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오빠 오빠 오빠 오빠
내게는 친오빠가 한 명 있다. 어릴 때부터 서로 의지하며 자라왔고, 어릴 때는 겨우 2살이 많았을 뿐이지만 부모님이 안 계실 때에는 내게 부모님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래서 ‘오빠’라는 말이 내겐 너무도 친숙하다.
내 배우자는 나보다 5살이 많다. 난 나보다 연상의 남자에게 ‘오빠’라는 표현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했으므로 결혼 후에도 계속 ‘오빠’라는 호칭을 쓰고 있다. 뭔가 애칭을 만들어 부르기에는 오글거리고 ‘여보’라는 호칭은 또 노숙해 보여서 입에 붙지 않았다. 그래서 간혹 친한 친구 부부가 서로를 ‘자기’라고 부르면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저 단어를 말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신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부부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내가 남편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부르는 순간, 내 친구가 내게 물었다.
“그 오빠라는 표현 좀 그렇지 않아? 나는 남편이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오빠라고 부르는 거 왠지 자존심 상해서 안 써.”
“아 그래? 그냥 나보다 나이 많으니까 오빠라고 부르는 건데..”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나서는 왠지 기분이 묘했다. 오빠라는 호칭을 쓰는 나는 자존심이 상해야 하는 건가? 언제부터 오빠가 그런 호칭이 되었나. 난 내가 자연스럽게 써왔던 ‘오빠’라는 호칭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빠’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나이 어린 여자가 손위 남자를 정답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로 정의하지만 실생활에서는 묘한 뉘앙스를 가진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물론 단어 자체는 잘못이 없지만 사회에서 그 단어에 부여한 상징적 의미와 사전적 의미 사이에 갭이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요즘 ‘오빠’라는 호칭에는 정서적인 친밀감, 구체적으로는 듣는 이를 향한 동경심 내지는 이성애적 호감을 내포한다. 그래서 마치 어떤 여성이 어떤 남성에게 호감이 있음을 드러내는 호칭으로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나이 어린 보이그룹 멤버에게도 잘생기면 ‘오빠’라고 부르겠는가. 또 간혹 티브이에서 유흥업소 이야기가 나온다든지, 불륜, 혹은 뭔가 끈적한 내용의 영상에서, 여성들이 나이 많은 아저씨에게 ‘오빠’라는 표현을 쓸 때에는 수직관계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막연하게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오빠’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을 즐겨하는 것도 흔히 보는 현상이다.
이렇게 ‘오빠’는 연상의 남성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호칭의 대상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때 ‘오빠’라고 부르는 여성은 반대로 권력의 보호를 받는, 귀엽지만 미성숙한 존재로 내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니 ‘오빠’라는 단어가 불쌍하다. 누나에게는 없는 그 불편한 프레임을 쓰고 있는 ‘오빠’는 내가 어릴 때 우리 오빠에게 부르던 그 ‘오빠’가 아니다. 내가 자연스럽게 부르던 호칭과 그 의미를 빼앗아 버린 것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도 나는 남편에게 부를 만한 호칭을 찾지 못해 계속 ‘오빠’라고 부르고 있다. 이 호칭을 언제 무엇으로 바꾸어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오글거리지 않으면서 남들이 쓰지 않는 사랑스러운 별명을 찾아봐야 하나. 아니면 그저 내겐 단지 사전적 의미의 호칭이라는 믿음으로 계속 써야 하나. 조금 헷갈리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