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적응, 농사
모든 게 새로 시작하는 3월이다.
봄이면 돋아나는 풀들,
나무는 매일 해의 기운에 몸을 데우다가
해마다 그렇듯 새로운 꽃을 피운다.
아이들은 새학년, 새학교를 맞이하고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고 달라진 학교생활에 들뜨고
올해 펼쳐질 자신들의 즐겁고 멋진 학교 생활을 상상하며
흥분한다.
유학센터도 다르지 않다.
올해 일년살이를 시작한다.
3월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농사, 적응이다.
유학생활을 2,3년씩 한 아이들 말고
새로 유학을 시작한 신입 유학생은
유학생활과 학교생활을 동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을 때이다.
또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한 아이는
커진 학교, 매수업마다 다른 선생님,
친구관계, 새로운 선배의 개념
초등 때와 다른 다양한 동아리 활동,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기, 버스로 통학하기 등등 한꺼번에 밀려오는
변화에 혼란스럽고 분주하다.
이 때가 많이 일이 일어난다.
아이들과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고
실제로도 가장 많은 이야기가 오고간다.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 가질 수록
아이들의 상태가 파악되고 아이를 이해할 수 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알고 적절한 시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이들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려고 하다보니
마음의 불안이 최대치에 도달해서 마치
물이 가득 찬 컵과 같아서 자그마한 자극에도
물이 찰랑찰랑거리며 넘치것 같아 옆에서 보는
나에게 불안이 전해 질 정도이다.
불안을 느끼는 정도나 영역이 개인 마다 다를 수 있지만
거의 공통되게 느끼는 영역은 ‘관계’이다.
'새로운 친구와 친해지기'
' 2,3학년 선배를 어떻게 대해야 하나?
방과후 아이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대체로 학습보다는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소외' '왕따' '학교폭력'
자신이 그런 문제로 힘들어지거나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었다.
학교에서 수요일마다 운영하는 자율 동아리시간이었다.
신입생인 아이는 동아리 시간에 선배들이 지나치게 떠들고
시끄럽게 해서 불만이 생겼다.
하지만 하늘같은 선배들-옛날이나 지금이나 선배는 여전히 무서운 존재-
에게 직접 동아리 시간에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긴 무서웠다.
직접 말을 할 수 없으니 동아리 장에게 동아리 시간에
조용히 해달라, 아니면 동아리를 나가라 이야기를 했다.
동아리 장이 그 말을 전하면서 일이 커졌다.
"OO이가 ..."라며 실명을 거론해서 말을 전하고 만 것이다.
선배들이 바로 화장실로 불렀고 선배들에게 둘러싸여
왜 직접 말을 전하지 않았냐며 혼이 났다.
그 아이는 무섭긴 했지만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고
그 중 조금 거친 선배아이가 화가 나서 화장실 문을 찼고 욕설을 했다.
아이는 학교에 다녀와서 우리와 이야기를 했다.
직접적인 폭력을 당했거나 심한 폭언을 들은 건 아니지만
혼자 화장실에서 선배들 다섯명에 둘러싸여 있었던 상황은
가히 폭력적이라고 판단했다.
그 선배들 중에 유학생이 있어서 다음날 친구들을 설득해서
화장실로 부른 행위에 대해 사과를 하게 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사과를 하지 않았고 유학생만 반으로
찾아가 사과를 하게 되었다.
아이는 스스로 엄마와 통화하고 다음날 교사에게 말을 하였다.
학교 교사는 먼저 만나서 이야기 하고 서로 잘못에 대해
알고 난뒤 사과를 하면 좋겠다 싶어 그 선배들과 아이를
한자리 만나도록 했다.
정작 사과해야 할 선배아이가 사과하고 싶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그 자리가 무산 되었다.
그 날 방과후에 다른 교사가 선배들만 불러서 이야기를 했고
아이들 모두 사과 하기로 하고 그 날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어서 받고 싶지 않았고
서로 대면한 상황이 아주 부담스럽고 힘이 들었다고 했다.
감정이 격앙된 상황에서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아이는 울었다.
엄마는 아이가 울자 화가 났다.
학교에서 아이와 선배들을 대면 시키는 데 센터에서는 가지 않았냐며
탓을 했고 학교교사에게도 대면 시킨 것에 대해 화를 냈다.
다른 아이들은 모르겠고 내 아이는 이기적이겠다며
늦은 밤에 센터에 와서 사과받고 다시 이런 일이 없이 학교 생활에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 집에 가 있겠다고 데리고 갔다.
주말을 지나고 사과하고
그렇게 상황을 종료되었다.
그 다음주에 또 한 건의 일이 더 있었다.
사과를 하고 받으면 또 해결 되었다.
새로 시작하는 때에는 부딪히고 조율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성장도 하지만
마음에 상흔이 남기도 한다.
작년에 태풍 힌남노가 지나가고
텃밭이 무너져 내려 텃밭 주변 센터 축대를 보수하였다.
공사를 하면서 흙을 더 가져다 부으면 작년 까지 쓰던 텃밭 모양이 사라졌다.
다시 시작하였다.
모모 텃밭에 다시 두둑을 올리고 고랑을 만들었다.
묻힌 부추와 수선화, 오미자, 체리나무를 옮겨 심었다.
모종을 키워서 아주심기를 하려고
작은 포트에 모종을 내었다.
비닐하우은 안에 두고 매일 물 주고 돌본다.
각자의 포트에 심은 씨앗이 빨리 싹을 틔우고
자라서 텃밭으로 옮겨 가길 바란다.
다른 모종에 비해 추위를 잘 견디는 대파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심은 다음날 꽃샘 추위가 왔다.
사나흘 꽃샘 추위에 잠시 몸을 웅크렸다.
봄에 오는 꽃샘 추위는 겨울 추위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
아직 밭을 완성하지 못 했다.
밭 둘레에 돌을 주어 놓고 아직 뭉게진
빈자리에 두둑을 더 올려서 작물을 심을 자리를
계속 만들어야 한다.
또 마을 어른에게 밭을 빌려 감자는 따로 심었다.
센터에서 5분 정도 걸어서 감자 농사를 짓는다.
3월 하순까지 감자는 심는데 올해 우리는 조금 일찍 심었다.
다음주에 한파가 또 온다는데 걱정이 된다.
감자는 수확하면 여러 모로 많이 쓰여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농사이다.
지금은 텃밭에서 수확되는 것은 봄이 되면
가장 먼저 올라오는 풀들이다.
꽃다지, 광대나물, 작년에 뿌린 유채나물,
냉이, 쑥, 달래, 돌나물 등이다.
겨울은 난 풀의 맛은 달짝지근하다.
아이들은 잘 먹는다.
도시에서 살땐 모르던 맛이었지만 지금은 그 맛을 안다.
몇 년째 유학을 하는 아이들은 봄에 먹는 풀의 맛에 익숙하고
그 맛과 향을 좋아한다.
마트에서 사서 먹는 게 당연하게 여기며 살다가
산촌유학을 와서 자연에서 얻어먹으며 자연과 연결된 삶에
익숙해지면서 생태적 지혜를 축적해 간다.