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할부효도

마음만은 일시불

by BAR SUR

어버이날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열어본 쿠팡 화면에 효도선물 초특가 팝업이 나타났다. 부모님께 언젠가 선물하고 싶던 안마의자가 있는지 찾아봤다. 중국 수입이라는 안마의자부터 의료기기라는 것과 신흥 브랜드 모델까지 알아보다 결국 무이자 할부 되는 옵션으로 추렸다. 어버이날에 맞춰 배송이 될 수 있는 옵션까지 찾다 보니 내가 할부로 효도하고 있구나 싶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돈을 살뜰히 모으는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십 대에는 서른부터 모으면 된다는 안일함으로 나 자신에게 아낌없이 투자했고, 서른이 넘으니 늘어난 수입만큼 고정 지출과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통장을 스쳐 지나갔다. 주변에서는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해외여행을 가고, 부모님께 근사한 선물을 했다는 피드도 종종 봐왔지만, 나에게 시드머니는 먼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내 생활이 돈에 쪼들린 것은 아니다. 먹고 싶은 걸 먹고, 필요한 걸 사고, 취미도 갖는다. 그래서인지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은 늘 뒤로 밀렸다.


문제는 마음이었다. 나를 위한 소비에는 관대했지만, 정작 소중한 이들에게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을 때, 그 마음을 물질로 표현해야 할 때면 빠듯한 잔고가 마음을 짜게 절였다. 몇 년 전 직장 생활이 안정되면서 부모님께는 대형 TV를 24개월 할부로, 할머니댁에는 안마의자를 60개월 할부로 선물했더랬다. 올해 9월이면 안마의자 할부가 드디어 끝나는데 나의 첫 할부효도는 그때였던 셈이다.


가족의 형편이 넉넉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나를 위해 큰돈을 쓰는 것은 한편으로 죄책감을 동반한다. 마치 배고픈 아이 앞에서 혼자 생크림빵을 먹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부모님 댁에 안마의자를 놔드려 찾아올 일상의 작은 변화를 상상하자면 해방감과 설렘이 들었다. 소비를 좋아하는 내 성향상 큰 금액을 결제하는 행위 자체가 주는 쾌감도 있었던 건 물론이다.


하지만 최근 할부효도는 불발로 끝났다. 깜짝 선물로 보내려다 디자인 선호를 확인하려고 전화했는데 거실에 둘 데도 마땅찮고 짐만 늘어난다며 괜찮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실은 내 빠듯한 상황을 알아서 그러셨을 것 같아 형편에 맞는 소소한 용돈을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부모님도, 나도 그 편이 마음 편하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10분 남짓의 통화를 가지는 동안 나는 선물의 본질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이번 어버이날 에피소드를 통해 부모님과의 관계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이상적인 자식의 모습, 이상적인 부모 자식 관계에 나를 맞추려다 혼자 불편해하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있는 그대로의 부모님을,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무엇보다 현실 속에 이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함께 투닥거리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어둡고 거친 필터를 쓰고 봤던 가족 관계가, 이제는 있는 그대로 보인다.


할부효도로 안마의자는 선물하지 못했지만, 그날을 계기로 부모님께 더 자주 안부 전화를 드린다. 안마의자가 놓였을 거실을 상상하며, 그 빈자리에 부모님의 적적함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안마의자를 선물하려던 마음이 실은 부모님 일상 속에 전하고 싶은 내 관심이었던 걸 깨달았다. 아마도 곧 다가오는 아버지 생신에 할부효도를 다시 시도할듯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할부냐 일시불이냐가 아니라, 부모님을 생각하는 그 마음인 것이다. 할부는 그 마음을 현실로 꺼내놓을 수 있게 도와주는 수단이다.


어쩌면 할부효도라는 단어 속에 담긴 나의 고민과 선택들이, 부모님과 나 사이의 마음의 거리를 한 뼘 더 가깝게 만들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물질적인 선물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필요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나의 경제적 한계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모님과의 관계는 더 솔직하고 편안해졌다. 돈을 모으지 못하는 나 자신이 텁텁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마음을 표현하려 애쓰는 게 기특하기도 하다.


미래에 경제적 여유가 생긴다면, 가장 먼저 부모님과 함께 느긋한 여행을 떠나고 싶다. 아버지께는 번듯한 차를 선물해 드리고, 친구분들에게 자랑하시는 모습을 보며 함께 어깨를 으쓱하고 싶기도 하다. 그날이 언제 올진 모르지만, 그때까지 나는 나만의 방식대로 할부효도를 계속해 나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사랑하고 배우고 마음을 나눌 것이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에 정답은 없으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이 작은 노력들이 쌓여, 언젠가는 더 큰 효도를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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