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외롭지 말고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는 30대 중반의 외동이다. 사실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누구도 외동인지 아닌지를 물어보진 않는다. 형제와 같이 살만한 나이까지야 스몰토크 거리가 되지만 30대 중반 정도가 되면 결혼을 하거나 1인 가구가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럼에도 이따금씩 누군가 내게 외동이냐고 물어볼 때마다, 그리고 외동이라 좋겠다는 의례적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형제가 있는 게 좋아 보인다고 말한다. 혼자가 익숙한 외동의 삶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혼자라는 게 조금은 다른 무게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나는 '외동주민센터'라는 나만의 가상공간을 떠올린다. 외동이고 싱글인 사람들이 이웃하며 살아가는 어느 조용한 마을, 그 어귀에 자리한 아담한 4층짜리 건물이다. 로비에서 따뜻한 안내를 받으며, 각자의 고민과 필요를 가진 외동 주민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거나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이를테면 이런 대화들이 오가는 곳이다. 외동인 삼십 대 싱글이 친구들의 결혼식에 계속 참석해야 하는지, 결혼 계획이 없다면 축의금은 어느 정도로 하는 것이 서로에게 부담이 없을지.
혹은 외동인 이십 대 대학생이 처음 독립생활을 시작하며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더 나아가 육십 대의 외동 싱글이 되기까지 삶의 단계마다 어떤 준비를 하고 스스로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에 대한 소소하지만 꼭 필요한 지혜를 나눈다. 또, 부모님이 편찮으실 때 무엇부터 챙겨야 할지, 그로 인해 내 일상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사십 대에 혼자서도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어떤 생활 습관을 들여야 하는지 같은 현실적인 노하우를 공유하고, 서로의 지속가능한 삶을 응원하는 공동체가 된다.
이런 생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게 된 것은 부모님이 육십 대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두 분 모두 크고 작은 건강상의 변화를 겪으시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부모님이 부재하는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해 이전보다 더 자주, 그리고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의 순리대로 언젠가 부모님과 이별하게 되었을 때, 세상에 나와 같은 유전자를 나눈 혈육이 없다는 사실은 때때로 생각의 깊은 곳까지 미치곤 한다. 물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한 번쯤은 떠올리게 되는 장면들이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오 남매라는 대가족으로 자라셨다. 어린 시절에는 복작한 형제 관계가 무심해 보이거나 때론 다툼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그 안에는 오랜 세월 함께하며 쌓인 두터운 이해와 연대가 있었다. 수많은 일상의 기억을 공유하며 서로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모든 맥락 속에서 형제자매라는 관계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단단하게 이어져 온 것이었다.
가까운 친구 사이일수록 좋은 말만 하기보다 의견 충돌이 있더라도 관계가 쉽게 틀어지지 않는다. 서로를 신뢰하고 마음을 맡긴다. 이런 관계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경우가 많기에, 외동인 나에게는 그 부분이 때때로 허전하게 느껴진다. 언젠가 오롯이 혼자가 될 때 나는 누구와 스스럼없이 기대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사회생활에서처럼 늘 긴장하고 노력해야 유지되는 관계들만 남는다면, 마음이 지치거나 무언가를 더 내어줄 힘이 없을 때 나는 어떻게 기운을 차릴 수 있을까. 나를 비롯한 외동들이 한 번쯤은 마주하는 상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조금 더 의식적으로 자신을 위한 안전망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제적인 자립은 그 무엇보다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고,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관계를 쌓는 것도 소중한 자산이다. 스스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돌보는 것 역시, 매일을 충실히 살아가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흥미롭게도 나는 학교 친구들보다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과 깊은 유대감을 나누는 공동체를 경험했다. 같은 목표를 향해 매일 얼굴을 맞대고 치열하게 고민을 나누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던 시간들. 어쩌면 가족 이상으로 밀도 높은 시간을 함께 보냈기에, 그 과정에서 싹튼 동료애가 끈끈한 연결고리가 된 것 같다. 삶의 어려운 순간에 진심으로 마음을 터놓고 기댈 수 있는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우리는 이미 훌륭한 안전망을 가진 셈이다.
형제가 있는 친구들은 혈육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거나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공유하며 자란 관계가 주는 특유의 편안함과 익숙함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좋든 싫든, 삶의 가장 밑바탕에서부터 이어진 그 관계 말이다. 내가 상상하는 외동주민센터는 그래서 단순한 정보 공유의 장소를 넘어선다. 외동이기에 겪을 수 있는 소소한 일상부터 깊은 고민까지, 모든 것을 편안하게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세상 속에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위로와 지지를 주고받으면 좋겠다.
나와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외동들 중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결혼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이들이라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언젠가 나와 같은 고민의 지점에 설지도 모르는 다음 세대의 외동들, 혹은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선배 외동들과 서로의 경험을 연결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싶다.
외동주민센터에서 생활에 맞닿는 프로그램들이 운영되면 좋겠다. 혼자 사는 집에 갑작스러운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웃 연결망, 명절이나 휴일에 홀로 시간을 보내는 대신 함께 모여 소박한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 외동끼리 서로의 부모님께 안부를 전하거나 작은 도움을 주고받는 느슨한 품앗이 같은 것들. 그리고 무엇보다, 외동이기에 가질 수 있는 생각과 감정들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정기적인 모임들.
미래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는 날은 없겠지만, 그 걱정들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나만의 방식으로 안전망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성숙의 과정일 것이다. 외동주민센터는 아직 내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곳이지만 이런 상념을 가진 이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혹여 부모님과도 이별하고 배우자도 없이 홀로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 마음을 알아주고 지지해 줄 수 있는 따뜻한 연결이 당신의 삶에 꼭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어쩌면 외동주민센터는 물리적인 건물을 넘어선,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혈연이라는 기본값 없이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고, 지지하며, 각자의 특별함을 존중하는 느슨하지만 따뜻한 연대. 그 안에서 우리는 외동이라는 정체성을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혼자여도 결코 혼자가 아닌, 충만하고 단단한 삶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정말 그런 공간이 현실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곳의 문을 가장 먼저 두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슷한 온기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외동이어도 충분히 즐겁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조용히 증명해 보이고 싶다. 지금은 상상 속에만 머무는 외동주민센터지만, 그 상상 덕분에 나는 위로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