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이 닫히면 시작되는 시간
휴직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새벽과 아침의 경계인 5시 40분. 내 하루는 이때 켜진다. 겨울이라 그런지 밖은 여전히 깜깜하다. 간단히 준비를 마치고 헬스장으로 나선다. 예상외로 사람이 많다. 나처럼 일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궁금하지만, 그만 생각을 접어두고 러닝머신 위에 몸을 얹는다. 몇 걸음 떼고 나니 숨이 막힌다. 그제야 몸에서 열이 올라온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면 아내의 아침과 마주한다. 아내는 한창 출근 준비 중이다. 잠깐 땀을 식히다 집 밖으로 떠나는 아내를 배웅한다. "잘 갔다 와, 운전 조심하고." 짧은 인사말과 함께 현관문이 닫힌다. 이내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이 찾아온다. 새하얀 공백의 시간. 그때부터 내 캘린더는 텅 비어있다.
사실 그녀와 나는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 우린 같이 휴직하려 했었다. 발목을 잡았던 건 돈이었는데, 결혼 후 아끼고 모아둔 덕에 1년 정도 쉬는 건 큰 걸림돌이 아니었다. 물론 그녀도 버틸 여력이 충분하다는 데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아내는 결국 휴직하지 않았다.
아내를 끝내 설득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나는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아내는 '착하고 예쁜 학생' 같은 사람이다. 부모님의 말, 선생님의 말도 어기지 않으며 책임감 아래 주어진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람. 반듯하고 올곧은 아내에게 지금의 본분이란, 열심히 일하며 가정을 지키는 일이다.
나는 그 '열심'을 옆에서 수년간 지켜봤다. 배우자로서 분명 감사한 일이지만 가끔씩 난 그녀에게 삐딱한 세계에 대해서 말해왔다.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며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꿈이 있는지와 같은 말들. 난 그녀의 행복에 대해서 줄곧 질문해 왔다. 대부분은 공중에서 흩어졌지만 그녀가 망설임 끝에 대답을 꺼내놓은 적도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잡아당긴 무언가가 이따금씩 있던 것이다.
처음엔 작은 인력(引力)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 끌림이 시작을 만들고, 시작은 적응과 지속을 불러왔으며 마침내 그녀의 인력(人力)이 되었다. 아내는 아직 그 일을 손에 쥐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 힘은 다시 흩어졌다. 기로 앞에선 아내는 휴직 대신 출근을 선택했다.
아내는 날 응원했다. 삐딱했지만 적어도 내 행복은 밑그림이 있다고 믿었기에. 난 자신 있었다. 나에겐 시간이 부족할 뿐이라 여겨왔었다. 그러나 매일 오전 아내와 인사를 나누고 현관문이 닫히면 묘한 감정이 지나갔다. 새하얀 공간엔 행복 대신 불안이 스며들었다. 시간을 헛되이 쓰고 싶지 않았던 조바심이 그 까닭이었다. 그때부터 난 그 빈 공간을 마구잡이로 채워 넣기 시작했다.
비어있는 공간을 채운 항목들 중엔 요리도 있었다. 맞벌이를 하는 동안 제대로 된 저녁식사를 하기 힘들었기에 아내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가 내 얼굴을 보더니 숟가락을 들다 말고 말했다.
"아니, 휴직도 했는데 왜 이렇게 얼굴이 피곤한 것 같지?"
"글쎄... 그냥 이것저것 하다 보니 회사 생활할 때보다 더 바쁜 것 같네?"
이렇게 웃어넘겼지만, 문득 아내의 질문이 언젠가 내가 했던 질문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내가 던졌던 삐딱한 세계에 대한 질문. 순간 멍해졌다. 아내의 눈에 비친 난 여전히 피곤한 회사원이었다. 내 행복에 필요조건이 더 있는 걸까? 그대로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봤다. 초점 흐린 눈으로 스스로 물었다. 문제가 뭘까. 내 행복은 아직 자리잡지 못했다.
나는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걸까. 휴직만 하면 행복이 뚜렷해질 거라 생각했지만 난 여태 헤매고 있다. 내 정체성은 붙잡을 수 없이 공중에 떠다닌다. 만약 아내가 왜 그렇게 피곤해하냐 묻지 않고 삐딱한 세계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었다면 어땠을까. 난 꼼짝없이 얼어붙었을 것이다. 지금 나는 내 행복에 대해서, 내 정체성에 대해서 똑바로 대답할 수 없다.
끝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 그녀를 위한답시고 행복에 대해 물었지만, 정작 그 질문 앞에서 내 입은 닫혀있다. 어쩌면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새하얀 공백의 시간을 빼곡히 채우는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그 빈칸을 견디는 연습이 필요한 게 아닐까. 오늘은 낮잠을 자보려 한다. 적어도 내 얼굴에서 피곤이 지워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