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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May 21. 2024

1%의 흔적

아직은 좋은 추억이 더 많다.




올 1월이었다. 배꽃집이 등록되어 있는 숙박 플랫폼에서 승인을 요청하는 문자가 왔다.

중국 국적의 성인 1명, 숙박 기간은 1월 8일~27일로 19박이다. 호스트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계산을 해보니 숙박비가 백만 원이 넘는다.

팬데믹 이후 침체기에 빠져 있는 터라 목돈 앞에서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배꽃집에서 묵을 수 있는 최대 기간은 3일. 거금 앞에서 탐욕에 눈이 흐려졌다. 하지만 내가 세운 원칙이다. 스스로 깰 수는 없는 노릇.  흐려진 눈에 힘을 주고 ‘승인거절’을 눌렀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예약할 때 호스트의 승인절차를 거치도록 설정을 해 놓았던 것 아닌가.    

 

‘배꽃집은 장기 숙박자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승인 거절 사유를 적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간혹 장기 숙박을 원하는 손님들이 있었지만 '승인거절'에 대해서 묻거나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던 것이다.  배꽃집이 아니더라도 선택지는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승인거절 후 예약자에게서 바로  문자가 왔다.      

“최대 며칠까지 가능합니까?” 날 선  질문처럼 느껴져 긴장되었다. 

"최대 3일까지만 가능합니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공손하게 답신을 하고 나자 또 바로 문자가 왔다.

“당신은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오잉~ 이건 무슨 말이지?)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죄송합니다." 하다시 답신을 다. 그에게서 즉각 “당신은 행운을 놓칠 수 있습니다.”라는 문자가 또 왔다.

. 전화가 아니라 문자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더 아상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어쩌면 사업상 꼭 배꽃집에서 묵어야 할 이유가  있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와 같은 여러 생각이 들어서 거절을 하고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찜찜했던 기억도 곧 잊혔다.  그 리고 20일쯤 지나 다시 같은 플랫폼으로 승인 요청이 들어왔다. 1.28일~2.10일, 13박, 성인 1명. 이번에도 중국인이다. 빠르게 프로필을 확인했봤다. 20일 전 장기 숙박을 원했던 사람이었다.

거절했던 기억이 찜찜하게 남아있었고, 또 절박한 사정이 있을 테지, 싶어 ‘예약 승인’을 했다.  

승인한 지 몇 분이 채 되지 않아 문자가 왔다.(모든 문자는 에어비앤비의 대화창으로 이루어진다.)

“13박은 가능한가요?”

‘감사합니다’, 와 같은 의례적인 인사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질문은 내 예상을 깼다.

“지난번에 장박(장기숙박) 원하셨던 분이시죠? 원칙으로는 안 되지만 꼭 오셔야 할 이유가 있는 것 같아서 승인했습니다.”

“,,, ,,,”

긴 그의 침묵에서 뭔가 잘못되었구나, 생각이 들어서 대화창에 남아 있는 지난번 예약자의 프로필을 이 사람 것과 비교해 보았다.  

가입: 2024.

여행경력 :없음.

구사언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

두 사람의 프로필은 23과 24년으로 에어비앤비 가입 연도와 이름만 다를 뿐 여행경력과 구사언어 항목이 같았다.     

등골이 싸, 했. 다.     


'누가 봐도 한 사람이 개의 프로필로 등록한 거다.' 성급하게 판단하고 승인을 해 버린 경솔함이 뒤늦은 후회로 밀려왔다.

그때  다시 문자가 왔다.

“혹시 근처에서 갈만한 여행지 소개 해 주실 수 있나요?”

“오시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제 카카오 아이디입력하시면 카카오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 하고 카카오 아이디를 올렸다.

“모든 대화는 이곳에서만 가능합니다. 이해 바랍니다.”

그 사람은 계속 자기 카톡 아이디를 등록해 달라고 졸랐고 나는 “죄송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혹시 하는 마음으로 외국인과 카톡 두 개의 키워드를 넣고 초록창에 검색을 했다. 여러 개의 사기 사례와 함께 ‘모르는 외국인을 절대로 초대를 하지 말라’는 문건 검색되었다.      

문자를 주고받은 며칠 뒤 예약 취소가 떴다. 그 사람이었다. 차라리 마음이 후련했다.

그리고 그들과 사람과 나누었던 두 개의 대화창에는 똑같이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상대방이 더 이상 에어비앤비 회원이 아니므로 메시지가 숨김 처리되었습니다.”

