때가 가장 새롭고 반짝이고 번뜩이듯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쇼핑하듯, 새로운 사람을 갈아치운다. 본능에 충실한, 책임은 가벼운 연애에서 느끼는 자극적인 감각들이 중독적으로 다가와 반복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연애 초기의 짜릿한 감정을 즐기다, 관계가 장기화된다 싶을 때 서로에 대한 책임이 생기는 건 피하는 패턴이다.
연애를 겪을수록, 그 빈도가 잦을수록 나도 성숙해지는 것 같긴 하다. 더 많은 사람의 성향을 겪고 또 감정의 우여곡절을 거치며 더 다양한 상황을 버틸 수 있어진다. 지금의 내 모습으로 과거의 상대들을 만난다면 더 잘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근데 그때도 나를 사랑해 준 사람들을 떠올리자면, 미숙하고 순수했던 내 모습을 그들은 사랑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관계를 동경하면서도 그걸 버티고 갈 자신은 없는 자신을 마주한다. 이 사람이 나에게 최선의 상대가 맞을까, 주로 그런 이기적인 걱정 때문이다. 그리고 금세 숨이 죽어버리는 서로에 대한 갈망을 보며, 서로가 언제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처지에, 노부부 같은 모습으로 관계를 몇 년 이상 지속하는 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더 이상 참고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미덕이 아닌 시대를 산다. 그래서 조로연애는 서글프지만 나의 현실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한 사람에게 헌신하며 사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갈 때의 짜릿함, 그리고 새로운 상대를 찾기에 너무 쉬워진 환경 탓에 굳이 한 사람에게 더 많은 시간을 매몰시킬 필요가 없어진 거다. 천천히 걸음마부터 성장해야 할 아이가 겉모습은 금세 노인의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나의 연애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나쁜 면만 있는건 아니다. 조로연애를 겪으며 나는 확실히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더 선명하게 알게 됐다. 감정의 기복을 다루는 법도 늘었고, 이별의 아픔을 견디는 근육도 생겼다. 무엇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법을 터득했다.
조로연애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는 크리틱이 아니라, 셀프 피드백이다. 사랑하는 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닌 채로 또다시 조로연애를 겪더라도, 그 안에서도 성장한다는 것을 기억하려고 썼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모든 경험이 진짜 사랑을 만났을 때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니 조로연애가 어쩌면 나에게 맞는 사랑법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