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 바톤터치 인터뷰_ 콘텐츠 에디터 임재원]
BAT는 브랜드의 런칭부터 빠른 성장까지 브랜드에 필요한 모든 솔루션을 기획, 실행하는 '국내 유일의 종합 브랜드 에이전시'입니다. BAT는 에이전시로서의 정체성 이전에 ‘탁월한 프로페셔널들의 커뮤니티’를 지향하며, 존경할 만한 동료들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프로페셔널리즘'과 개인보다 뛰어난 팀을 추구하는 '펠로우십'을 통해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며, 더 나아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BAT 크루들.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과 자극이 되는 BAT 사람들의 릴레이 인터뷰 '바톤터치(BATon touch)'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
잘 익은 사과를 한 손에 쥐고 다 먹었을 때 제가 느끼는 기분처럼, 누군가 제 글을 읽고 난 후에 마음이 가볍고 산뜻해지면 좋겠어요. 영양가까지 있다고 느끼면 더할 나위 없고요. 그런 글을 선물해 주는 에디터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저 꾸준히 오래 쓰고 싶습니다.
과거 에디터는 잡지 기사를 쓰는 사람, 출판사에서 책을 편집하는 사람을 뜻했습니다. 콘텐츠의 중요성이 커지고, 디지털 미디어가 확장되며 콘텐츠가 다변화된 지금은 독자를 사로잡는 필력은 물론, 탄탄한 기획력과 마케터의 감각까지 갖춰야 하는 직업으로 확장되었죠. 갈수록 에디터에게 더 많은 능력치가 요구되지만, 콘텐츠로 재미와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콘텐츠를 통해 긍정적인 영향력을 선물하고 싶다는 브랜드 미디어 파트 콘텐츠 에디터 재원님을 만나봤습니다.
Editor Sangsoo Kim
Photographer Inae Lee
BAT에 입사하고 얼마 안 됐을 때, 기존 브런치에 발행했던 BAT 크루 인터뷰를 새로운 버전으로 기획하면서 제안한 꼭지예요. BAT의 뛰어난 멤버들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어지는 릴레이 인터뷰가 좋겠다 싶었죠. 마침 회사 이름도 이어달리기의 바톤터치(Baton Pass)와 연결 짓기에 딱 맞았습니다. 바톤터치를 기획하면서 막연히 이 코너를 만든 사람이니 제가 나올 일은 없을 거라 확신했는데 이렇게 등장하게 되어 쑥스럽고 신기합니다. 저에게 바톤을 넘겨준 분이 가람님이라는 점도 뜻깊었어요. 가람님과 롯데물산 GEEP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는데, 이 자리를 빌려 긴 시간 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어요.
기본적으로 에디터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똑같다고 생각해요. 이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다루는 툴이 늘었어요. 잡지사에 있을 때와 달리 지금은 워드, PPT, 일러스트레이터, 피그마 등 많은 툴을 쓰고 있어요. 기획의 폭이 넓어지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거죠. 다만, 지금 하는 일이라 그런지 몰라도 업무 난이도는 에이전시 에디터가 가장 높은 것 같아요. 다양한 프로젝트를 두루 소화해야 하니까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고, 조금 얕더라도 넓은 시야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래도 힘든 만큼 많이 성장할 수 있어요.
첫 회사를 그만두고 감사하게도 저를 좋게 봐주신 분들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어요. 업무 자체가 이전과 비슷하기도 했고, 당시 제 마음은 해외 유학으로 굳혀 있었거든요. 유학 준비를 하면서 프리랜서 에디터로 외주를 받으며 용돈을 벌었는데요. 그중 하나가 BAT였어요. 현재 BAT 크리에이티브 그룹의 콘텐츠 팀장인 성희님이 전 직장 동료여서 기회가 닿았죠. 직장을 다닐 때 성희님을 보며 ‘성희님과 같이 일하고 싶다’, ‘성희님에게 일을 배우고 싶다’라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어느 날 성희님이 BAT에서 콘텐츠 에디터를 충원하는데, 같이 일해 볼 생각이 있냐고 넌지시 물어보셨어요. 그때 직감적으로 ‘이 기회마저 거절한다면 앞으로 스카우트 제의는 물론, 성희님과 함께 일할 기회도 내 인생에 없겠다’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에이전시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해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가 갑자기 터지면서 해외로 나가는 길도 막혀버렸죠. 이래저래 타이밍이 잘 맞아 유학을 포기하고 BAT 입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BAT에서의 첫 프로젝트는 브랜드 브로슈어를 만드는 일이었는데요. 매달 한 권씩 잡지를 만들던 경험이 있어서 브로슈어 작업은 쉬울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어요. 사실 똑같은 글쓰기라고 해도 소설가가 쓰는 소설과 시인이 쓰는 시는 전혀 다르잖아요. 잡지를 만드는 일과 브로슈어를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였어요.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을 먼저 캐치해서 센스 있게 제안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웠습니다. 그래도 첫 프로젝트로 홍역을 치른 덕분에, 이후에는 어떤 프로젝트에 투입돼도 처음만큼 적응하는데 어렵거나 힘들지 않았어요. 가장 힘들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니 고마운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드네요.
