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 음료는 무엇인가요?
솔의눈, 실론티, 혹은 누군가에게는 인생 음료라 할 만큼 각별한 데자와 한 캔.
이름만 들어도 각자의 머릿속에 선명한 반응이 떠오르는 음료들이 있다. 어떤 이는 생각만 해도 얼굴을 찡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왜 그런 것을 마시는지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반면, 그것 참 맛있다고 진심으로 반색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이토록 한 사람의 취향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음료들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 단순히 맛의 차원을 넘어, 그 꾸준한 선택 속에는 어쩌면 우리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성격이나 삶의 방식, 혹은 소중한 추억 한 조각이 스며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는 유독 한 가지 음료에 대한 확고한 충성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살면서 코카콜라 외길 인생을 걷는 이들을 실제로 몇몇 마주한 경험이 있다. 첫 번째는 대학 시절 동아리의 한 선배였다. 그는 펩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거니와 제로 코크에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오로지 그 새빨간 뚱캔에 담긴 오리지널 코카콜라만이 그의 선택지였다. 물보다 콜라를 더 많이 마시는 그는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사기도 했는데, 어느새 우리는 선배를 만나는 날이면 콜라 한 캔을 인사처럼 건네게 되었다. 한 번은 당시 유행하던 콜라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그 선배는 놀랍게도 펩시를 골랐다. 결국 그에게 코카콜라는 맛의 선택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신념이자, 자신의 확고한 로열티를 보여주는 외골수 같은 취향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십여 년이 흐른 뒤 대학원에서 만난 한 교수님도 비슷한 경우였다. 한 학기 열여섯 번의 강의 동안, 교수님의 손에는 늘 그 특유의 잘록한 호리병 모양 코카콜라 병이 있었다. 기업 지배구조라는 한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날카로운 분석을 해내던 교수님의 연구 스타일과, 매번 같은 음료를 선택하는 그 꾸준함은 어딘가 닮아 보였다. 학부 시절 동아리 친구들이 그랬듯, 어느 순간부터 같은 강의를 듣던 원우들은 교수님께 커피 대신 콜라를 사다 드리곤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도 유독 코카콜라를 좋아하셨다. 어린 시절 나는 탄산음료 중에서도 칠성사이다를 가장 좋아했는데, 엄마의 확고한 콜라 애호 때문이었는지 나는 오히려 콜라와는 그리 친해지지 못했다. 한 사람의 강한 취향이 때로는 주변 사람에게 반작용을 일으키기도 하는 모양이다.
솔의눈이나 실론티처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음료도 있다. 민초파 논쟁은 저리 가라 할 정도다. 나는 이렇게 취향을 심하게 타는 음료에 대한 선호는, 단순한 맛의 차원을 넘어 그 사람의 성격이나 라이프스타일, 어쩌면 그가 은연중에 발산하고자 하는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주변 친구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것을 알면서도 꿋꿋하게 솔의눈을 즐겨 마시는 이십 대가 있다면, 그는 아마도 자신만의 기준이 뚜렷하고 타인의 시선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며, 어딘가 어른스러운 면모를 지닌 사람일지도 모른다.
음료는 시대상이나 특정 세대를 상징하기도 한다. 데자와나 맥콜 같은 음료가 그럴 것이다. 요즘이야 편의점 냉장고에 수십 가지의 선택지가 놓여 있지만, 길거리 자판기에서 캔 음료를 뽑아 마시던 시절에는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았다. 그 시절, 밀크티 특유의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한, 어딘가 어른스러운 맛을 선사했던 데자와는 누군가에게는 빛바랜 사진첩 속 한 페이지처럼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맥콜 또한 마찬가지다. 청량음료이면서도 보리를 원료로 해 맥주와 비슷한 풍미를 풍겼던 그 독특함. 어쩌면 술을 마실 수 없지만 그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던 이들이 맥주 대신 선택했던, 그 시절의 소박한 취향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 반드시 제로 음료를 찾아 마시는 편이다. 가족력에 당뇨가 있다 보니, 당류가 들어간 음료는 죄악이나 마찬가지다. 엄마도 몇 년 전부터는 좋아하시던 콜라 대신 다른 음료를 찾으신다. 다행히 요즘은 상상도 못 했던 종류의 제로 음료들이 앞다투어 출시되고 있다. 이전 직장에서는 직원 복지의 일환으로 새로 나온 다양한 제로 음료들을 공용 간식으로 제공해 주기도 했는데, 이 역시 건강을 중시하는 시대적 분위기의 한 단면일 것이다. 얼마 전에는 함께 러닝을 하는 친구들과 남산을 뛰고 내려와 편의점 앞에 앉아 제로 알코올, 제로 칼로리 캔맥주를 마셨다. 마침 프로모션 중이기도 했지만, 늦은 밤 운동을 마친 네 사람이 나란히 앉아 같은 음료를 마시는 그 순간,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취향과 지향점을 공유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 한 잔을 마실 때도 취향은 드러난다. 나는 생수 중에서는 유독 삼다수만 고집한다. 대학생 시절, 삼다수가 가장 맛있는 물이라는 기사를 어디선가 본 이후로 다른 물에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다. 삼다수는 좀처럼 할인 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평소에는 투플러스원 같은 가성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생수만큼은 삼다수를 선택한다. 건강을 생각해서 다른 음료 대신 생수를 고르는 만큼, 내 취향을 충족시켜 주는 것을 소비한다는 만족감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음료 취향은 때로는 아주 사소한 계기로 시작되기도 하고, 건강이나 가치관 같은 깊은 내적 동기와 연결되기도 하며, 심지어 나이가 들거나 상황이 변함에 따라 진화하기도 한다. 헬스장에서는 정수기로 물을 마시는데, 최근에는 운동 중에 마시는 물의 온도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것을 좋아했지만, 더 많은 양의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체온과 비슷한 미지근한 물이 더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나이가 들면서 차가운 음료가 이전보다 더 이를 시리게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한몫했다.
술 역시 마찬가지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 소주파, 와인 애호가, 혹은 칵테일 바를 즐겨 찾는 이들의 성향은 제각기 다르다. 물론 주량의 영향도 있겠지만, 각각의 주류가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와 그것을 즐기는 방식이 그 사람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맥주는 여러 번 잔을 채울 필요 없이 편안하고 경쾌하게 즐길 수 있다면, 소주는 서로의 잔을 채워주며 씁쓸한 인생의 맛을 나누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와인은 미려한 글라스에 담아 한 모금씩 음미하는 섬세함이 돋보인다. 나의 경우, 집에서 혼자 혹은 가까운 이와 함께 마시는 술을 좋아하는데, 말리부 럼에 오렌지 주스를 1대 3 비율로 섞고 얼음을 채워 마시는 간편한 칵테일을 즐긴다. 달콤한 코코넛 향이 기분 좋게 퍼지는 이 음료는 복잡한 일상을 잠시 잊게 해주는 나만의 작은 취향이다.
매일 다른 음식을 먹어야 즐거운 식도락과 다르게 음료는 늘 같은 것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음료유형검사는 것은 정답이 있는 시험이 아니라 각자마다의 추억과 경험이 담긴 결과를 낸다. 무심코 선택하는 음료 한 잔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취향, 그리고 삶의 방식이 녹아있는지를 함께 발견하고 공감하는 과정이다. 당신의 손에 지금 들려 있는 음료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음료는 당신의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 한 번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 될 것이다. 어쩌면 당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당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