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로버트 프랭크
시각예술 플랫폼 아트렉처에 기고한 전시 리뷰입니다. 갤러리에서 제공한 작품 이미지를 포함한 전문은 링크(https://artlecture.com/article/2210)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로버트 프랭크와 이들 열세 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 그들 모두 사진가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자신을 둘러싼 시대와 공명했다는 점일 것이다. 로버트 프랭크가 중국에 알려지기 전 사진을 시작한 작가도 그렇고,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프랭크 재단의 지원금을 받으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젊은 사진가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이미지는 사진평론가 이경률 선생님이 말한 “내재적 공명”8)의 결과물일진대 그것은 어쩌면 이들과 세상, 그리고 이들과 로버트 프랭크(의 이미지) 사이에서 발생한 공명이 아닐까. …… 프랭크는 사진가라면 늘 눈을 열어 두고 (작업을 위해서라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에 참여한 열세 명의 작가 또한 작업을 위해,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담기 위해 진심을 바치고 있다. 싼잉탕에 걸린 이들의 작업이 시대를 앞서간 한 예술가에게 바치는 작은 헌사가 되는 까닭이다.
사진 이론가 조너선 그린(Jonathan Green)은 1950년대 미국 사진을 컨템퍼러리 사진의 시작으로 규정하며 세 가지 근거를 들었다. 1952년 사진 전문 계간지 <어퍼쳐 (Aperture)>의 창간, 1955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인간가족전 (The Family of Man)> 전시, 그리고 1958년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의 사진집 <미국인들 (The Americans)>의 출간이다.1)
이러한 평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버트 프랭크는 현대 사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진가이다. 그의 책 <미국인들>은 구겐하임 재단 지원금을 받아 1955~56년 동안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기록한 사회 풍경을 담은 퍼스널 다큐멘터리이다. 1958년 프랑스에서 먼저 나왔고, 1959년 미국에서 선을 보였는데 당시 반-미학적(unaesthetic)이라는 평가까지 들을 정도로 기존의 사진 문법과는 거리가 있었다. 첫 출간 50주년을 맞아 슈타이들에서 펴낸 2008년 버전에 실린 이미지들을 보면 프레이밍, 노출, 초점 어느 것 하나 정해진 공식을 따르는 것이 없다. 그러니 당시의 사진 미학 관점에서 비판을 받은 것도 어느 정도 수긍은 간다. 그때는 앙리-까르띠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과 같은 시선이 사진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비난 받은 더 큰 이유는 아마 사진에서 느껴지는 부정적인 감정이었을 것이다. “전후 미국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장치”2)로 가득한 <미국인들>의 이미지가 “미국의 인종주의, 자본주의, 종교 제일주의, 그리고 국수주의”와 같이 어두운 면을 비판적으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이다.3) 이러한 시선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최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었다는 것이다. 프랭크는 <미국인들>을 찍을 당시 철저히 아웃사이더이자 관찰자가 되려 했는데 “줄곧 일만 하”고, “말을 거의 하지 않고, 내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는4) 자전적 토로를 통해 그가 서 있던 자리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덕분에 그는 미국인들은 보지 못했던, 혹은 보고도 외면했던 풍경을 포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미국인들>은 때로 유럽의 감성으로 바라본 (암울한) 미국의 풍경을 담았다고 해석되기도 하는데, 프랭크는 한 인터뷰에서 말하길, 유럽인(스위스)이라는 자신의 배경은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했다. 그보다는 1950년 대의 미국이라는 사회 자체, 그 안의 풍경이 자신의 시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My background never came into play. It was the uniqueness of America that came into play,”)5) 전쟁의 상흔에서 회복 중이던 유럽과 달리 격동적인 성장을 구가하며 내달리던 미국 사회의 모습, 그리고 그 이면이 예술가와 공명하며 영감을 준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로버트 프랭크는 어찌 보면 시대를 앞서간 천재이기도 했다. 사진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혁신적인 작품을 많이 만들었으며 십여 년간 사진을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온 이후에는 딥틱(diptych), 트리틱(tritych) 등의 연작 및 구성 사진과 이미지 위에 텍스트를 새기는 작업 등 다양한 시도로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었다. 현대 사진의 시대를 열며 수많은 후대 사진가에게 영향을 끼친 그가 2019년 캐나다 노바 스코티아의 집에서 작고했을 당시에는 세계 유수의 언론에서 부고 기사를 띄우며 그를 추모했다.
베이징 5환로 북동쪽의 차오창띠 예술촌에 자리한 싼잉탕 사진 예술 센터를 찾은 것은 이 천재에게 바치는 헌사를 보기 위해서였다. <공명 - 로버트 프랭크에게 바치는 헌사 (Resonance - A Tribute to Robert Frank)>는 2020년 가을 지메이-아를 국제 사진 페스티벌6)에서 처음 선보였다. 베이징 전시는 두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로버트 프랭크의 작품 세계를 보여 주는 1층과 직/간접적으로 그의 영향을 받은 열세 명(정확히는 열두 명 + 한 팀)의 중국 작가 작품이 걸린 2층이다. 로버트 프랭크의 오리지널 프린트는 싼잉탕의 설립자인 롱롱(榮榮: Rong Rong)의 개인 컬렉션을 포함하여 열 작품 정도로 많지는 않다. 그래도 그중에 70년대 후반에 만든 구성 사진의 빈티지 프린트도 있었고, 주요 저서 십여 권을 담은 한 시간 분량의 영상과 다큐 비디오 등을 통해 가능한 한 많은 작품을 보여 주려 노력했다.
