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4
처음은 나무 조각이었다. 안토니오가 식탁 다리로 만들려고 했던 나무 조각은 인형극을 준비하던 제페토에게서 피노키오가 된다. 나무 조각은 식탁 다리가 될 수도 있고, 인형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인형이 되고 나면 우리는 그 인형을 보고 식탁 다리를 떠올리기 어렵다. 많은 가능성 중 하나가 실현되면 존재했던 다른 가능성들은 바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매일 같은 길로 출근하고 같은 방식으로 일하다 보면 다른 길로 출근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잊는 것과 같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이 변화를 가져올 때 그 기술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기술이 만들어낸 신비함과 이로움에 익숙해지는 순간에 많은 것들이 소외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에서 말하는 ‘낯설게 보기’가 이제 기술 영역에 더 필요한 태도가 됐다.
카페, 식당, 버스터미널, 지하철, 관공서 등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키오스크(무인 주문 기계)다. 최근에는 신랑·신부를 선택한 뒤 축의금을 넣으면 식권이나 주차권이 발급되는 축의금 키오스크가 나와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갈수록 많아지는 비대면 선호 고객들과 운영자의 편의를 생각하면 키오스크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키오스크를 활용한 식당 주문이나 교통수단 예매 등에서 70% 정도의 노인들이 불편하다고 응답했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빠른 것을 생각하면 소외되는 사람들을 위한 고민을 느긋하게 할 수 없다.
피노키오는 제페토 할아버지와 인형극을 구경할 가상의 관중 사이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기술은 개발자가 머릿속에서 가상의 사용자를 상상하며 완성한다. 그렇게 완성된 기술은 사용자를 위한 것이지만, 사용자는 다시 그 기술을 통해 개발자가 상상한 사람을 닮아간다. 다양한 종을 품은 생태계가 건강하듯, 다양한 사람을 고려한 기술이 건강하게 발전한다. 그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채우는 기술이라면 더욱 그렇다. 키 작은 아이와 강아지에게 문은 벽이 된다. 하지만 손잡이가 낮아지거나 문 아래 별도의 문이 달린다면 벽은 그들에게 다시 문이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새로운 공간을 열어주는 문이 다른 이에게는 벽이 될 수 있다.
한 기업에서는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해 ‘배려형 키오스크’를 전국 매장에 도입했다. 휠체어 이용 고객을 위해 기존 키오스크 대비 높이를 낮게 조정할 수 있거나, 시각 장애인을 위해 키오스크 하부에 점자 스티커를 준비하거나 모든 글자를 음성으로 안내한다. 이 외에도 외국인이나 다문화 가정을 위해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어는 물론 태국어와 베트남어도 추가 제공한다. 덕분에 키오스크 앞에 더 많은 사람이 설 수 있게 됐다.
철학자 한병철은 “스마트폰은 세계를 세운다.”고 말한다. 휴대폰 카메라로 내가 보고 싶은 세계를 담고, 그걸 SNS에 게시하고 기억으로 남기는 걸 보면 그의 말이 맞는 듯하다. 사실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모든 도구가 그렇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차를 타는 것. 모두 ‘이동’을 하는 것이지만 직접 걷는 것과 자전거나 차를 이용할 때 우리는 그 이동에서 각기 다른 경험을 한다. 기술에 따라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다. 현재 우리 눈앞에 있는 모든 인공물은 완성품(完成品)이면서 동시에 개선을 기다리는 반성품(半成品)이기도 하다. 지속적 발전으로 모두를 아우르는 낭만적인 기술들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