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6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신간 ‘넥서스’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평범한 도시일 뿐이다. 하지만 유대인과 무슬림은 이곳을 신, 천사, 신성한 돌로 가득한 특별한 장소로 상상하기 때문에 바위 한 개를 두고 싸울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바위를 이루고 있는 원자들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바위의 ‘신성함’을 갖기 위해 싸운다는 것이다. 그런 유형의 신성함은 해당 사회들이 마음대로 부여한 것이다. 모든 사회는 역사적 맥락에서 자신의 필요에 근거해 고유한 가치를 빚어낸다. 그리고 어렵게 획득한 가치 체계는 변화할지언정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응원봉’이 핫이슈였다. 콘서트장에 있어야 할 응원봉이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는데 사용됐기 때문이다. 그 참신한 의미 변화 과정을 잠깐 살펴보자.
빛의 쓸모는 어둠에서 탁월하다. 어두운 밤거리의 네온사인, 자동차 헤드라이트 그리고 반짝이는 휴대폰 화면처럼. 어둠에서 우리는 빛나는 것만을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 콘서트장은 어둡다. 화려한 빛은 무대 위 스타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팬들이 그 어둠에서 자신을 하나의 개체로 드러내는 수단은 응원봉이다. ‘나’는 ‘응원봉’에 의지해 하나의 빛이 되어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향한다.
응원봉은 이렇게 나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우리의 ‘연대’도 드러낸다. 특정 디자인과 색으로 자신들이 누구를 응원하는지 분명하게 밝히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던 응원봉이 이제 광장으로 나아간다.
광장을 이전부터 지키던 ‘촛불’은 자신을 녹여내 어둠을 쫓아내는 상징 이미지로 여의도나 광화문에서 비폭력 평화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대변했다. 그런데 얼마 전 촛불이 그 신성한 이미지를 응원봉과 나누었다. 콘서트장에서 온 응원봉은 늘 자신과 함께하던 흥겨운 노래와 젊은 감성을 모조리 몰고 왔다. 이는 일시에 무거운 시위 문화를 콘서트 분위기의 ‘K-시위 문화’로 진화시켰다. 새로운 세대의 개성이 더해진 민주주의의 획기적 진화를 두고 외신들은 날마다 놀라움을 전하기 바빴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달 10일 한강 작가의 작품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며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 역사적 경험이 미래를 헤쳐나가는 힘이 되려면 경험에 대한 충분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한강의 문학적 성찰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는 노벨상 수상자 기념 강연에서 ‘과거가 현재를 구한다’거나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고 말했다. 불법 계엄이라는 위험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응원봉을 보면 그 말에 깊게 동의하게 된다. 이제 한국에서 구태적인 것들은 K-WAVE(한류)에 전부 쓸려나갈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