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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가다 Aug 10. 2024

복직이 코앞

  복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살면서 어떤 날은 정말 내게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수능 시험 날이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하루만 바라보고 달려왔지만 그날이 현실감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전에 수시모집에 합격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수능 긴장감을 떨쳐 내며, 내겐 와도 오지 않은 것과 똑같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시모집에서 쾌속 낙방열차에 탑승했고 그 이후로 수능 시험 날은 성큼성큼 내게로 왔다. 나는 시험 전날 극도로 긴장해서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 결국 수능 날 마지막 과목인 5교시 제2 외국어시험 시간에 시험지 밑에 작게 무덤 그림을 그리고는 그 아래에 ‘엄마 미안해’라고 써 내려가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또 이렇게 수능처럼 복직이 내게 다가오고 있다. 첫 육아 휴직 때는 아이가 갓난쟁이였고, 기관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종일 말도 못 하는 아이와 붙어있느라 진이 빠졌다. 어른과 대화하고 싶고,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고, 10분이라도 온전히 나의 쉬는 시간이 보장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래서 복직만 바라봤었는데 이번 휴직은 완전히 달랐다. 휴직 전부터 이번 휴직만 보면서 버텼고, 육아의 힘듦과는 별개로 나를 위한 계획을 차곡차곡 세웠다.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싶었고,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다.


  휴직을 하자마자 제일 먼저 운동 계획을 짰다. 일하는 동안 스트레스를 꾸준히 술과 야식으로 풀어 온 나는 어느 순간 불면 날아가 버릴 풍선처럼 빵빵해졌다. 다행히 날아가기 전에 휴직을 해서 꾸준히 운동을 할 수 있었다. 아이의 밥을 차려주면서 나도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처음 해보는 필라테스와 고등학교 때 이후에는 해본 적 없는 수영을 꾸준히 해서 결혼 전의 몸무게를 되찾았다.

      

  글은 정말 꼭 쓰고 싶었다. 꾸준히 독서 모임을 하면서 언젠가는 꼭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기를 수십 번 했어도 일하는 동안은 온갖 핑계로 글쓰기를 피해왔었다. 그렇기에 이번 휴직 때는 무작정 글쓰기 모임에 가입해 꾸준히 글을 써 나갔다. 쓴 글들은 육아를 주제로 묶어서 한 권의 브런치 북이 되었다.

   

  책을 읽을 시간도 많았다. 모임을 위한 책만 겨우 읽던 때와는 달랐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남는 시간에 짧게 집안일을 한 뒤 평일 오전 시간에 집이나 카페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꿈만 같았다.


  이번 휴직 때는 커피도 배웠다. 평소 음료라고는 물과 술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일을 하면서는 점심시간 이후에 너무 피곤하고 졸렸다. 주위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면 좀 낫다고 해서 속에서 받지 않는 커피를 조금씩 꾸준히 마셨다. 이제는 샷을 빼지 않고 아메리카노 한 잔을 거뜬히 마실 수 있다. 피곤할 때 사람들이 왜 커피를 마시는지도 이제는 나도 안다.

 

  대학 때 잠깐 배웠던 일본어도 다시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학원을 등록할까 하다가 우연히 근처에 살고 있는 일본인 나츠미가 인터넷 카페에 회화 수업을 한다는 글을 읽게 됐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연락해 다음날부터 회화수업을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나츠미와 언어공부를 하면서 평소의 일상을 가장 많이 공유하는 친구가 되었다. 나츠미와 이야기한 덕분에 자신감을 가지고 일본여행을 했다. 일본의 포장마차인 야타이에서 주인과 대화를 했고, 택시 기사님과의 수다도 조금은 가능해졌다.

   

  하지만 복직을 앞두고서는 이런 루틴들을 모두 정리해야 했다. 글쓰기 모임을 할 수 없고, 평일 오전에 만나던 나츠미도 만날 수 없고, 역시 평일 오전에 하던 운동도 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니 가뜩이나 싫은 복직이 더 싫어진다. 나츠미와의 마지막 수업 날 나는 밥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처음엔 목적을 가지고 대가를 지불하며 만났던 인연이 이제는 마치 친한 친구가 멀리 떠나가는 양 애틋해졌다. 나는 나츠미에게 옛날 남자친구에 대해서, 혹은 지금의 남편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아이의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내가 얼마나 못된 생각을 하는 엄마인지도 고백했었다.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얘기도, 부모님의 이혼 얘기도 꺼냈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낯설고 낯선 타인과 누구보다도 가까웠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마지막 날 나츠미는 내게 작은 선물을 건넸다. 식사를 마치고 집 근처 어린이도서관에 가서 나츠미의 선물을 풀어보았다. 작은 사케 2병과 짧은 손 편지가 있었다. 그날따라 도서관에서는 평소의 클래식 음악이 아닌 분위기 있는 뉴에이지 피아노 곡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 것이 확실하다. 나는 나츠미의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낮 시간에 사람도 거의 없는 어린이도서관에 울고 있는 내 모습이 청승맞아 얼른 짐을 챙겨 집으로 갔다.


  아.. 복직 싫다. 지금의 내 생활을 버리기 싫어 복직이 당장 열흘도 남지 않았지만 그 어떤 준비도 하고 있지 않다. 2학기에 하필 담임을 주다니. 아이들 명렬표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름이 외워지지 않는다. 2학기 개학날 당장 무슨 말을 할지 진도는 어디를 나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휴직하고 있는 동안 아는 선생님들이 다른 학교로 떠났고, 아직 내 책상은 치워지지도 않아 짐하나 풀지 못했다. 친한 동료들이 어차피 개학 후 일주일이면 결국 적응하게 되어 있다고 위로했지만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건 나도 안다고! 적응 안 하면 어쩌겠어! 그치만 싫어! 싫다고!’ 


  어린애 같은 투정이 하루하루 사뭇 진지해진다. 이제는 마음을 가다듬을 때도 됐는데 쉽지가 않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하루하루 예고 없이 들이닥칠 재해를 무방비로 맞이하는 마음이 맞는 걸까. 


    




  예쁜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가르치면서 전처럼 보람도 느낄 거야. 일도 육아도 둘 다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전처럼 술과 야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지 않을 거야. 좋은 동료를 만나 재밌게 지낼 수 있을 거야. 또 새로운 즐거운 일들이 펼쳐질 거야.


  그러니 아직 복직 전이지만, 출근하자마자 퇴근을 생각하듯, 빨리 겨울방학을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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