‘회사는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 사람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거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뒤집어 말하면 사람이 좋으면 일이 힘들어도 계속 다닐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뜻이죠. 정말 멋진 동료들, 일 잘하는 동료들이 곁에 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떠나고 싶지 않은 거예요. 내가 잘 못하는 일도 있지만, 분명 잘하는 일도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처음이라 서투르고 주눅 들 때마다 되새겼죠.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나도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고, 좋은 영향력을 끼치자’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이후 투입된 프로젝트가 에디토리얼 중심의 리테이너 콘텐츠 제작 및 운영이었는데, 다행히 제 성향에도 잘 맞아 즐겁게 진행했습니다.
올해 4월 BAT에서 론칭한 비스킷은 브랜드와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미디어 플랫폼이에요. 음성 콘텐츠를 팟캐스트 채널에, 녹음본을 아티클로 구성해서 홈페이지와 SNS에 발행하고 있어요. 친한 친구, 동료들과 잡담할 때 오히려 더 좋은 아이디어와 인사이트가 나오잖아요? 그런 편안한 분위기에서 나누는 깊이 있는 대화를 지향하며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인사이트를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것이 목표예요. 팀을 옮긴 지 어느덧 3개월 차에 접어들었는데 그동안 영상과 음성으로 사전 제작한 콘텐츠를 아티클로 만들고 발행 시스템을 안정 궤도에 올리는 데 집중해 왔어요. 요즘엔 평소 궁금했던 브랜드, 주목할 만한 브랜드를 중심으로 섭외에 총력을 기울이며 새로운 에피소드 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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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에 와서 브로슈어, 단행본, SNS, 영상, 디지털 사보, 브랜드 웹진 등 정말 많은 콘텐츠를 만들었지만 음성 콘텐츠를 제작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어릴 때 라디오 DJ를 흉내 낸답시고 카세트테이프에 하고 싶은 말과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해서 친구에게 선물할 만큼 저는 라디오 키즈였거든요. 지금도 종종 라디오를 들으면서 일하고요. 제가 좋아하는 장르,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를 만들어 볼 수 있다는 게 또 다른 배움이자 도전의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또, 지난 몇 년간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수정 사항이 없거나 한번에 오케이를 받으면 그건 잘 만든 콘텐츠일까?’라는 고민이 어느 순간부터 많아지더라고요. 비스킷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콘텐츠가 무엇인지 실험해 보고 싶어요. BAT 오리지널 콘텐츠를 기획, 제작하는 만큼 책임감도 막중하고 남다른 애정이 샘솟아서 욕심이 나기도 했고요. 아쉬움을 남겨두고 팀 이동을 한 만큼 브랜드 미디어 파트에서 새로운 팀원들과 좋은 콘텐츠를 꼭 만들어 보고 싶어요.
