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콤유니티

Comm - Unity

by BAR SUR

공동체란 무엇일까. 나는 종종 이 단어의 본질적인 성질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공동체, 한자 그대로 풀면 함께하는 몸, 즉 공동의 몸이라는 뜻이다. 무엇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의 몸처럼 움직이게 하고, 함께 살아가며 서로를 돕도록 만드는 걸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가 직접 겪어온 여러 공동체의 기억 속에서 찾아보곤 한다. 그리고 커뮤니티(Community)의 어원과 무관하지만 콤유니티라고 정의한다. 공통의 분모(Common)를 나누며, 하나가 되는(Unity)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깊이 몸담은 공동체는 교회였다. 새내기 시절, 화려해 보이던 대학 문화보다 교회 청년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곳은 같은 믿음을 기반으로 모인 곳이었기에, 개인의 취향이나 관심사보다는 목적에 맞게 살아가기 위한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 주를 이뤘다. 방학이면 국내나 해외로 떠나 봉사활동을 하며 서로 협력하고 신뢰하는 법을 몸으로 배웠다. 비슷한 연령대의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띠 동갑이 훌쩍 넘는 형과 누나들도 같은 공간에 있어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나에게는 더없이 안전하게 느껴지는 울타리였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그 감각이 주는 공동체성은 분명 따뜻하고 충만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과 함께 군대에 가면서 나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공동체를 경험하게 되었다. 군대는 나라를 지킨다는 명확한 사명을 가진 공동체다. 그 안에서는 개인의 신앙이나 신념, 외모나 성격, 재능이나 적성 같은 모든 요소가 국방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다시 정렬된다. 교회가 신앙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목적 아래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곳이었다면, 군대는 매일 생존과 직결되는 명확한 과제가 주어지는 곳이었다.


나는 훈련소부터 자대까지 보낸 그 시간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일반적으로 군대는 개성을 억압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나의 경험은 조금 달랐다.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있기에, 오히려 그 사람 본연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신을 가리기 위한 여러 장치, 이를테면 페르소나나 가면을 지니고 살아간다. 하지만 군대, 특히 훈련소에서는 당장 눈앞의 과제를 수행하기에 급급해 그런 가면을 챙길 여유가 없다. 체력적으로 가장 낮은 지점까지 내몰리며 서로의 밑바닥을 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자아를 꺼내놓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더 끈끈하고 원초적인 신뢰가 생겨났다.


이 경험은 당시 내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전까지 경험했던 교회의 관계들을 굉장히 피상적인 것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교회에서는 늘 좋은 모습을 보이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 속에서, 나의 세속적인 욕망이나 별 볼 것 없는 민낯을 솔직하게 직시하고 드러낼 기회가 없었다. 서로의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어딘가 수치스러운 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군대에서는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나의 한계를 매일 마주해야 했고, 그건 나뿐만이 아닌 모두의 일이었기에, 어찌 보면 그곳의 관계가 더 현실적이고 건강하다고까지 느껴졌다. 계급이라는 수직적인 질서조차 국방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한 일종의 롤플레이처럼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사적인 쟁취가 아닌, 공동체의 규칙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에 나와서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군대라는 거대 조직의 한계도 보았기에, 나는 같은 목적을 가진 작은 조직에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섯 명 남짓의 전시 대행사와 열 명가량의 광고 대행사에서 보낸 시간은, 조직의 규모 자체가 공동체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특히 한 광고 대행사에서는 출근 첫날, 나의 사수 격인 분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나지막이 도망치라는 조언을 건넸다.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를 꿈꿨던 나에게 그 말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서늘한 불협화음이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나는 마침내 강력한 공동체성을 가진 작은 조직에 안착할 수 있었다. 사회 문제를 기업의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이들이 모인, 소셜 섹터라 불리는 영역의 회사였다. 교회처럼 같은 신앙을 가진 것도, 군대처럼 정해진 사명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경험과 동기를 가지고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자발적으로 모여 협력했다. 나는 그들의 순수한 열정에 매료되었고, 어쩌면 이곳에서부터 내가 지향하는 콤유니티의 본질을 다져나갔던 것 같다. 직급이나 연봉 같은 외부 요인보다, 자신이 상상하는 방향대로 세상이 변화하는 것 자체를 가장 큰 보상으로 여기는 사람들.


하기 싫은 일을 최소한만 해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여 치열하게 토론하고, 함께 식사하고, 때로는 운동도 하면서 우리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나갔다. 식구라는 말처럼, 회사와 개인의 삶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만큼, 나는 그들과 삶을 공유하며 행복했다. 작은 조직, 특히 스타트업에서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제품과 서비스를 완성해 가는 과정은, 온 마을이 한 아이를 키워내는 육아와 같다. 그 존재의 이유를 찾고, 최소한의 기능으로 걸음마를 가르치고, 제 몫을 다하는 존재로 키워가는 그 모든 과정에는 기계적인 노동 이상의 애정과 관심, 그리고 헌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치원에서 대학원에 이르는 학교도 나에게 공동체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학교는 가족을 벗어나 만나는 첫 공동체다. 나는 학창 시절, 소위 말하는 인기 있는 주류에 속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새 학기가 되면 겉모습으로 서로를 인지하고, 내면의 생각보다는 친구 사이에서의 표현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그곳에서, 나는 종종 나에게 주어진 모범생이라는 이미지에 스스로를 가두곤 했다. 그래서 다수의 친구를 사귀기보다, 그런 나를 역할이 아닌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한두 명의 친구와 깊이 교감하며 지냈다.


그랬던 내가 학교 공동체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생활을 한참 한 뒤에 돌아간 대학원에서였다. 사회에서는 회사 간의 이해관계나 개인 간 직급과 경력이 보이지 않는 결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학교에 입학해 보니 각자의 지위 고하를 떠나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되려 가벼운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이 새삼스럽게도 소중하게 다가왔다. 회사는 이직과 함께 공동체를 떠나게 되지만, 학교는 졸업 후에도 동기로 연결돼 느슨하지만 길게 이어지는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나는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학교 공동체의 매력을 대학원에서 느꼈다.


이처럼 내가 경험한 여러 공동체들은 각기 다른 색깔과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경험을 돌아보며 나는 나 자신을 ‘울타리가 높은 접착제 같은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곤 한다. 한번 내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나의 공동체가 된 사람들에게는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다가가 끈끈한 관계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때로는 더 엄격하고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이 글에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길게 하지 않으려 한다. 자칫하면 너무 신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가족은 나의 의지로 선택하거나 떠날 수 없는, 주어진 모습 그대로 최선을 다해 꾸려가야 하는 운명 공동체다. 어쩌면 내가 외동으로 태어나, 이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의 형태가 아주 단출했기에, 나는 평생에 걸쳐 더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공동체에 매력을 느끼고 그 본질을 탐구하며 나만의 '콤유니티'를 찾아 헤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족은 좋든 싫든 내 삶이라는 울타리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평소에는 무심한 듯 보여도 결코 놓을 수 없는 뿌리 같은 공동체다.


결국 내가 정의하는 콤유니티는 계속해서 변화해갈 것이다. 하지만 그 중심이 나의 이익이나 만족이 아닌,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의 이야기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수많은 관계와 공동체를 거치며 배운, 그리고 앞으로도 지켜나가고 싶은 가장 중요한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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