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옆 인간극장 176 - 양다은(대구)
목욕탕 옆 인간극장 176 - 양다은(대구)
2016년 3월 29일, 대구광역시 경북대학교 서문 인근 독립출판 서점 ‘슬기로운 낙타’
누군가 손꼽아 기다리지 않는 편인데 그녀는 기다렸다. 실망할지 모른다며 그녀는 걱정했다. 그녀는 독립출판 형태를 빌려 ‘구질구직’이란 이름을 가진 책을 스스로 묶었다. 출판사는 ‘백전백패’를 이름으로 걸었다. 사전에서 ‘구질’은 앓은 지 오래되어 고치기 어려운 병, ‘구직’은 일자리를 구함, 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그녀 글을 읽고 속상했고 웃었다.
벚꽃이 맺힌 날 만났다. 낯설었다. 긴 시간을 떠들었는데 소재는 모자라지 않았다. 그녀는 “이야기 듣다 보니까 묘하다는 말을 많이 쓰시던데 매력 있는 단어예요.” 했다. 또 그녀는 “자극적인 단어가 없는 대화라 좋았어요.”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요?”
“바쁘려고 하고 있어요. 아니면 딱히 할 게 없어서요. 졸업하고 백수니까요. 정해진 게 없으면 무기력해지더라고요. 일부러 만들어요.”
“주로 어떤 일들을 통해 바쁘려고 하고 있어요?”
“일정을 계속 만들어요. 네모 칸 안에요. 아침에 수영 가고 회화 스터디 하고 이때는 무슨 공부하고 저녁엔 독서 스터디 가고 사람들 만나거나 제 공부하거나 그래요.”
“오늘 같은 날엔 어떤 걸 해요?”
“오늘 화요일이죠? 화요일은 완전 픽스 된 건 독서 스터디밖에 없어요.”
“계획적이시네요.”
“(웃음) 원래 안 그래서 일부러 만들어요.”
“독서 스터디는 어때요?”
“생각보다 안 차분하더라고요. 재밌는 것 같아요. (웃음)”
“어떤 느낌인데요?”
“저도 책 읽는 게 취미는 아니거든요. 요즘은 하기 싫은 걸 하다보니까 책으로 도망가는 느낌으로 이것저것 읽어요. (독서 스터디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가 읽는 책을 편하게 이야기 하는 자리예요. 이야기 듣고 저도 이야기 하고.”
“요새 기억할 만한 일은 어떤 게 있어요?”
“최근엔 별로 없었어요. 올해 벌써 4월이잖아요. 계속 원서 내고 자격증 따고 면접 보고 그러다 보니까 이 시간이에요. 제가 원서를 180개인가 정도 썼거든요. 진짜 많이 썼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직업군도 다르고 산업군도 엄청 많이 내잖아요. 엄청 많이 떨어져서 웬만하면 떨어지든지 말든지 해요. 그러다가 한 번씩 자빠질 때가 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맨 정신에 자빠져서요. 요즘엔 힘들다는 얘기밖에 안 해서 친구들에게 이야기 잘 안 했거든요. 그때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속 시원하더라고요. 지금 괜찮은 것 같아요.”
“스스로 좋아하는 일은 어떤 게 있어요?”
“사람들 만나는 게 좋고요. 조금 지겨운 걸 못 참아요. 그리고 겁은 또 많아서 스펙타클한 걸 하진 못 하지만요. 그 안에서 (좋아하는 사람이나 일을) 만나고 만드는 것 같아요. 스터디도 하고 다른 과 애들도 만나고 1학년 애들도 보고요. 작년엔 중간에 취업 준비하다가 제주도에도 혼자 다녀왔거든요. 그냥 혼자 계획 없이 다니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그래요.”
“여행 다니는 거 좋아하세요? (네!) 최근엔 어디 다녀오셨어요?”
“최근엔 못 갔어요. 계속 비행기표 보고 말고 보고 말고 그랬어요.”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잖아요. 이렇게 현실 세계에 갇혀 있을 때에는 옛날 이야기가 좋아요. 초등학생 양다은은 어땠어요?”
“옛날 생각이 잘 안 나요. 반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학년 때는 엄마가 시켜서 했고 계속 그 뒤로도 했었어요. 그때는 키가 큰 편이어서 남자애들 중에 덩치 큰 애들이랑도 어울리고요.”