저는 서점에 갑니다. 서점에 가면 얻는 게 정말 많아요. 베스트 셀러 코너를 보면 요새 어떤 주제에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고요. 진열된 책 표지만 훑어도 요즘 디자인 트렌드를 알 수 있어요. 사람들이 어떤 컬러와 무드를 선호하는지, 어떤 레이아웃이 유행하는지 한눈에 보이죠. 책 제목만 훑어도 카피 흐름을 볼 수 있고요. 책 구경뿐 아니라 사람 구경하기에도 재밌는 곳이에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내세울 만한 필력은 전혀 아닙니다. (웃음) 그냥 책이 너무 좋아요. 세상에 책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큼 책에게 많이 기대고 위로받고 빚지며 살고 있습니다. 고기도 많이 먹어본 사람이 맛있는 고기를 알듯 좋은 글도 많이 읽어야 좋은 글과 그렇지 못한 글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쓰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이렇게도 써 보고 저렇게도 써 봐야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잖아요. 저도 그걸 찾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어요. 그런데 세상에 완벽한 글은 없잖아요? 대문호의 글에도 비문이 있고 아무리 고쳐도 고칠 부분이 또 나오는 게 글이죠. 완벽을 추구해도 끝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저를 끌어당긴 것 같아요. 질리지 않고 계속 좋아할 수 있고, 더 잘 쓰고 싶게 만들죠.
물론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인간보다 더 잘 기획하고 맞춤법 하나도 틀리지 않고 매끄럽게 글을 쓰는 AI가 있을 거예요. 그럼에도 이 직업이 사라질 거라 생각하진 않아요. 앞서 말한 것처럼 완벽한 글은 없다는 이유에서요. 그리고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아주 먼 옛날부터 그랬어요.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인류의 DNA에 새겨진 이 본능을 기계가 단숨에 갈음하지 못할 거라 생각해요.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믿고 싶어요.
얼마 전 다녀온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제 마음을 대변해 주는 문장을 만났어요. "인간에게는 인공 지능이 가지지 못하는 '이상한 사랑'의 능력이 있다." (박혜진, 『작가의 조건』)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허무한 답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저 진심을 다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람의 온기를 전하기 위해서는요.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했을 때 조금이라도 찔리면 표절이고, 안 찔리면 참고라고 생각해요. 너무 애매한 기준인가요? (웃음) 내가 열심히 고민하고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았는데 부끄럽지 않고 당당해야죠. 그러려면 일단 레퍼런스를 많이 보는 것도 필요하고, ‘창조는 모방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으니 남의 것을 흉내 내면서 이것저것 따라 하고 시도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생각해요.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만의 것이 나온다고 봐요.
내 손을 거쳐서 나오는 게 ‘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글이든 기획안이든 보고서든 내가 만든 결과물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닿았을 때 반듯하고 깔끔한 모습이길 바라요. 그러니까 계속 확인하고,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서 다듬는 게 습관이 됐어요. 가끔은 계속 확인하는 습관이 괴롭기도 해요. 그래서 늘 스스로 ‘힘을 빼자’, ‘마음을 다해 대충하자’고 말합니다. ‘마음을 다해 대충’은 제가 좋아하는 일본 일러스트레이터가 쓴 책의 부제예요. 실제로 너무 힘을 주는 것보다는 마지막 순간에 힘을 빼야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과일이랑 채소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특히 잘 익은 사과를 한 손에 쥐고 야금야금 베어 먹으면 다 먹고 나서 기분이 정말 좋아요. 먹음직스럽게 익은 사과의 붉은빛과 동그란 모양을 보고 있으면 자연의 산물이라는 게 새삼 경이롭기도 해요. 그렇게 잘 익은 사과를 한 손에 쥐고 다 먹었을 때 제가 느끼는 기분처럼, 누군가 제 글을 읽고 난 후에 마음이 가볍고 산뜻해지면 좋겠어요. 영양가까지 있다고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그런 좋은 글과 경험을 선물해 주는 에디터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저 꾸준히 오래 쓰고 싶습니다.
BX 그룹의 브랜드 디자이너인 혜송님이요. 혜송님과 몇 차례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요. 에디터가 생각한 것을 글로 표현한다면, 디자이너는 비주얼로 보여주잖아요. 제가 만약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을 혜송님이 그 이상으로 보여주실 때가 많았어요. 세상에 내보내지 않았던 시안들이 아쉬운 한편, 저만 알고 있어서 내심 기쁠 정도로 멋진 B안들이 있었답니다. 언젠가 혜송님과 재밌는 작업을 또 함께하고 싶어요. 혜송님에게 평소 디자인 아이디어는 어떻게 수집하는지, 요즘 일하면서 고민하는 지점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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