장기 숙박 예약을 하려던 두 사람은 같은 날 그 플랫폼에서 탈퇴했다.       

그가 내 카카오 계정에 들어와서 어떤 일을 계획하려고 했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배꽃집이 등록 한 플랫폼은 <에어비앤비> 한 곳이다. 휴대폰만 손에 들고 있으면 전 세계 어디에 있든 숙박지를 검색하고 또 원하는 숙박지를 예약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도 예약할 수 있다는 편리함의 이면에는 ‘사진과 달라요’ 라거나 예약하고 입금까지 마친  현지의 숙박업소가 사라지는 불상사를 겪는 사례담을 간혹 보게 된다. 예기치 않은 불미스러운 상황이 가능하기 때문에 플랫폼을 통한 예약이 선호되는 것이다.

내가 가입한 에어비앤비는 직접 숙박업소를 경영해 본 경험을 가진 호스트들이 운영하는 플랫폼으로 다른 플랫폼과 비교했을 때 이용자인 게스트입장에서는 어떤지는 몰라도 호스트 입장에서는 비슷한 다른 업체에 비해 낮은 수수료와 퇴실 후 바로 입금을 해 주고 있어 만족도가 높은 곳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 플랫폼을 통해서 다양한 외국인 여행자들을 만나오고 있다.     


이 플랫폼의 또 다른 장점은 승인절차를 두 가지로 설정해 놓고 선택할 수 있게 한 점이다. 대부분의 업체에서는 게스트가 바로 예약을 확정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은 게스트가 ‘예약확정’ 방식과 ‘호스트 승인’이라는 두 가지 방식을 제시하고 호스트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배꽃집 예약은 이 플랫폼 한 곳에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를 타고 들어와 전화와 문자로 예약을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예약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잠시만 정신줄을 놓으면 더블 예약으로 인원오버가 될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5월 5일 어린이날이 끼어 있는 연휴에 더블예약으로 베드수를 넘치는 사람들이 예약되는 난감한 상황을 겪었더랬다. 예약 날짜를 서로 다르게 기억하면서 생긴 실수였다. 전화로 예약을 받고 문자로 확인하고 기록을 남겨도 이런 실수는 발생했다. 플랫폼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실수다. 어느 한쪽이 우긴다고 해서 우승 트로피를 획득할 수는 없다. 손님과 호스트 사이에 플랫폼이 시스템을 갖추고 기록물을 보관 관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에서도 실수는 일어난다. 밤 12시가 다 된 늦은 시간이었다. 다음날 오기로 예약된 게스트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장님, 제가 내일 다른 일이 있어서 예약 취소를 하려고 하는데, 하루 전날이라서 예약 취소가 안 되네요. 그래서 말인데 사장님이 숙박비를 제게 입금을 해주시고 에어비앤비를 통해 입금받으시면 안 될까요?” 전화선을 타고 흐르는 목소리가 앳되었다. 처음 겪는 상황이라 혼란스러웠지만 전액 환불을 해 주었다. 다음날 에어비앤비에서 예약 수수료를 뺀 금액이 입금되었다.

시스템에 의하면 환불은 규정에 어긋나는 행위다. 손님 입장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숙소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억울할 것이고 다음날 누구라도 예약을 할 수 있으니 호스트가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랬듯이 대부분의 여행자들여행지를 선정  다음 순서는 숙소 예약이다. 그렇기 때문에 취소된 날은 공실이 될 확률이 높다. 공실도 공실이지만 호스트 입장에서 공실보다 더 억울한 것은 시간이다. 호스트는 종일 예약 손님 기다린다. 게스트는 방과 함께 호스트의 시간도 함께  예약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키 번호를 문자로 전송하는 숙박지가 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날로그 방식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아직까지는 채택하고 싶은 방식은 아니다. 아직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에 부리게 되는 여유일 수도 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아찔한 만남도 있었다. 두 명의 중국인들과 문자를 주고받던 순간도 모골이 송연했던 순간이었다. 이런 순간이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게스트에게서 들었던 멋진 말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희미해질 때 특히 되새기는 말이다.

“모든 순간은 추억이며 경험이 된다.”

좋지 않았던 시간을 나쁜 경험으로 축척하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경험이 될 것이다. 미미한 1%와 함께 했던 그 경험들이 아직은 나에게 얼룩진 흔적으로 남지 않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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