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고야의 <옷 벗은 마하>, <옷 입은 마하>를 볼 수 있는 곳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는 유명한 미술관이 세 곳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프라도 미술관이다. 호기롭게도 하루 만에 세 개의 미술관을 다 보리라는 계획을 세웠는데, 나는 첫 미술관을 방문하고 나서 이 계획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프라도 미술관 한 곳을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모든 전시를 다 관람하지 못할 만큼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프라도 미술관은 루브르 박물관,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나란히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곳이었다. 그 명성에 새삼 놀랐다.
프라도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2시간의 긴 줄을 서야 했다. 그래도 길었던 대기줄 덕분에 막상 미술관 안에서는 비교적 쾌적한 전시 관람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중세 시대의 다양한 미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유독 초상화나 종교화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그 외에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고야의 그림을 관람할 수 있었는데, 유명한 작품들을 볼 때 즈음에는 체력적으로 제법 지친 터라 한 작품 한 작품을 찬찬히 뜯어볼 만큼의 여유는 갖지 못했다. 오전 11시 45분에 들어가 저녁 6시에 미술관을 나왔다.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면 회상하는 데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 프라도 미술관은 내부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난 모든 작품을 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기억력에 의존해 과거를 떠올려보니 결국 인상에 남았던 그림들은 오랫동안 천천히 뜯어보면서 작품이 어떤 의미일지 추측해 본 작품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그림은 고야가 그린 <옷 입은 마하>, 그리고 <옷 벗은 마하>이다.
처음 <옷 벗은 마하> 작품을 봤을 때 오묘한 기분을 느꼈다. 프라도 미술관을 걸어 다니며 봤던 완벽에 가까운 여신들의 나체에 비해, 이 그림은 다소 노골적으로 나체가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누워 있었고, 그녀의 음부는 약간의 털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하며, 두 가슴은 중력을 그대로 받아들여 서로 다른 방향으로 약간 눌려 있었는데 그것이 그림을 더욱 사실적으로 보이게 했다. 관능적인 느낌을 주는 그림이었다.
이 그림이 공개됐을 당시,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낀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당시 종교 재판소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한다. 비너스와 같은 특정 여신의 나체만 허용하던 당시의 분위기에 반해 일반인의 나체를 그렸다는 것이 음탕하다고 여겨졌고, 이 여자에게 옷을 입혀야 한다는 의견이 거셌다. 그럼에도 고야는 이 여성에게 옷을 입히지 않았고 아예 새로운 그림을 다시 그렸다. 그렇게 해서 두 점의 마하 그림, <옷 입은 마하> 그리고 <옷 벗은 마하>가 탄생하게 되었다.
지금은 중세시대의 강력하던 종교인들의 힘이 옅어지기도 했고, 그림 대신에 손쉽게 사진을 찍어 우리가 보는 것들을 쉽게 복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오늘날 미술이 예전만큼 강한 사회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다. 시각적인 복제가 쉬운 세상이 되었으니, 미술도 과거와 같이 규범에 얽매이기보다 더 자유롭게 개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래도 프라도 미술관에서 중세의 미술 작품을 관람하고 그 당시의 분위기를 살피거나 숨겨진 일화를 찾아내며, 역사를 되돌아보고 인간의 문화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들을 찾을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만약 프라도 미술관에 다시 가게 된다면, 유명한 인물들의 초상화나 종교화를 조금은 건너뛰고, 내가 보고 싶은 작품들을 먼저 찾아다닐 것 같다. 미술관 입구에서 5유로를 내면 한국어 가이드 오디오를 대여할 수 있다. 한 작품 당 3분 내외의 설명을 제공하니, 작품 감상에 도움을 받고 싶다면 꼭 대여하기를 추천한다. 다만, 모든 작품의 오디오 설명을 듣고자 한다면 온종일 작품을 봐도 다 구경할 수 없을 테니, 유명한 작품이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을 먼저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만약 내가 마드리드에 다시 갈 일이 있다면 프라도 미술관에 재방문해서 내가 놓친 작품들을 충분히 감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