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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Aug 28. 2020

여행 중 만 서른 살이 되었다

해외에서 맞이하는 만 서른 살의 생일. 유럽의 한 근사한 레스토랑에 앉아 남편은 멋진 수트를 입고, 난 원피스를 입고 앉아 케이크 앞에서 와인잔을 부딪치며 서로 다정하게 마주 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11월 10일


여행을 떠나고 3달 만에 남편은 생일을 맞았다. 만 서른이 되기 전 남편은 20대의 마지막인 자신과 몇 일째 이별을 진행하고 있었다.


'안녕~ 나의 20대 마지막의 몸이여.'

'여보, 인사해줘. 20대의 마지막 내 눈이야'

'어때? 나의 20대의 마지막 손길이야. 다시는 만질 수 없는 20대 마지막 손이니 마음껏 만져'


이런 식으로 자신의 모든 신체에 의미부여를 하며 30대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11월 9일에서 10일로 넘어가는 시점 그러니까 남편의 마지막 20대를 보내주는 다신 없을 순간에 우린 캄보디아에서 베트남으로 넘어가는 슬리핑버스 안이였다. 버스 안에서 맞이하는 생일. 만약 내 생일이었다면 심술이나 창밖을 보고 한국을 그리워하며 울고 있겠지만 남편은 행복해했다.


남편은 캄보디아에선 20대였지만 베트남에 온 지금은 30대가 되었다.

다신 오지 않는 이 순간, 아름답고 완벽한 하루였음 좋겠지만 사실 이 날은 모든 게 계속 꼬이기만 한 날이었다.





캄보디아에서 저녁 7시 30분에  출발한 버스는 우리의 목적지인 베트남 호치민에 다음날 오전 11시가 넘어 도착했다. 씻지도 못하고 버스에서 잔 터라 컨디션도 안 좋고 온 몸이 찝찝하고 찌뿌둥했다. 그런 몸을 끌고 남편이 미리 예약해둔 숙소를 찾아 걸었다. 고작 5분 정도의 숙소 위치가 나에겐 5km 정도 되는 듯 느껴졌다. 숙소 앞에 도착은 했으나 주인이 없었다. 미리 유심을 구매하지 않아 연락도 불가능하고 환전도 안 한 우린 무조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서너 시간을 기다렸을 때... 어디선가 잡히는 와이파이를 이용해 숙소 주인과 연락을 하고 비밀번호를 알아내 숙소로 들어갔다. 미리 예약해둔 우리 방 문을 열었는데 무슨 일인지 방 청소가 되어 있지 않은 방이었다. 배도 고프고 씻고 싶고 쉬고 싶은 고댄 몸 상태에서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남편은 숙소 주인에게 문의를 했다. 미안하다며 앞에 있는 방이 우리가 예약한 방보다 비싼 방인데 그 방을 사용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 방 역시 청소되지 않은 방이었다. 결국 하우스키퍼가 와서 청소를 끝냈고 우린 3시가 넘어서야 짐을 풀 수 있었다.


밤늦게 남편 생일이 지나기 전 급하게  조그마한 케이크를 사 와 초에 불을 불이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남편 생일은 바쁘게 힘들게 끝이 났다.

내가 생일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일까? 남편에게 괜히 미안했다. 혼자 뛰어가서 선물이라도 샀어야 하나 싶어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남편은 전혀 개이치 않아했다. 오히려 너무 좋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서른 살의 생일 상이 4천 원짜리 케이크 하나에 음료 하나가 전부인데 말이다.



남편을 보면 짠한 마음이 들면서도 설마 내 생일에도 이런 식으로 선물도 없이 보내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내 생일인 1월에는 유럽에 있어야겠어.' 혼자 머릿속으로 얄팍한 계획을 세웠다.



남편은 진짜로 행복했던 걸까?
자신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행복하다고 주문을 외우는 걸까?








1월 10일


남편의 생일이 지나고 2개월 후 내 생일날이 되었다. 유럽에 있고 싶다는 생각과 달리 우린 아직도 동남아에 머물고 있었다.

그땐 남편이 20대의 자신과 이별하는 모습이 도무지 이해가지 않고 오버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일이 되어보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20대 청춘을 보내고 30대가 된다. 30대라는 숫자에서 풍겨오는 책임감의 무게가 생각 많은 나를 더 생각하게 한다. 30대에 입문하는 나를 위해 행복하고 완벽하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빠졌다. 오늘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질 생각이다.


먼저, 쇼핑몰로 향했다. 비싸고 반짝이는 것들을 보고, 예쁘고 재질 좋은 옷들을 보았다. 남편은 생일 선물로 사고 싶은 것을 사라며 내 목줄을 풀어놓았다. 나는 이리저리 뛰며 쇼핑몰을 휘젓고 다녔다.

그렇게 자유가 되어 지갑을 들고 몇 시간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내 손은 빈손이다. 30대의 나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었는데 여행 5개월의 효과일까? 사고 싶은 게 많아 하나만 고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남편에게 철든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걸까?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고르지 못하고 연신 '괜찮아, 필요 없어'라고 마음에 없는 소리를 했다. 그렇게 아이쇼핑을 마치고 대신 유명하다고 소문난 카페에서 1인 1잔을 시켜 먹는 여유를 부렸다. 또, 저녁은 호스텔 직원이 소개해준 레스토랑에서 여행 시작 이후 최고로 근사하고 비싼 곳에서 배가 터지게 먹었다. 얼마 만에 이렇게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배에 든든하게 기름칠을 하는지 모르겠다.



정성스럽게 차려진 테이블과 신선한 음식들, 이국적인 분위기만으로 만족스러웠다. 태어나 처음으로 선물 없이 보낸 만 서른 살의 생일이지만 언제든 갖고 싶은 게 생기면 남편이 사주리란 믿음이 있었다. 이렇게 착한 아내인데... 분명 그럴 거야.


20대 초반의 나는 용감하고 열정적 이었다. 20대 중반의 나는 잔꾀가 많았다. 20대 후반의 나는 나태했다.

다시 초반이 된 나는 무서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면 좋겠다.





 소원을 빌었다.
내년 생일은 한국에서 보내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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