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시론┃정치·사회] 천리마는 달리고 싶다

2025. 4. 7.

by 박응석

미술관에 가면 전시물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해주는 도슨트가 있다. 하지만 해설 시간에 일정을 맞출 수 없는 나는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해 목에 걸고 이어폰으로 설명을 들으며 감상한다. 이어폰은 이내 나의 옷이나 안경처럼 내 몸과 하나가 된다.

이제 미술관에 로봇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슨트 로봇은 음성만이 아니라 자신의 몸통에 달린 모니터로 동영상도 송출하며 작가의 제작 의도나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더 실감 나게 전달하고,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바닥을 쓸거나 걸레질까지 한다. 로봇이 내 앞에서 나를 보며 재잘거리고,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니 내 귀에 걸던 이어폰과 다르게 하나의 독립된 개체 더 나아가 인격체로 느껴진다.

우리에게 과학기술이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지던 순간들이 있었을까? 원래 기술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익숙한 생활 속 기술들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처럼 ‘몸’을 얻은 기술들이 우리 눈앞에 나오기 시작했다.

매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소비자 가전 전시회)에 어떤 기술들이 나오는지 일반인들의 관심이 점차 높아지는 이유도 로봇과 같은 친숙한 이미지가 다수 등장하는 영향도 있어 보인다. 이번 CES 2025에서는 인공지능(AI)을 로봇이나 모빌리티 등에 적용해서 2차원에 머물던 AI가 3차원 세계로 뛰어드는 임바디드(Embodied) AI가 새롭게 주목받았다. 우리가 사는 3차원 세계는 모두 인간의 몸에 맞게 구성돼 있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를 대신하거나 함께할 기술로 사람을 닮은 로봇이 주목받는 것이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따르면 2014년부터 10년간 출원된 생성 AI 관련 특허 가운데 중국에서 출원된 특허가 약 70%를 차지한다. 2위 미국의 6배 규모다. 스탠퍼드대는 지난해 발간한 AI 인덱스 보고서 2024에서 중국이 AI 특허를 지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중국이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로봇 굴기를 계획 중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성공 요인으로 해당 분야에 대한 지속적 지원을 들고 있다. 한국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목표나 지원 방식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올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AI를 각 산업에 접목하는 인공지능 플러스(+) 행동을 계속 추진할 것을 예고했다.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연구·개발(R&D) 카르텔 타파’를 지시하면서 올해 1만 개 넘는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비가 일괄 삭감됐다. 연구비 지원이 중단돼 대학은 대학원생을 많이 받을 수 없고, 카이스트 졸업생은 연구비 문제를 외치다 입이 막힌 채 끌려 나갔다.

윗사람의 눈치를 보고 이뤄지는 편향적 지원도 문제다. 대통령이 ‘반도체 산업’ 부흥을 이야기하자 예산이 한곳으로 몰리며 인문사회과학은 물론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도 삭감되기 시작했다. 많은 인재들이 본인 연구의 연속성이 무너질 것을 걱정하며 한국을 떠나거나 연구를 포기하기도 한다.

넷플릭스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봤다. 농구는 링 안으로 골을 넣는 것이 최종 목적이지만 그 시작은 볼을 링 근처까지 가져가는 ‘가드’의 몫이고, 실패한 골을 잡아서 우리 팀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은 ‘센터’였다. 당장 돈이 되는 곳에만 집중하는 것은 슛만 넣으면 된다며 농구팀에서 가드와 센터를 버리는 것과 같다.

반도체, 로봇 등 모든 산업은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된 하나의 ‘네트워크’다. 크고 빠른 변화들이 출몰하는 시대에 과학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그 모든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그물의 어떤 부분도 망가져서는 안 된다.

우리 학계에는 힘이 좋은 천리마가 많다. 다만 사료를 보통 말들이 먹는 만큼 주면 천리마도 평범한 말이 된다. 먹이기 전에 천리마의 달리기를 평가하지 마라. 천리마는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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