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by 해돋이 풍경

엄마 나이 30대 중반,

부르기도 아까운 꽃다운 나이에

우리 엄마는 아버지와 사별하여 혼자가 되셨다.

어렵게 엄마를 임신하신 외할머니가 재취로 시집

보내야 명이 길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으셨으며

어린 엄마는 엄마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아버지와 결혼하셨다.


젊은 엄마에게 남겨진 중학생 딸부터 첫돌을

막 지난 막내아들까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엄마만 바라보는 어린 6 남매와 덩그러니 세상에 남겨진 엄마.

엄마가 지고 가야 할 짓눌린 무게도

커다랗게 대못이 박혀버려 시퍼렇게 멍든

가슴의 상처도 그저 온몸으로 떠안으며

휘청거리는 다리로 몸을 지탱하며 죽을힘을 다하여

버텨 나가야만 했다.

어떤 두려움도, 허망힘도 모르는 씩씩한

엄마 이어야만. 했다.

아니, 엄마는 그런 즐 알았다.

그런 엄마가 가끔씩 혼자 소리로 크게 한숨을

내쉬시며. “내가 무슨 죄가 많아서”라고 되뇌곤

하셨는데 무표정한 표정에서 토해내는 듯한 그

목소리가 어쩐지 모를 어두움으로 내게 다가오곤 하였다.

나는 어른의 흉내를 내며

엄마의 말동무가 되어 드리고 싶었다.

산에 핀 분홍색 진달래로 꽃다발을 선물하고 싶었다

작은 손으로 엄마에게 안겨 드리곤 하였던

그 화사한 꽃다발.

엄마는 꽃처럼 웃음을 지으셨다.

그 한아름의 꽃들은 엄마의 그 한숨에, 무거운

발걸음에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나의 아들, 딸의 나이보다 더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신 엄마.

엄마가 남편을 잃었던 나이보다 거의 곱절의 나이에

남편이 떠나고 혼자가 된 나.

아버지의 존재가 덩그러니 비어 있어도 밖에서

돌아와 보이지 않는 엄마를 찾으면 어디선가

나타나시곤 하던 든든한 엄마가 계셨기에

나는 아버지의 부재를 커다랗게 차지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나에게 아버지의 부재와 엄마에게 있어 남편의 빈자리.

나에게 남편과의 영원한 헤어짐과

나의 아들, 딸에게 있어 아빠의 부재.

아버지의 죽음과 남편과의 사별…….

이제야 여섯이나 되는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지켜내야만 했던 엄마의 그 절박한 심정이

어땠을까, 남은 사람인 엄마가 감당해야만 했던 그 무게에 , 이젠 홀로 가야만 하는 나의 상실의

고통에 가슴이 저려온다.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 것 같던 우리들도 훌쩍 자라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하나밖에 없는 엄마의 그 소중한 아들은 엄마의 자랑 거리가 되어

길고 험하여 내가 무슨 죄가

많아서라고 느껴졌던 엄마의 인생여정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과정이었다고

우리들은 말하곤 하였으며

굳어져 억세 보였던 엄마의 얼굴도 어느새

어린아이 같은 고운 얼굴로 변해 어쩌면 이렇게

고생이라곤 안 하신 것처럼 고우시냐고

사람들은 말을 하곤 한다.


엄마에게 들이닥쳤던 역경의 세계에서 엄마가

굴하지 않고 굳건한 길로 나아가셨듯이

나도 남편과 함께 행복했던 시간들은 그 시간대로

가슴에 담고 나에게 주어진 나만의 인생길,

신부님 말씀대로 쫄지 말고, 나만이라도 내 편을 들며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라는 작은 마음이 저 멀리서 속삭여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