“이제 중학생이 됐어요. 중학생 양다은은 어땠어요?”
“친구들에게 엄청 많이 의지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닌데 엄청 우울해했던 것 같아요. 작은 것들, 고등학교는 어디 가야 해나 이런 것부터 해서요. 다이어리를 중학교 때부터 계속 썼었거든요. 가끔 한 번씩 보는데 열 몇 살짜리가 왜 그렇게 고민이 많았는지. (웃음)”
“중학생 때 기억나는 일은 어떤 게 있어요?”
“엄마랑 많이 싸웠어요. 엄마가 공부 잘 하는 애들이랑 놀라고 해서요. (웃음) 그래서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듣고 싶어서 왜 그래야 하는지 엄마한테 물어봤어요. 그런데 엄마가 대답을 안 해주고 그냥 그래야 된대요. 그래서 제가 나름 주장을 했어요. 공부 못 하는 애들도 뭔가 잘하는 분야가 있고 배울 게 있다. 엄마가 내 친구들 안 만나봤으면서 왜 그런 이야기를 하냐 그랬어요. 그래서 계속 싸웠어요.”
“이제 나이가 조금 들어서 고등학생이 됐어요. 고등학생 때 양다은은 어땠어요?”
“고등학생 때에도 약간 조금 자기 비판적이기도 하면서 겉으로는 설치기도 하고요. 두 가지 면이 계속 있었어요. 작은 일에도 쉽게 흩어지는 편이었어요. 시험 치면 꾸기고 울고 그랬다가 다시 노래방 가서 풀고. 반에 막상 있으면 친구들이랑 뭐 하자 이런 걸 좋아했어요.체육대회나 스승의 날 같은 때에는 이런 거 하자고 해서 하고. 그래서 취미, 특기란 적는 게 있었는데 친구들이 대신 적어줬는데요. 그게‘나대기’였어요. (웃음)”
“고등학생 때 기억나는 건 뭐 있으세요?”
“고등학생 때 문학 시간이 있었는데요. 계약직 같이 잠깐 계시는 선생님이었어요. 그때 선생님이 시를 가르칠 때 그림을 그리라고 했어요. 시를 읽고 무슨 느낌이 드는지 아무렇게나 그리라고. 막 낙서처럼 그렸는데 제 걸 보고 칠판에 그려보라고 했는데 그때 잘했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때 재밌었어요. (시를 보고) 드는 느낌이나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리라고 했어요. 수업 시간 때 많이 잤었는데 그때는 잘 안 잤어요.”
“이제 대학생이 됐어요. 대학생이 됐을 때 양다은은 어땠어요?”
“되자마자는 너무 신났던 것 같아요. 그냥. 그냥 됐다. 그래서 계속 놀았죠. 계속 생각 없이 놀다가. 계속 미뤘던 것 같아요.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하고 뭘 하고 싶은 그런 걸. 놀다보니까 땅바닥에 머리 박는 날이 있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이제 뭔가 해야 하나 싶었어요. 그때 내가 고등학교 때는 교환학생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지금 학점 이걸로는 아무 것도 못 하겠다 같은 생각을 했고 그래서 학점도 메우고. 그러다보니까 졸업할 때 되더라고요.”
“졸업은 언제 했어요?”
“2014년에요.”
“대학생 때 기억나는 건 어떤 게 있으세요?”
“학점이 너무 낮아서요. 제가 1학년 때 학사경고를 받았었거든요. 그걸 메우려고 계속 그거에 엄청 매달렸어요. 나중에는 학점 잘 받았거든요. 그래서 친구들이 넌 인간승리라고 그랬어요. 학사경고에서 무슨 장학금까지 받냐고.”
“또 있어요?”
“자잘한 게 생각이 안 나요. 자소서를 많이 쓰다보니까요. 자소서는 큰 거 위주로 쓰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 위주로밖에 생각이 안 나요. (웃음)”
“대학은 이제 졸업했어요. 그 다음에는 어땠어요?”
“졸업하고 인턴을 잠깐 했었는데요. 그때 너무 해맑았어요. 회사 생활 할 준비가 안 됐어요. 엄청 못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했지 싶어요. 그때 상처도 많이 받고 그때 처음 혼자 여행을 가기도 했어요. 돌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와서 하고 게이지가 차면 또 돌아다니면서 비우고. (웃음)”
“요새는 어때요?”
