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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Aug 28. 2020

내 침대 위에 두 명이 있다.

겪지 않아도 될 일

'미쳤냐!! 내 침대 위에서 섹스하지 마!'


커튼을 열어젖히고 14인실 도미터리에서 섹스를 하는 이 미친자들에게 소리쳤다.






한국으로 강제 귀국을 한 지 2주 만에 다시 떠나왔다. 2주 안에 꼬리뼈가 괜찮아질 리가 있을까. 하지만 이미 왕복 티켓을 결제를 한 상황이고 우리 집 없이 친정, 시댁을 오고 가려니 두 곳 다 내 집처럼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엔 천천히 쉬엄쉬엄 느리게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물가도 싸고 예쁜 카페도 많고 수영장 딸린 숙소를 저렴하게 빌려 쉴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우리도 유유자적 수영이나 즐기며 아픈 몸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그렇게 오게 된 곳 태국 '치앙마이'. 그런데 마땅한 숙소가 없다. 우리의 예산에 맞는 수영장 있는 우리만 살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일단 먼저 도미터리를 예약하고 2-3일 쉬면서 숙소를 계속 찾아보기로 했다.




 14인실 도미터리의 신음소리

 

8인실 도미터리에 머물던 중 같이 방을 쓰는 사람 중 누군가가 정글투어를 다녀온 모양이다. 혹시 모를 베드버그 때문에 방을 소독해야 한다며 호스텔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14인실에 몰아넣었다. 내 침대 위칸은 큰 키에 금발 단발머리가 꼭 '토르'를 연상케 하는 독일인이 사용을 했다. 남편에게 연신 잘생겼다며 말 한마디 해보고 싶다고 수다를 떨었지만 너무 잘생긴 게 부담스러워 결국 한 마디로 건네지 못했다.


밤 12시가 좀 되지 않은 시각.

14인실 도미터리의 전등은 꺼졌고, 토르와 그의 친구를 빼곤 모두 들어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고요한 방안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끼익'하고 열렸다.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는데 여자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벌써 방 사람이랑 친해졌나 생각하며 보고 있던 웹툰을 계속해서 보는데 다리 하나가 사다리를 밟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리 하나가 또다시 침대 위로 올라갔다. 내려온 적이 없는데 올가는 다리만 두 번. 그렇다 두 사람이 올라갔다. 둘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한 침대에서 조용히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속삭이는 게 목적인 듯했다. 이윽고 신음소리가 방안을 애워쌌다.

야릇한 소리가 내 침대 위에서 들려온다. 잘 못한 게 없는 난데 보던 웹툰을 끄고 조용히 숨죽였다. 시간이 지나자 둘은 격해졌고 이 곳이 도미터리 인지도 잊은 듯했다. 나 또한 내가 격분해야 하는 상황임을 깨달았다.


열이 받았다. 침대에서 나와 내 위칸의 침대를 열어젖히고 소리치고 싶었다.

  'Don't do that' , 'Get out',  'Are you crazy?' 뭐라고 해야 하나... 입으로 뻥긋뻥긋 발음 연습을 해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불알이고 있지만 깡다구 없는 난 여전히 침대 아래에 있다.


분명 열이 받는데, 내가 화내도 되는 건가? 그러고 보니 도미터리에서 섹스하지 말라는 규정이 있던가? 가만 생각해보니 이 호스텔에서는 다른 도미터리처럼 '섹스 금지'라는 문구도 못 보았다. 이곳은 허용되는 곳인가? 저 위칸은 토르의 '개인 공간'이니 내가 격분할 일이 아닌가? 토르가 '무슨 상관이냐' 라고 하면 어떡하지... 왜 다들 가만히 있을까. 그다지 늦은 시간도 아니었다. 나처럼 아직 잠에 들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다들 숨죽이고 있을까?


그들의 밤샘 섹스는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내가 먼저 잠들었는지, 그들이 먼저 잠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 위에서 사랑을 나누는 그 둘 때문에 밤새 시달려야 했다. 몸이 뜨거웠다. 불쾌해서일까, 그 야릇한 소리에 나도 달아오른 것일까?

 안부를 묻는다


캐리어 있는 곳이 내 칸, 그 위 남편 옆이 토르칸


다음날 조식을 먹으로 내려온 토르를 한번 째려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쉼'을 위해 선택한 곳. 그곳에서 겪은 열이 뻗치는 사건. 조금 더 돈을 주고라도 우리만의 숙소를 구했으면 편하게 쉬고 그런 더러운 꼴도 겪지 않았을 텐데... 그때의 우린 참 융통성이 없었다.

꼬리뼈를 쉬게 하기 위해 선택한 치앙마이에서의 달콤한 한 달 살기는 8인실 도미터리에서 14인실 도미터리를 끝으로 3주 만에 허무하게 종료되었다.




그 두 사람 때문에
밤새 외로웠단 건 비밀로 묻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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