2층에 걸린 중국 사진가들의 작품 중 조금 더 눈길을 끈 것은 젱한(Zeng Han: 曾翰)의 “Route 66” 작업과 첸롱후이(Ronghui Chen: 陈荣辉)의 뉴헤이븐 이미지였다. 젱한은 2008년, 이제는 지도에서도 사라진 옛 66번 국도를 따라 시카고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로드 트립을 떠났다. 스스로 폐허 풍경 매니아(“a maniac photographer of ruins”)라고 한 그에게 쇠락한 옛길을 짚어가는 여행은 이미지의 천국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반세기 전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자유”와도 같았다는 그 길 위에서 젱한은 관찰자가 되었다. 다른 대륙이라는 공간과 수십 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온 중국인 사진가의 시선은 아마 필연적으로 관찰자가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의 여행이 로버트 프랭크의 시간 위로 겹쳐지는 듯한 기분이 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첸롱후이는 예일에서 MFA 과정을 밟으며 프랭크 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그는 2019년 뉴헤이븐에 처음 갔을 때 여러 사람으로부터, 때로는 경찰서로부터도, 어두워지면 위험하니 밖에 다니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고 했다. 이후 저녁이 되면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와 불도 채 켜지 않고 지친 몸을 뉘었다. 그때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여린 빛이 만들어 낸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장면은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자란 그는 변변한 전등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옅은 빛에 의지해 풍경을 관찰하는 데 익숙했다. 첸롱후이는 어릴 적을 떠올리며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2019년의 파트 I에서는 단지 희미한 빛이 보여주는 실내를 담았으나 2020년의 파트 II에서는 한 발 더 다가갔다. 핀홀을 이용해 창밖의 거리를 집안으로 직접 끌고 들어온 그는 하나로 겹쳐진 안과 밖의 순간을 프레임에 포착했다.
싼잉탕의 큐레이터 진무(Jin Mu: 金木)가 전시 서문에서 말했듯 로버트 프랭크라는 사진가가 중국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시행한 이후 서양 사진가들에 대한 정보가 조금씩 들어 왔지만 단편적이었고 때론 잘못된 정보도 있었다. 중국에서 로버트 프랭크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과 읽기가 이루어진 것은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다. 이후 2007년에는 프랭크가 핑야오 국제 사진 페스티벌에 참석하기도 했고 2008년 슈타이들이 재출간한 <미국인들>은 중국어판으로도 발간되었다.7)
그렇다면 로버트 프랭크와 이들 열세 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 그들 모두 사진가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자신을 둘러싼 시대와 공명했다는 점일 것이다. 로버트 프랭크가 중국에 알려지기 전 사진을 시작한 작가도 그렇고,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프랭크 재단의 지원금을 받으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젊은 사진가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이미지는 사진평론가 이경률 선생님이 말한 “내재적 공명”8)의 결과물일진대 그것은 어쩌면 이들과 세상, 그리고 이들과 로버트 프랭크(의 이미지) 사이에서 발생한 공명이 아닐까.
프랭크는 사진가라면 늘 눈을 열어 두고 (작업을 위해서라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에 참여한 열세 명의 작가 또한 작업을 위해,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담기 위해 진심을 바치고 있다. 싼잉탕에 걸린 이들의 작업이 시대를 앞서간 한 예술가에게 바치는 작은 헌사가 되는 까닭이다.
각주 :
1) 진동선, <사진예술의 풍경들>, 문예중앙, 2013, p. 278
2) 그라함 클라크, 진동선 옮김, <포토그래피 - 이미지를 읽는 새로운 방법>, 시공아트, 2007, p. 170
3) 진동선, <현대사진가론>, 태학원, 1998, p. 177
4) 로버트 프랭크, 강운구.권오룡 옮김, <열화당 사진문고 8 - 로버트 프랭크>, 열화당, 1986
5) 2007년 인터뷰, “An Interview with Robert Frank - ‘If An Artist Doesn’t Take Risks, Then It’s Not Worth It.’”, Jiang Rong, ASX, 2011년 12월 14일
6) 싼잉탕의 설립자인 롱롱이 오랜 역사를 가진 프랑스 아를 사진 페스티벌과 2015년부터 함께 기획한 행사로 매년 말 중국의 항구 도시 샤먼에서 열린다.
7) 전시 서문
8) 이경률, <현대 사진 미학의 이해>, 사진마실, 2006, p. 123 - 141
기타 참고 자료 :
전시 서문, Jin Mu (今木), Three Shadows Photography Art Centre, 2021
Ian Jeffrey, , Thames & Hudson, 2019
Beaumont Newhall, , The Museum of Modern Art, 1982
Lynne Warren, , Routledge, 2006
“The Americans - Robert Frank”, 박태희
“Possibly Everything: An Interview with Robert Frank”, Robert Enright/Meeka Walsh, Border Crossing Issue 125, 2013년 3월
“On the Road Again: Robert Frank, Driving and Crying”, Greil Marcus, Artforum, 1994년 11월
(영상: Vimeo) A Conversation with Robert Frank in 2016 : NYU Photography & Imaging - https://vimeo.com/158952929
(영상: Vimeo) Robert Frank - The Lines of My Hand - https://vimeo.com/286072827
젱한 홈페이지: http://zeng-han.com
첸롱후이 홈페이지: http://ronghuich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