“요새는 일부러 기복을 많이 안 만들려고 해요. 여행도 가보니까 갔을 때 너무 좋고 제가 몰랐던 거나 장점들을 볼 수 있어서 좋은데 돌아오면 그 갭이 너무 크니까요. 이거 책 만드는 것도 배워서 하는 건데요. 그거 책 만드는 거 배우기도 하고 드로잉 클래스도 듣고 그랬어요. 그것도 이제 살짝 끊었어요. 기복이 생겨서요. 이런 거 할 땐 너무 재밌는데 이런 것만 쫓고 살 순 없더라고요. 일단 닥친 것부터 하자 싶었어요. 취업.”
“그러면 지금은 취업이 제일 큰일이네요.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마케팅 쪽이요. 지겨운 걸 제가 잘 못 참거든요. 음 그런데 그쪽 시장이 너무 치열하기도 하고 사실 제가 너무 새로운 걸 안 원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아예 유턴은 못 하는데 조금 다른 방향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문화기획 쪽도 생각해서 내봤어요. 그때 면접을 갔는데 서러웠던 게 제가 갈팡질팡 하는 것도 있지만 거기서 제 열정이나 그런 것들도 ‘온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별난 사람도 좋은 건 아닌데 너무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 않다는 걸 생각했어요.”
“앞으로 어떨까요?”
“앞으로도 뭔가 나중에 대해 상상하는 건 있는데 구체적으로 계획한 건 없거든요. 일을 해도 오래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지금 일을 하고 싶은 것도 다른 기회를 만날 것 같아서이거든요. 기회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어요. 책을 내고 이런 인터뷰 하는 것도 연결이 된 것처럼 경험을 더 쌓아서 풍부한 걸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지금 당장 하기보다 더 쌓아서 하려고 미루고 있어요. 책 써서 내고 그런 것도요.”
“그래도 가끔 상상은 할 수 있잖아요. 해보고 싶은 일이나 버킷리스트 같은 목록이 있으세요?”
“버킷리스트 중에 인터뷰 해보는 게 있었어요. 어떤 사람이 절 찾는 거잖아요. 그런데 벌써 해서 신기해요. (웃음)”
“또 있어요? 다른 거?”
“다른 건 타투. 타투 해보고 싶고요. 다른 건 뭐 있죠. 뭔가 제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이런 책방이어도 좋고 게스트하우스도 좋고. 계속 사람이 들렀다 가고 그런 공간을 가지면 좋겠어요.”
“또 있어요?”
“생각은 많이 했었는데 막상 안 떠오르네요.”
“없어도 괜찮아요. 굳이 억지로 끄집어낼 필요 없어요.”
“이상형은 어때요?”
“귀여운 사람. 뭔가 딱 짚어서 말은 못 하겠는데요. 제가 귀엽다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너무 잘생기진 않았는데 자기 개성이 있는 사람이 귀여운 것 같아요.”
“결혼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 있어요?”
“나--중에 하고 싶어요. 나-중에. 너무 재미가 없을 때요.”
“어떻게 결혼하고 싶어요?”
“제가 주인공이 되는 결혼을 하고 싶어요. 한두 번 결혼식에 가봤는데 너무 30분 만에 굴러가듯이 계산적으로 하더라고요. 현실 세상에서 결혼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긴 한데 그런 걸 안 하고 싶어요. 예를 들자면 뭔가 제 친구가 제게 보탬이 되고 싶은 게 있으며 그 친구가 잘하는 게 있을 거잖아요. 베이킹을 잘하면 쿠키를 구워오고 글씨를 잘 쓰면 그런 걸 해주고요. 홀 그런 데 말고 자연스러운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하고 싶어요.”
“사람에 대해 물어볼 건데요. 지금 딱 떠오르는 고마운 사람이 있어요?”
“같이 취업 준비하는 동생이 있는데요. 그냥 같이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한 번씩 혼자 있을 때도 많았거든요. 학교에 있을 때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계속 있는데요. 그때 너무 허전하더라고요. 그때 다른 친구가 옆 자리를 채워주는 게 고마웠어요.”
“지금 고맙거나 기억이 나는 친구가 있어요?”
