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데리고 온 아이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는다. 휴직 후 첫 외출이다. 아내를 회사에 내려주고 내비게이션을 켠다. 목적지는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서울 한복판에서도 초등학교들이 문을 닫는다는 기사가 스친다. 난 설마 하는 마음으로 학교 이름을 검색한다. 다행히 아직 폐교는 아니다. 잠시 안도하지만, 왜인지 다음은 장담할 수 없겠다는 예감이 든다.
도착 시간이 찍혔다. 고작 1시간. 멀지 않았다. 다만, 오래 잊고 살았다. 후회가 밀려왔다. 졸업 후 20년도 더 지났는데 한 번쯤은 찾아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여유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나는 틈이 생길 때면 여행을 다녔다. 여행은 그 틈을 잠시나마 가려주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짬도 있었다. 출근부터 퇴근까지를 제외한 시간. 그러나 그 시간엔 배움만이 가득했다. 어느새 난 음악을 만들고, 영상을 편집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돌이켜보면, 내 틈은 언제나 새로움으로 채워졌다.
새로움은 내 삶에 있어 강한 동기부여였지만 이로 인해 난 뒤를 보지 못했다. 앞만 보고 쌓아가는데만 급급했다. 어딘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슬쩍 백미러를 올려다봤다. 거울엔 출근길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흐름 사이엔 내 과거도 끼어 있었다. 이윽고 질문 하나가 남았다. 어떤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까. 그 질문을 품고, 난 그 과거 중에 가장 오래된 곳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낯익음과 낯섦이 같이 차올랐다. 직접 운전해 와 본 적이 없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차문을 여는 순간 겨울 공기가 날 밀어냈다. 난 학교 정문을 향해 조심스레 한 발짝씩 나아갔다. 교문은 기억 속 그 자리에 있었다. 학교는 그대로였지만, 이제 난 외부인이었다. 구태여 들어가 보려 하진 않았다. 과연 날 반겨줄까. 어쩜 날 알아보지도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대신 그 시절의 길을 따라 걸었다. 놀이터로 향하는 길, 오락실로 가는 길 그리고 제일 좋아했던 집에 가는 길. 한편으로 고마웠다. 간판들은 거의 다 바뀌었지만 길들은 그대로였기에. 집에서 나와 신호등까지 가는 언덕길이나 자주 갔던 장소들 사이 복잡한 골목길까지. 꼬마였을 땐 저 길이 하루였는데, 지금은 몇 걸음이었다.
작아진 길들을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누볐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사실 초등학생이었을 땐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제일 자신 있던 게 달리기였고 심지어 내 별명은 '소닉'이었다. 그러던 중 소닉이 내 머릿속에서 추억들을 꺼내줬다. 오락실에서 집까지 한 번도 안 쉬고 뛰어갔던 일. 하굣길 나무를 결승선 삼아 전력질주했던 일. 운동회에서 반 대표로 이어 달리기를 했던 기억. 별거 아닌 추억들이 한파 속에서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무척 따뜻했다.
나는 계속 걸었다. 간간히 남아있던 옛 간판들 덕분에 곳곳에서 한때 꼬마였던 내가 눈에 밟혔다. 길거리에 앉아 컵떡볶이를 먹던 나. 종이 치면 학교 밖으로 나와 불량식품을 사 먹던 나. 놀이터에서 신나게 얼음땡을 하던 나. 마냥 즐거워 보였다. 그래도 꼬마 나름의 하루가 있었겠지. 기회가 된다면 그 꼬마를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너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떨 때 가장 행복한지 말이다. 답은 늘 그 아이 쪽에 있을 것만 같았다. 꼬마와 나는 틀림없이 같은 사람인데, 지금의 난 그 답을 모른다.
꼬마를 따라 하굣길에 나선다. 그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길이다. 집 앞에 도착하고 보니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꼬마가 그 안에 축구공을 차 놓고 날 바라본다. 그리고 묻는다.
"나는 커서 꿈을 이루게 되나요?"
말문이 막힌다. '반드시 이룬다'라고 말하기엔 거짓말이고, '이루지 못한다'라고 말하기엔 너무 아프고 미안하다. 어느 쪽도 그 아이에게 줄 말은 아니다. 난 그 자동문이 닫히기만을 기다린다. 굉장히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차로 돌아가는 길, 그 질문을 들고 돌아온다. 그 말이 내 안에서 계속 굴러다닌다.
(유튜브)
https://youtu.be/1QdsNKwc9JY?si=VRszHUkUeS1m5--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