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나면 나는 남는가?

오래된 길의 입구에서

by 김대능

이따금씩 신입사원들이 들어온다. 고용 한파로 인해 예전만큼 많이 보이지는 않지만, 잠깐 스치는 순간에도 난 이들을 단번에 알아차린다. 긴장한 듯한 눈빛과 우수가 서린 낯빛. 그리고 특유의 싱그러움까지. 그들은 제각기 다른 모양을 띄며 부서에 자그마한 균열을 만들어낸다. 만약 별 모양의 신입사원이 동그란 모양의 부서에 들어오게 되면, 삐져나온 부분은 신입사원의 생각, 태도, 말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잠시 9년 전의 나를 떠올린다. 나는 별이었다. 문득 부러움이 날 지나갔다. 단순히 젊음이 부러워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나는 언제부터 저 빛을 잃은 걸까. 거울 속 난 동그라미가 된 지 오래다. 명함이 내 얼굴이고 직책이 내 성격이며, 프로젝트명은 곧 내 근황이다.


"취미가 뭐예요?"

이런 질문에 신입은 머뭇거리지 않는다.

"밴드요. 저는 베이스를 쳤습니다."

"오, 그래요?"

"이번 주말에도 작은 공연이 있어요."


신입은 아직 자기소개를 갖고 있다. 의미 없는 대화이지만 마음 한편이 움찔한다. 누가 나에게 똑같이 물었다면, 나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회사가 없으면 내 문장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반면 신입의 문장에는 회사가 없다. 신입에게 회사란 그저 무대일 뿐이다. 그 점이 부러웠다.


한때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던 내 별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마치 사포를 오래 댄 것처럼 동그랗게 닳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회사 탓을 할 수는 없다. 그 테두리를 계속해서 깎아내린 건 사실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회사는 모든 것을 정렬한다. 직급 체계, 업무 프로세스, 성과 및 보상 체계 등 모두가 잘 정돈된 이 틀에 서서히 끼워 맞춰진다. 끊임없는 보고, 회의, 일정과 평가. 그 과정에서 각자의 모난 부분에 상처가 나고 아물기를 반복한다. 마침내 동그라미가 되고 나면, 생각이나 말에서 주체성이 사라진다.


나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다. 업무를 함에 있어서도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으며,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듣기만 한다. 특히 고민거리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한데 내 기억에 몇 번 정도는 주변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었다.


"회사를 떠나면 나는 남는가?"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낸 순간, 공기가 잠깐 굳는다. 나는 내 질문이 너무 컸던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대답은 대개 단순했다. "회사생활이 그렇지 뭐." "다들 그렇게 살아." 나는 그 말이 닿는 곳을 알고 있다. 회사생활 자체가 원래 그런 것이다. 아득히도 높은 곳에서 명령이 떨어지면 사장단부터 신입사원까지 오와 열을 맞춰 같은 곳을 향해 달린다.


뜻밖의 대답도 있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남지. 너는 너잖아." 맞는 말이지만,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나지만, 나를 설명할 단어가 내 안에 별로 남아 있지 않기에. 아직 내 조각이 남아있긴 한 걸까? 그걸 되찾을 방법이 있을까? 오래전에 다니던 길이니 어딘가엔 남아있겠지.


어떤 이는 도리어 내게 되물었다. 이제 와서 자신을 찾으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모두가 자신을 잃어가며 살아가고 많은 이가 그 대가로 얻는 안정에 익숙해져 살아간다고. 결정적으로 그 별이 빛을 다 잃을 때까지 사포질을 해댄 건 나 자신이었다고 말이다.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알고 있을 뿐이다. 때가 되면 누구든 이곳을 떠난다는 걸.


나는 왜 그토록 열심히도 내 별을 깎아냈을까. 마음이 복잡하지만 후회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누구나 그러하니까. 언젠가 마주쳤던 그 신입사원도 10년 후엔 나와 같은 고민 앞에 서 있을지 모른다.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아마 비슷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동그라미가 되는 쪽이 편했고, 빠르고, 안전했다. 그게 회사와 나 자신을 위한 길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걸 선택한 게 나라면, 다시금 별을 찾는 것도 결국 내 몫이다. 무성히 자라난 풀을 헤쳐가며 오래된 내 발자국을 다시 찾아야 하는 것이다.


명함이나 직책 없이 사람을 만나 근황을 말해보는 것.

프로젝트명 대신 내가 좋아했던 것을 꺼내보는 것.

신입사원이 내게 건넨 “이번 주말 공연” 같은 문장을 내 손으로 적어보는 것.


난 어디서부터 지워졌는가? 이제 막 오래된 내 발자국의 흔적을 발견했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0kdoj-oPYRQ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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