“간호사인 친구가 있는데요. 술을 엄청 좋아해요. 굳이 집에 있다는데도 집까지 데리러 와서 술 사주고 그러거든요. 당장 친구가 술 먹고 싶어서 왔을 수도 있지만 또 생각나서 찾아주고 그런 것들이 고마워요. 지난달인가 막창 먹으러 갔었는데요. 그때 막 쓸데없는 말을 하다가 그때 그 친구가 힘들면 힘들라고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 그게 그렇게 쉽지 않더라고요. 이 상태가 너무 오래 되다 보니까요. 듣는 그 사람들이 부담될 것 같고. 이미 오지선다로 답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힘들 수도 있고 한계가 있잖아요. 그걸 말해주는 자체만으로 숨통이 트이는 것 같고 좋았어요.”
“죽는 건 어떤 것 같아요?”
“죽는 걸 일상이라고 하면 이상한데 막 멀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인적성검사를 보면 나는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대답하는 항목이 있거든요. 그걸 한 번은 생각해보잖아요. 그걸 그런데 예, 라고 대답하면 안 된대요. 그게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잣대래요. 그런데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거지 그걸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잖아요. 도망의 대상은 아닌데 한 번씩은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죽으면 좋겠어요?”
“중학교 때 도덕책을 봤는데요. 일본에서 지하철에서 사람을 구하고 죽은 분이 소개됐어요. 어차피 죽으면 얼마나 허무하겠어요. 세상에 미련이 없을 때에 그렇게 죽고 싶어요. 세상에 미련이 없을 4-50대에. 그런데 요새는 모르겠어요. 아파도 괜찮을 것 같아요. 죽을 때 되면. 이상하다. (웃음) 그때 죽을 때 살아오면서 좋았던 기억이 많이 생각이 나면서 끝나면 좋겠어요.”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뭔 걱정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름 합리화를 하거든요. 걱정을 하고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니까 그만큼 생각이 깊어질 수도 있고 글을 쓸 수도 있다고요. 저한테 그게 능력일 수도 있는데 그런데 제 스스로가 피곤해요. 조금 더 행동으로 옮기는 게 나을 것 같아요.고민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있어요?”
“살면서 남이 없을 순 없잖아요. 당연히 신경이 쓰이고. 남들 하는 만큼 하는 게 맞는데. 너무 그런 것들이 안 익숙해지면 좋겠어요. 저도 지금 남들만큼 하려고 하고 있긴 한데 그걸 왜, 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당연히 남들 하니까 하는 게 아니라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이렇게 하면 안 되나, 생각하면 좋겠어요.”
“누가 다은 씨에게 그랬어요. ‘다은 씨 잘 지내요?’ 그러면 뭐라고 대답할 거예요?”
“조금 약간 뭉뚱그려서 대충 말할 것 같아요. 인사치레 말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제가 힘들다고 말 안 하는 것도 열심히 하면 되겠지,그런 말을 듣기 싫어서 그런 거예요. 저도 듣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 말을 안 하거든요. 친구들에게 잘 되가나, 그러지도 않고요. 정말 먼 사람이 궁금해서 물어보면 대충 지내지, 그렇게 대답할 것 같아요.”
“정리하면서 사소하게 물어보는 질문이에요. 점심에는 뭐 먹었어요?”
“오늘은 엄마가 유부초밥 싸줘서 먹었어요. (웃음) 요즘 도시락 싸서 다니거든요.”
“어제는 그럼 뭐 했어요?”
“어제는 월요일이죠? 어제도 도서관에 왔었는데 너무 공부가 안 돼서요. 제가 취업 준비하면서 별 걸 다 하는게요. (웃음) 인적성검사에서 수학을 쳐야 하는데 제가 수학을 너무 못 하는 거예요. 제가 뭐가 문제일까 생각하다가 사칙연산부터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서점에 가서 많은 자리수를 계산하는 책을 사서 그걸 하루에 두 장씩 풀자 그랬어요. 그런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다 틀리는 거예요. 그래서 찾아보니 인도수학이 있더라고요. 한 문제 푸는데 30초면 풀어요. 시험에 그렇게 나오진 않지만 그게 재밌었어요. 그리고 공부 안 되는 날이라고 같이 공부하는 친구랑 얘기만 했어요.”
“내일은 뭐해요?”
“내일은 수요일이죠? 오늘과 별반 다를 건 없을 것 같아요. 도서관 가서 공부하고.”
“이제 물어볼 내용은 다 물었어요. 어마어마한 것도 중요한데 오늘 내가 잘 지내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전 일상 자체가 중요한 사람이라서요. ‘구질구직’ 책 내용이 좋기도 하지만 궁금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문장이 있어서 직접 만나서 보면서 물어보고 싶었어요.”
“제게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세요?”
“이거 왜 하는 거예요?”
“기업을 제가 3년 정도 다녔어요.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하고 성과를 내고 인정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는데요. 어느 날 생각해보니 사실 온전한 제 것은 아무 것도 없더라고요. 제가 직장을 벗어나면 어떤 게 남을까 고민했는데 없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해도 괜찮고 하다가 말아도 괜찮은데 오래할 수 있는 걸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걸 해요. 지금 이게 2년 넘었거든요. 잔잔하게 오래 하고 싶어요.유명하지 않아도 잔잔하게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어요.”
“10년 할 수 있겠어요?”
“2년 해보니까 괜찮았어요.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하니까요.”
“재밌겠다.”
“만나서 기록한 숫자는 많지만 그냥 일상 속에서 만난 거라서요. 딱히 많고 적음을 구분할 숫자는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많은 인연을 잇고 살아가는구나 생각하면 신기해요. 지나가다가 커피 마시다가 물어보고 친구와 만나서 물어보고 그래요. 프로젝트로 규정하거나 어떤 성과에 목적을 두지 않아서요. 오늘 고마워요.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기 쉽지 않거든요.”
“저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제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무언가 관심사가 비슷하거나 재밌어 보이는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건 재밌더라고요.”
“파고들면서 물어볼 생각은 없어서요.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들을 수 있는 만큼만 들으니까요. 서로 피해가 없는 선에서 공동의 이득을 취하는 거죠.”
<구질구직> 머리말과 맺음말을 옮긴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라는 개소리가 있는데
배추는 나발이고 포기도 못 하고,
나는 무였다
뽑히지 않는 무
여기저기서 암만 뽑혀가도
그 바닥에만 박혀잇는 무
쓸 모 없을 무(無)
세상 모든 무들을 위하여.”
<구질구직>, 1쪽
“세상 어딘가는 답이 있을 거 같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길래, 내 속을 파고 파고 또 팠다. 내가 잘 안 되는 이유는 내 탓이고 내 탓이고 내 탓이었다.
친구들도 자기 탓하기 바빴다. 같은 취준생끼리 모여서는 서로를 없는 걸 비춰주는 거울 삼고 있었다. 경쟁하듯 니는 이게 있네 나는 없네 하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안 됐다 참, 저 친구도 괜찮은 친군데. 잘 됐으면 좋겠는데. 그러다 내가 더 안 됐다는 생각이 또 비집고 들어온다. 이것도 저것도 없는 나는 남들처럼 이것도 저것도 하지 않았구나. 열심히 살지 않았구나. 속으로는 내 탓, 겉으로는 신세 한탄을 하다 보면 벼락 같이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집 가면서 터벅터벅 되내이는 말이. 열심히 살아야지. 열심히 살아야지. 위로나 격려는 없어졌다, 적어도 우리 사이엔.
각자가 열심히 살아야 할 원인을 자신에게 찾을 뿐인 거 같다.
아닌 친구들도 있다. 회사에서도 답이 있는 건 아닌지, 취업한 친구들은 까고 까고 또 깐다. 일하기 싫은 이유는 상사 탓이고 후배 탓이고 회사 탓이다.
아, 부럽다.
오늘 술자리 시원하게 쏴서 부러운 거보다 남 탓 할 수 있는 게 부러웠다.
그래서 말인데 나도 세상 탓도 하고 남 탓도 좀 해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내가 다 포기하는 것도 아니니까. 엄마 아빠한테 효도도 하고,얻어먹은 친구들한테 술도 한 잔 사고 그럴려면 계속 구질구질한 취업 준비 하긴 할 껀데. 오늘만 나도 나자빠져서 쪼금만 합리화도 하고. 자기위로도 하고. 니 욕도 함 해보고. 발 닦고. 낮잠도 자고. 오늘만.
내일은 오늘이랑 달라져서 또 같이 열심히 살 거니깐.”
<구질구질>, 43쪽
우리 모두 멋진 사람들이야 너무 멀리서 대단한 걸 찾지 마, 없어.
일상 속 대단한 만남 「목욕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